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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딱하게 보기] 따로국밥도 아닌 것이, 뮤직비디오 <마주치지 말자>

요즘에는 이수영의 <GRACE>와 장혜진의 <마주치지 말자>를 연이어 듣고 있다. 이수영의 노래는 한결같으면서도 여전히 가슴을 울리고, 5년 만에 돌아온 장혜진의 노래는 요즘 유행을 따르면서도 진한 여운이 담겨 있다. 가창력에서는 이미 인정받은 가수들답게, 이수영과 장혜진의 음반은 들을 가치가 있는 수작이다.

그런데 <마주치지 말자>의 뮤직비디오를 케이블 채널에서 보면서, 뭔가 복잡한 감흥이 일었다. 전미선과 김윤진, 박준규가 출연한 <마주치지 말자>의 뮤직비디오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깡패가 나오고, 총격전과 자동차 추격전까지 벌어지는 아수라장을 보여준다. 너무나 과장되고 전형적이지만, 그것만 보기에는 나쁘지 않다. 배우들의 연기도 안정적이고, 장혜진의 애절하면서도 강단있는 노래에도 그런대로 어울린다.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다. <마주치지 말자>의 가사는, 전형적인 이별을 그리고 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이에게 두번 다시 마주치지 말자고,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노랫말이다. 그건 뮤직비디오의 영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애절한 감성만이 유사할 뿐이고, 사실 그것도 전혀 다른 종류다. 뮤직비디오의 40분짜리 풀 버전을 보지는 못했지만, 특별히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사고로, 폭력으로 연인과 어머니가 죽고,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복수하는 이야기. 그게 왜 <마주치지 말자>의 뮤직비디오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건 <마주치지 말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마도 조성모의 뮤직비디오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였을 것이다. 가수는 전혀 나오지 않은 채 유명 배우가 출연하여 영화처럼 스토리를 담아 뮤직비디오를 만든 것이. 때로는 외국영화의 영상에 국내 가수의 노래를 얹어 뮤직비디오라며 내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저 노래와 영상이 합쳐지면 뮤직비디오가 된다, 라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시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이수영의 뮤직비디오도 마찬가지의 유향이지만, 대체로 만족했다. 이수영의 비가(悲歌)를, 슬픈 러브스토리와 함께 보는 맛은 언제나 좋았다. 지극히 통속적이고, 때로 유치해도, 좋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미지는 통해야 하지 않을까? 명곡 <가시나무>를 리메이크하면서, 야쿠자가 등장하고 손가락을 자르는 등의 영상을 만드는 건 용납하기 힘들었다. 한국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왜 툭하면 조폭이 등장하고 주인공은 늘 피를 흘리며 죽어가야 하는 것일까. 그저 죽음과 과장된 액션이 나와야만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마주치지 말자>의 뮤직비디오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전미선과 김윤진의 연기를 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노래만 들을 때의 감흥은 결코 떠오르지 않는다. 전혀 다른 노래를 듣는 느낌이다. 한국의 뮤직비디오에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노래 자체의 의미와 정서에 맞는, 다소 초라해도 좋으니 어울리는 영상을 보고 싶다. 노래의 감흥을 더욱 북돋는, 단순한 의미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