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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동물농장> 제작과정 추적기 [1]
사진 오계옥오정연 2006-03-03

고양이 한 마리를 덜컥 집안에 들여놓았던 2001년 어느 날. 졸린 눈을 비비며 마루로 기어나온 오양은 무심코 TV를 틀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와 고양이, 그리고 그들과 동거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물 프로그램이 거기 있었다. 평소 고양잇과 맹수들이 초원을 휘젓는 동물다큐멘터리를 즐겨보긴 했지만, 그것들과는 또 달랐다.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 애완동물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경험했던 특별한 공감, 애완동물이 보여줬던 그만의 버릇을 TV에서 확인하는 것 등은 소소한 희열이 되었다. <TV동물농장>은 그 이후 오양의 일요일 아침을 점령했다. 그 뒤로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오 기자로 불리게 된 오양은, 입사 이후 호시탐탐 <TV동물농장>을 취재하길 갈망했으나 기회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일이 살다보면 생긴다. 뒤에 이어지는 글은, 열혈 시청자의 ‘집요한 궁금증 해소기’다. 제작진을 따라 동물원을 방문하여 새끼 사자를 영접하는 영광을 누렸고, 작가며 PD에게 그간 시청자로서 질문, 건의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고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동물원 쇠창살 안에서만 볼 수 있었던 맹수의 턱밑까지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람과 다르지 않은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가는 애완동물의 리얼한 심리를 포착하는 이 친근한 프로그램의 제작 과정,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애환은 다음과 같다.

기똥찬 아이템들, 대체 어떻게 개발한 거야?

<TV동물농장> 관계자들 사이에는 ‘맹수 불패’라는 말이 있다. 고양잇과 맹수들을 내세우면 시청률에서 실패가 없다는 뜻이다. 사자들의 세력다툼, 사자파와 호랑이파의 애증 등 사파리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갈등은 무협, 코미디, 대서사 등 장르를 바꾸어 사랑받은 단골 소재. 시청률 상승의 3요소라는 3B, BEAUTY·BEAST·BABY 중 두 가지(BEAST·BABY)를 만족시키는 소재가 항시 대기 중인 동물원의 인공 포육실도 마찬가지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를 떠올리게 하는 특이한 능력을 지닌 주변 동물의 이야기나 평범한 사람과 애완동물의 일상을 시트콤으로 각색한 이야기는 인터넷과 인맥을 동원한 광범위한 제보에서 비롯된다지만, 그처럼 동물원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은 대체 어떻게 개발한 아이템일까.

생후 3개월 남짓된 새끼사자 두 마리

평소 기사 아이템 발굴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오 기자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에 모든 PD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노하우는 성실한 출입처(?) 관리.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전국 동물원 리스트를 관리하는 10명의 PD와 7명의 작가는 모두 담당 동물원을 나누어 맡아, 매주 회의 전 전화를 돌린다. 전화 통화에 그치는 작가보다는 일없이 동물원을 찾아 사육사들과 수다를 떨면서 동물들의 근황을 살피는 PD들이 아이템 개발에 유리하다. 새로 어떤 동물이 들어왔는지, 얼마 전 태어난 새끼는 별 문제가 없는지 등등…. “어제 비너스(사자)가 누구랑 바람을 피웠대” 같은 사소한 사육사와의 대화도 훌륭한 아이템이 된다. 전국에 두 군데밖에 없는 사파리는 매년 봄 담당 PD가 정해지면 상주하다시피 하며 확실한 관리에 들어간다. 그래서 매일 아침 우리에서 사파리로 ‘출근’하는 사자, 호랑이의 모습만 봐도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짐작이 가능한 유능한 사육사들은 준PD급의 기획력을 자랑한다고. 그간 사파리와 인공 포육실처럼 가장 믿음직한 아이템을 제공해왔던 에버랜드 동물원과는 PD들이 언제든 아무 문이나 열고 들어서도 제지받지 않을 정도의 돈독한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

“진정, 연출은 없었나?” 그것이 궁금하다

주인의 밥상을 탐하거나 놀고 싶은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집을 엉망으로 만드는 애완동물들의 사고는 <TV동물농장> 동물 시트콤의 단골 소재다. 오지명이 아끼는 도자기를 깨먹은 미달 아빠의 일화가 <순풍 산부인과>에 등장한 횟수만큼이나 빈번하게 반복되는 이 소재는, 언제 봐도 흥미롭다. 남몰래 사고를 치려다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동물의, 날것 그대로의 반응을 보고 있으면 아예 동물의 탈을 쓴 사람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완벽하게 포착된 동물들의 생생한 표정과 행동에, 동물 캐릭터별로 의인화한 내레이션이 입혀지면 어떤 시트콤보다 흥미로운 드라마가 완성된다. <TV동물농장> 팀이 동물들에게 연기를 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연출 의혹’에 시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기자의 집요한 질문이, 관계자들은 못내 억울한 모양이다. 휴먼다큐를 찍을 때는 주인공에게 “오늘은 친구를 만나시면 어떨까요”라는 정도의 제안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동물은 예측마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 결국은 지속적으로 동물을 관찰하고, 성실하게 기르는 사람이나 사육사를 취재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PD들은 입을 모은다.

에버랜드에서 일요일마다 개최하는 ‘애니멀 원더랜드’ 행사

아침이면 추리닝 바람으로 촬영해야 할 동물이 사는 집을 방문하여 하루 종일 그 집 주인과 함께 밥 먹고 TV 보면서 카메라를 들이대다보면 동물의 성격과 행동양식이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TV동물농장>에서만 볼 수 있는 ‘팬의 미학’도 가능해진다. 개의 수상한 행동에서 이를 바라보는 고양이의 불안한 표정으로 이어지는 긴박한 패닝 등은 웬만한 관찰 기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방송 초반에는 120시간 분량을 촬영해 15분짜리 네편을 완성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촬영 기간이 필요했다. 이 와중에 평소 주인의 먹을거리를 넘보다가 사고를 친 경력의 개를 유혹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외면하는 정도의 시도는 빈번하게 이루어진다고 PD들은 말한다. 공을 좋아하는 개의 습성을 이용해, 숫자가 쓰인 46개의 공으로 로또 놀이를 할 수도 있다.

<동물농장> 원년멤버 박두선 PD 인터뷰

“사람 못지않은 희로애락의 세계가 엿보였다”

그것은 혁명적인 일이었다. 2001년 5월 <TV 동물농장>을 시작할 당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가 나온다면 뭐 신기할 게 있냐”는 시큰둥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방영 5개월 만에 <사랑의 스튜디오> <도전 지구탐험대> 등 막강한 경쟁 프로그램을 제치고 SBS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으면서 열렬한 환호로 바뀌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방송영상과 교수로 재직 중인 홍순철 전 SBS PD와 함께, <TV 동물농장>을 시작한 박두선 PD를 만났다. 현재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을 기획하느라 여념이 없는 그는, “돌이켜보면 모두가 즐겁게 일했던 시기”라고 5년 전을 회고한다.

-기획 배경이 궁금하다. =동물의 세계 역시 사람처럼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동물의 왕국>이 동물 프로그램의 고전이었는데, 그건 다 외국에서 사온 화면을 편집해서 내보내는 것 아니었나. 우리 주변에도 카메라로 담을 수 있는 동물이 많다고 생각했다.

-포맷은 어떻게 구상했나. =일반적인 자연다큐멘터리는 1년을 찍어서 1시간 분량으로 만든다. 그런데 동물 이야기로 매주 방송분량을 만드는 게 가능할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처음에는 주변의 동물, 해외 프로젝트 외에도 <동물의 왕국>처럼 외국에서 사 온 화면으로 만든 것도 한 꼭지 포함시켰다.

-예상했던 것과 달라진 것도 많았겠다. =막상 동물을 찍어본 PD들이 하는 말이, 애들 성격이 정말 다 다르더라는 것이었다. 둔한 녀석, 예민한 녀석, 새침한 녀석, 얄미운 녀석들이 모이니 사람 못지않은 희로애락의 세계가 엿보였다. 시리즈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TV 동물농장> 최고의 인기 시리즈였던 <개성시대>도 처음엔 룰라 고영욱이 집에 개를 10마리나 키운다는 게 재밌어서 1회 방영용 소재로 찍었는데, 그게 결국 37회 동안 방영됐다. 동물 시트콤이라는 명칭도 그때 처음 사용했다.

-두명의 성우와 신동엽, 정선희 등 MC가 시작한 이후 그대로 유지됐다. =방송 시작한 지 2년 만에 신동엽이 여태껏 진행한 프로그램 중 “<TV 동물농장>이 가장 오래 한 것”이라는 말을 하더라. 이제는 아예 생활의 일부가 됐다고 한다. 귀여운 동물들 보면서 스트레스도 풀리고 때론 영감도 받는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