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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혼혈?
정희진(대학 강사) 2006-03-10

보통 섹스를 몸을 섞는다고 하는데, 결혼은 피를 섞는 것인가보다. “그 집안 핏줄…”, “혈통(血統)”, “나하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인간…” 등의 표현은, 가족제도와 이에 근거한 각종 ‘족(族)’자 돌림 사회(부족, 종족, 민족…)의 조직 원리가 ‘피’의 상징 질서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일 결혼이 ‘핏줄간 결합’이라면, 모든 결혼은 혼혈이고 모든 자녀는 혼혈아여야 하지 않나? 한국인끼리 결혼은 같은 피가 합쳐지는 거라 순혈이고, 국제결혼은 다른 피(푸른 피?)의 결합이라 혼혈인가? 이처럼 혼혈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일 뿐 아니라, 다름에 대한 배타성의 정치학을 신체 담론으로 자연화시킨, 인종주의 언어다.

근대 해부학의 발달은 인권 개념을 태동시킨 물적 기반이었다. 왕자도 거지도 배를 가르면 모두 오장육부에 붉은 피 흘리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계급, 인종, 성별에 관계없이 사람의 눈물, 피의 색깔은 같다. 이것이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혹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근대 인권사상의 미덕, 보편성의 근거다.

하지만 몸무게의 약 8%를 이루며 영양소를 세포로 보내고 노폐물을 몸 밖으로 운반하는 물질로서 피와 사회적 언어로서 ‘피’는 다르다. 우리 몸에서 ‘피’처럼 강렬한 정치적 메타포(은유)를 담고 있는 말도 드물다. ‘피의 맹세’, ‘피바다’, ‘한미동맹은 혈맹’이라는 말은 섬뜩하다. 사람들은 괴롭거나 화가 날 때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피를 보고야 말리라”고 말한다. 우울증을 앓는 가까운 친구는 “누가 내 몸에 다른 사람의 피를 부었어”,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아”, “피가 몸에서 돌아다니지 않아”… 이런 말로 나를 놀라게 하곤 한다. 이러한 언설들은 모두 ‘다른 피’에 대한 공포와 위계를 상기시킨다. ‘순수한 피’가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섞이지 않은 피는 깨끗하고 우월한 반면 섞이는 것은 잡종, 더러움, 무질서, 비정상, 장애, 오염, 파국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혼혈(混血, mixed blood)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두 사람의 피를 그릇에 넣고 섞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한미군 기지촌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혼혈인들 스스로 반(半)만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프 퍼슨(half-person)’이라고 불러왔다. 우리 사회는 성인 혼혈인에게 ‘혼혈아’라고 지칭하면서 이들을 ‘애’로 취급한다. 현재 혼혈 남성에게는 병역의 의무가 없다. 이들은 국민 혹은 사람이 아니라고 간주되기 때문에, 병역에서 면제된 것이 아니라 배제된 것이다. 혼혈인에 대한 탁월하면서도 성찰적인 다큐멘터리, 박경태 감독의 영화 제목 <있다>는 그들을 철저히 비가시화해온 한국사회의 폭력에 대한 고발처럼 느껴진다.

한국처럼 외세 침략이 빈번했던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순수 혈통’은 가능하지 않다. ‘단일민족’은 현실이 아니라 신화(미신)일 뿐이다. 더구나 현재 결혼하는 부부 중 10%가 국제결혼인 상황에서 혼혈인에 대한 차별은 시대착오적이다. 사실 혼혈(인)에 대한 비하는 성차별에 기원을 두고 있다. 가부장제와 민족국가의 지속은 여성의 성을 매개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단일민족’을 지속시키려면, 한국 여성이 외국 남성과 결혼(섹스)하지 말아야 한다. 때문에 성 판매 여성 중에서도 외국 군을 상대로 하는 여성들은 ‘양××’ 등으로 불리며 극단적인 혐오의 대상이 되어왔다. 혈연적 민족주의는 여성에 대한 섹슈얼리티 통제를 통해서만 작동한다.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의 결혼이나 성적 결합은 그 반대의 경우만큼 금기시되지 않으며, 심지어 ‘정복’으로 의미화되기도 한다.

국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배제, 추방과 포섭의 정치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재미동포나 재일동포를 ‘조선족’이라고 하지 않는다. 재중동포만 조선족이다. ‘같은 세포’라는 의미의 해외 ‘동포(同胞)’가 모두 ‘한국인’은 아닌 것이다. 한국사회는 ‘잘나가는’ 동포만 한국인으로 간주하고, 그들이 자신을 얼마나 한국인으로 정체화하고 있는지에 목숨을 건다. 하인즈 워드 선수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아닌지에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상처받았다가 열광했다가 하는 식이다.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토비 도슨 선수가 한국 출신 입양아라고 강조하는 여론을 보면 더욱 민망스럽다. 평소 혼혈인과 입양아에 대한 한국사회의 대우와 지위를 생각할 때 그렇기도 하지만, ‘뿌리’와 ‘피’에 대한 한국인들의 집착이 염려스럽다. ‘우리’와 ‘같음’에 대한 열망은 한국사회 내외부의 다름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