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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지2>라고?
2001-08-16

비디오카페

94년에 아주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크랙 브레인>이란 비디오가 출시되었는데, 그저 그런 B급액션으로 생각하여 반품할 요량으로 따로 빼두었다. 영업사원에게 반품하는 그 순간, 재킷에서 쿠엔틴 타란티노란 이름을 발견하여 자세히 읽어보니, 타란티노와 함께 어렸을 적에 비디오 아카이브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저수지의 개들>의 시나리오를 같이 썼던 영화동지 로저 에버리가 연출한 영화였다. 원제 <킬링 조이>가 엄연히 있는데도 영화 내용에까지 제목을 ‘Crack Brain’이라 적어놓은 것은 뭔가 ‘뒤가 구린’ 일이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로부터 2년 뒤, <킬링 조이>를 수입했던 모영화사에서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법적 절차를 밟았지만, 이미 상황은 끝난 뒤였다. 당장의 이익 때문에 ‘야매’로 출시한 악덕업자로 인해 정상적으로 수입했던 영화사가 큰 피해를 보게 된 사건이었다.

최근, 대여점에 꽂혀 있는 비디오 중에 <데미지2>가 있다. <데미지>의 속편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도 없었는데다, 루이 말 감독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데미지2>가 나온 것일까?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이어서 그런가? 며칠 뒤, 미남 고객 필감성군의 제보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영화는 바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96년작 <스틸링 뷰티>(Stealing Beauty)라는 것이다. 이 비디오 역시, 영화 내용에 원제인 척 영어로 ‘Demage2’라 적혀 있다. 물론 베르톨루치를 앞세워 <스틸링 뷰티>라 출시하는 것보다 <데미지2>로 했을 때 잘 팔리긴 할 것이다. 오늘도 난 비디오업계의 이 슬픈 현실에 다시 한번 가슴을 친다.

이주현/ 비디오카페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