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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알 카에다와 부시의 ‘적대적 공존’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오귀환(콘텐츠 큐레이터) 2006-03-24

이제 미국은 더이상 알 카에다를 끝까지 추적해서 박멸할 필요가 없다. 박멸? 무슨 헛소리인가! 오히려 ‘이란-콘트라 스캔들’ 같은 비밀스런 짓을 벌여서라도 검은 달러를 듬뿍 움켜줘주고 싶을 판인데!!!

알 카에다가 드디어 2월2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브카이크 정유시설을 공격했다. 차량 두대를 동원해 자살폭탄 테러를 시도하다가 경비 병력의 총격을 받고 정유공장 입구에서 폭발한 것이다. “테러 기도는 저지됐으며, 아브카이크 정유시설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사우디의 알리 알-나이미 석유장관은 테러사건 직후 이렇게 발표했지만, 국제유가는 당장 4% 급등했다. 하루 상승률로는 지난 1년 사이에 가장 높은 수치다. 세계 최대 석유생산량을 자랑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그 사우디아라비아가 자랑하는 세계 최대 원유처리센터를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 이건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이상으로 오싹하고 불길한 ‘검은 황금의 묵시록’ 같기만 하다.

사실상 묵시록은 미국의 제1차 이라크 침략전쟁 때부터 시작됐다.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병합 기도에 미국이 반격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란 회교혁명의 중동 확산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아온 후세인을 완전히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 뒤 아버지 부시가 선거에서 클린턴에게 깨지고 미국은 다른 길로 들어가본다. 현대 미국은 근본적으로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를 외국에 팔아넘겨 살아가는 국가다. 해마다 수천억달러에 달하는 이 적자 부분의 부채를 국가채권의 매각수입으로 메워서 버틴다. 이 빚을 대신 떠안는 나라가 일본, 한국 등 무역수지 흑자 국가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같은 오일머니 국가다. 만일 그 빚을 떠맡지 않는다? 그런 국가는 미국의 즉각적인 온갖 적대적 반격에 휘말린다. 심지어 전쟁까지 당할 수 있다.

‘이라크 제2차 침략전쟁’이 바로 이 미국의 생존방식에 도전한 사담 후세인을 응징한 전쟁이다. 클린턴은 외국돈의 미국행을 원활하게 하는 방안으로 이른바 ‘긴장의 최소화-유연전략’을 취했다(‘북한핵 위기’에 대화로 대응하는 방식 등은 다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IT붐을 일으켜 외국돈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IT버블이 붕괴하면서 미국은 곤경에 처한다. 미국이 주춤거리는 틈을 타서 후세인은 유럽의 후원을 등에 업고 원유결제통화를 유로화로 바꾼 것이다. 후세인으로선 제1차 침략전쟁의 복수를 한 셈이다. 그 뒤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도 차례로 이라크의 뒤를 따르면서 미국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제 달러화가 세계 기축통화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된다면 누가 미국의 국채를 사들이겠는가? 부시는 그런 위기에서 등장했다. 그리고 좀더 단순하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 전략을 세웠다.

“세계의 에너지를 장악한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사수한다.”

“만일 안 되면 힘으로 관철한다!”

이런 미국의 의도에 제때, 제대로 걸려든 것이 알 카에다로 대표되는 이슬람 과격파다. 2002년 미국의 이런 전략과 대응의지를 잘못 읽은 오사마 빈 라덴의 주도로 저 유명한 ‘9·11 테러’가 터졌다.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테러의 배후로 이라크를 지목하면서 침략전쟁에 돌입했다. 그 이후 벌어진 일은 다 알고 있는 대로다. 무슨 알 카에다 등 테러세력을 이라크가 직접 지원했단 말인가? 무슨 대량살상무기가 이라크에서 발견됐단 말인가?

현재 미국은 이라크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일단 이라크의 석유이권이나 개발이권은 충분히 확보한 상태다. 막말로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확실한 이익시스템을 갖춘 상태다. 이런 판에 터진 알 카에다의 사우디 테러는 미국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낭보’에 가깝다.

첫째, 테러위협과 전쟁발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막대한 오일머니를 거머쥔 중동국가들은 점점 더 미국에 의존하면서 미제무기를 사들이는 데 혈안이 될 것이다. 둘째, 미국은 기술적으로 이라크에서 철수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중동지역의 불안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슬람 과격파들은 미군 철수를 사실상 승기로 파악하고 사우디, 쿠웨이트 등 친미 왕정국가는 물론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 대이스라엘 전선지역에서 테러, 시위 등 공세를 격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움직임이 좀더 거시적이고 거대한 의도를 감춘 미국의 새로운 대규모 중동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알 카에다는 한편으로는 아랍 민중을 위한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시의 미국 전략과 공생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