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오픈칼럼
[오픈칼럼] 최고의 처방은 음악과 감동
김나형 2006-03-17

위염께서 발작하시어 토사곽란이 찾아왔다. 온 세상이 허연 게, 눈앞에 뵈는 게 없다. 대엿새 지루하게 몸을 추스르고 나니 이번엔 감기님이 방문했다. 기침이 가슴을 치자 몸뚱이가 하늘로 솟아오를 듯하고, 눈과 목을 불태우는 작열감에 더욱 뵈는 게 없어졌다.

학생이었을 때는 아프면 고마웠다. ‘이 컨디션 유지하면 학교 안 가도 되겠지.’ 학교로 전화를 해주시는 어머니가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 지난 일이다. 회사의 녹을 받는 지금, 아프면 나만 손해, 인생만 괴로워질 뿐이다.

열심히 ‘나만 손해’ 생활을 하는 중에 덜컥 제임스 브라운의 공연 날이 됐다. 세개의 자아가 혼돈의 도가니에서 불탄다. 폭주하는 기침에 시달리는 것이 하나요, 정신없이 회사 일을 하고 있는 게 또 하나요, 이래서야 30분은 족히 늦겠다고 불안해하는 게 마지막 하나다. ‘공연 간다고 일 팽개치면 욕 듣는다. 1개 할 거 2개 해놓고 가.’ ‘융통성 없는 년, 30분이나 늦을 거냐? 동행도 길바닥에 기다리게 하고.’ ‘아파 죽겠는데 이게 다 뭔 지랄이야. 공연이고 뭐고 그냥 집에 가서 확 뻗어줘.’ 분열자들은 각자 시끄럽게 떠들어대지만, 우유부단한 나는 누구의 의견도 화끈하게 수용하지 못한다. 양은 채웠으되 어수선하게 일을 끝낸 나는, 몸상태를 고려하여 차마 전철은 못 타고, 막히는 길을 택시로 기어 결국 20분 지각했다.

택시를 타고 공연장까지 가는 동안 아픈 자아가 득세했다. 내 신세가 처량했고, 쿨럭대는 기침이 쪽팔렸고, ‘10만원씩 주고 뭐 좋다고 다 늙은 제임스 브라운을 보러 가냐’는 사람들의 말이 귓전을 울렸다. 스팅 내한 때의 악몽도 떠올랐다. 스탠딩석 세 번째 줄을 구했다고 들떠 날뛰었더니, 공연 당일, 일어서기 무섭게 뒷사람들이 앉으라고 소리를 질러댔고, 앙코르 전까지 온 스탠딩석이 정숙하게 앉아 공연을 보아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걱정은 정말이지 섣부른 것이었다. 내가 헐레벌떡 뛰어들었을 때, 제임스 브라운은 막 무대에 오른 참이었고, 무대 아래 어둠 속엔 수많은 그림자가 춤추고 있었다. 스탠딩석은 물론 경사면 맨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까지 모두가 일어나 있었다. 그 일심(一心)의 대오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지 않았다.

제임스 브라운은 미쳤다. 그가 70살이 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무대 위의 그들은 범인을 위해 연주하지만, 우리 범인들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위대한 자들이었다. ‘늙었다’, ‘한물갔다’ 따위의 말은 적절하지 않았다. 저들이 설령 늙어 초라해진다 하더라도, 그런 말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무례일 뿐이었다. 펑크의 갓파더, 위대한 섹스머신은 손짓 하나로 무대를 휘어잡고, 숨 한번 들이쉬는 일 없이 1시간40분을 불태웠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살아 있게 만드는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울고 웃고 다시 울며, 열에 들떠 춤을 춘다. 지루한 삶에 최고의 처방은 역시 내겐 음악이다. 공연이 파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리가 도로 무거워졌지만, 집에 돌아가 오랜만에 평온한 주말을 지내고 나니 감기는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다. 시간은, 늘 그렇게 가는 것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