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박다르크와 흑기사들

“대통령 임기 5년은 너무 길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물론 4년 중임제 개헌을 염두에 둔 발언이겠지만, 이 말을 들으니 짓궂은 생각이 든다. 임기 5년이 길다고? 그래, 그게 또한 국민이 느끼는 바이기도 하다. 민심과 동떨어진 대통령이 오랜만에 국민의 심정을 제대로 대변했다. 되지도 않는 개혁에 피곤함만 늘어가고, 정말 정권을 교체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문제는 그 권력을 넘겨줄 대상이 없다는 데에 있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한나라당인데, 이들에게 권력을 줬다가는 나라가 결딴날 게다. 골프장 경비원을 폭행한 김태환 의원, 기업인들에게 맥주병을 던진 곽성문 의원, 동료 의원에게 맥주를 끼얹은 박계동 의원, 술집 여주인에게 모욕적인 폭언을 한 주성영 의원, 국회의장실에 술을 반입하고 의장실 여비서들에게 폭언을 한 이규택, 임인배 의원. 거기에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최연희 의원. 이게 어디 정당인가? 조폭이지.

공주를 대표로 모시다 보니, 한나라당에는 다른 당에 없는 기사단이 있다고 한다. 폭탄주 공격으로부터 박근혜 공주를 보위하기 위해 뭉친 이분들을 세상은 ‘흑기사’라 부른다. 그 면면을 보자. 골프장 폭행의 김태환 의원(구미), 맥주병 투척의 곽성문 의원(대구), 술집 폭언의 주성영 의원(대구). 기사의 작위를 내릴 때에도 출신성분을 고려한 걸까? 남다른 ‘기사도’를 자랑하는 이 세분 모두 공교롭게도 이른바 TK, 3공과 5공의 성골이다.

그러니 ‘기사도’마저 없는 평민들은 닐러 무삼하리오. 언론사의 기자까지 성추행한다. 사건이 불거지자 그가 부랴부랴 내놓은 해명도 가관이다. “식당 여주인인 줄 알았다.” 여기서 그가 평소에 식당에서 어떻게 처신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듣자 하니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란다. 피해자가 그냥 덮어버리는 바람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현직 장관을 “xx”라 불렀던 같은 당 정모 의원도 언젠가 비슷한 유형의 성추행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한다.

남성 의원들만 문제가 아니다. 이 일이 있기 얼마 전에는 같은 당 전여옥 의원이 전직 대통령을 향하여 “치매든 노인”이라 했다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치매”라는 말을 욕설로 사용함으로써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이 당하는 고통을 뭔가 수치스러운 것으로 비하한 것만은 아니다. 이게 처음이 아니어서 그전에 그는 현직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대학은 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학벌 망언을 한 적도 있다.

만약에 이게 한두 의원만의 일이었다면, 그냥 개인의 문제라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100여명이 겨우 넘는 수의 의원 중에서 크게 사고를 친 이들의 목록만 꼽아도 이 정도다. 거기에 아직 알려지지 다른 경우들도 많을 것이니, 이게 그저 교양없는 몇몇 개인의 문제라 보기는 힘들다. 여기서 우리는 한나라당이 대변하는 보수적 가치관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들 저러는 걸까?

골프장 경비원을 폭행하고, 의장실 여비서에게 폭언을 퍼붓고, 술집 여주인에게 모욕감을 주고, 식당 여주인은 성추행을 해도 된다고 믿고, 대학 나오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치매에 걸린 이들을 무슨 열등인종이나 되는 양 망언을 하고…. 이 모든 사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폭행과 망언이 주로 사회적 약자, 평범한 서민들,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게 전여옥 의원이 자랑하는 한국적 “엘리트주의”인가보다.

노 정권의 유일한 업적이 권위주의 타파인데, 이들이 돌아오면 그마저도 사라질 판이다. 수권능력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다. 나라 경제를 홀딱 말아먹었던 이들이 그동안 한 일이라고 해봐야, 툭하면 자리를 차고나가 벌이던 ‘구국운동’과 폭행과 망언으로 점철된 질펀한 술자리. 정권을 교체해서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는 해야 했는데, 구국운동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나타난 것이 고작 술 취한 흑기사들을 거느린 박다르크. 돌아버리겠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순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