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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미리 보기 [2]
사진 오계옥오정연 문석 2006-03-21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이하 감독 인터뷰

“애정이 30%는 맞지만 조롱이 70%는 아니다”

-보조출연자는 물론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자동차 한대도 눈에 띄지 않는다. 설마 제작비 때문은 아니었을 테고. =일종의 취향의 문제였다. 쓸데없는 소리나 인물이 단지 화면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는 이유만으로 개입되는 게 싫었다. 주인공들의 얘기가 결국은 뒤에 지나가는 평범한 이들의 얘기기 때문에 굳이 또 다른 사람을 화면 안에 세울 필요가 없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썰렁한 느낌이 들 거라는 예상은 했고, 실제로 기대 이상으로 썰렁하지만(웃음), 그렇다고 더 재밌고 흥미진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많은 인물이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영화이고, 그 인물들 모두 독특한 개성을 지닌 쉽지 않은 캐릭터들이다.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어떤 배우들은 촬영 전에 감독과 교감을 나누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촬영 전에 너무 친해졌다가 정작 촬영 중에 틀어지고 갈등하는 게 싫었다. 어느 정도 관계와 긴장감을 유지하고, 현장에서 이야기하는 게 훨씬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이 영화의 촬영·편집 컨셉을 어색해했다. 하지만 어색해하면서 그걸 이겨내는 데서 미묘한 느낌이 나온다. 너무 자연스러워도 안 되는 거였다. 막상 촬영분량을 현장에서 편집한 것을 배우들에게 보여주니, 다들 그걸 받아들였다. 아마 욕설이 많은 대사와 주관적인 지문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읽고 배우들은, 훨씬 재기발랄하고 코믹하고 대중적인 영화를 생각했을 거다.

-그래도 모든 연기를 엄격하게 통제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뭔가를 하지 말라고 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연기해달라고 구체적으로 주문하진 않았다.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들을 풀어주고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뒀다. 주로 석규가 등장할 때 그런 게 많았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마지막에 유 선생, 석규, 은숙이 승강이를 벌이는 장면.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세명 모두의 집중력이 훌륭했다. 자기가 대사를 하지 않아도 뭔가 액션을 하면 멀리서도 리액션이 있다. 그 장면도 연기를 크게 통제하지 않았던 장면이다.

-<용산탕>과 <1호선>의 두 주연배우가 연기한 문 교수와 유 선생 캐릭터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캐스팅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 배우가 가진 원래의 성격이 시나리오에 많이 반영됐다. 유승목은 시나리오를 쓰기 전 이런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는 말을 가장 처음 했던 사람이다. 생각했던 거랑 똑같이 나온 인물도 유 선생이다. 혼자서 진지한 것도 그렇고. 본인도 자기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웃음)

-지진희의 경우는 평소 보여줬던 반듯한 이미지와 어긋나는 지금 영화 속 모습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보여주면서 지진희는 석규가 아니라 김 PD가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본인은 석규를 원했지만, 그때만 해도 <대장금> 이미지가 컸다. 그러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 편하게 만남을 가졌는데, 의외로 석규의 모습이 있었다. 결국 석규는 애초 생각보다 더 개구쟁이처럼 표현됐다. 어쩌면 이 영화를 찍으면서 지진희 역시, ‘이건 연기야’라는 핑계로 평소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편하게 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웃음)

-노출의 수위는 매우 높지만, 그렇다고 야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노출신은 정말 자신이 없었는데, 잘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의 노하우도 없는 상황에서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려니 노출장면을 찍는 날은 촬영장에 나가기가 싫을 정도였다. 어쨌든 베드신에서는 홀딱 벗어야 했다. 그리고 별로 섹시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다.

-김 PD와 은숙의 첫 번째 베드신이 매우 리드미컬하다. 그러나 여전히 일종의 거리두기가 느껴진다. =거기서 여교수의 몸이 풍기는 매력이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과 갑자기 관계를 맺는다는 느낌, 어느 정도의 생소함을 주고 싶었다.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 거친 호흡과 땀방울 등을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음악이 매우 미니멀하면서도 전작에 비해 음악 사용이 훨씬 적극적이다. =추교열 음악감독은 단편 때부터 계속 같이 작업했던 사람이고, 이번에 나와 장편영화에 데뷔했다. 촬영 시작 1년 전부터 시나리오를 보여주면서 이야기했다. 앞서 만든 두편의 단편에선 음악이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만 나왔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음악을 많이 쓰려고 했다. 썰렁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음악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거 같았다. 음악의 타이밍까지 사전에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원래 생각했던 부분에 음악이 들어갔고, 어디까지 음악이 지속될 것인지는 편집을 하면서 정했다. 전반적으로 집시풍 혹은 성인 트로트풍의 음악을 주문했다. 하지만 녹음과정에서 음악이 세련되어졌다. 지금보다 훨씬 아마추어적이고 촌스러운 느낌을 원했는데. 음악의 완성을 기하고 싶은 것이 음악감독의 욕심이었고, 그와 나의 중간 정도에서 합의를 한 셈이다.

-은숙이 낭송하는 시는 시나리오에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문소리가 시를 써가지고 왔다. 은숙의 마음으로 쓴 것이라면서. 시에서 본 것 같은 단어는 많이 나오는데도 완성도는 어딘지 모르게 떨어지는 시였는데, 실제 은숙이 썼을 법한 것이었다. 일단 영화 중간에 한번 넣었는데 느낌이 좋았다. 엔딩을 고민하던 중에 다시 시로 끝내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리고 문소리가 딱 어울리는 시를 써왔다. (웃음) 자신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것처럼 시작하다가 결국은 ‘나의 몸은 붉은 꽃’ 어쩌고 하면서 자기 중심적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 속에 죽음이 세번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별안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죽음의 방식도 여러 가지겠지만, 그런 식이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적으로는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실제로 죽음은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다.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연극적인 연기, 비현실적인 죽음을 통해 영화 전체적으로 소격효과를 생각하기도 했다.

-오리배가 등장하고, <생활의 발견> 속 예지원을 연상시키는 은숙의 캐릭터를 볼 때,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유사한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런 비교가 싫지는 않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가장 재밌게 본 한국영화에 속하고.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느낌이 안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몇몇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홍상수라고? 임상수가 아니고? (웃음)”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그런 지적에 대해서는, 그저 내가 그 영화들을 너무 좋아한다는 말밖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영화 속 인물들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 지방대 교수나 지방시민단체 활동가들, 지방 방송국 PD들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인물에 대한 애정이 30%라면 조롱이 70%는 되었던 것 아닌가. =애정이 30%라는 건 인정하겠는데(웃음) 조롱이 70%는 아니다. 이것저것 까발려서 희화화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영화에서 만나면 즐겁지 않겠냐고 말하는 정도였다.

-<1호선>의 인물은 처한 상황이 찌질할 뿐 영화는 그의 진심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어쨌거나 완전히 발가벗긴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이를테면 은숙이 왜 저렇게 가식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장면을 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일부러 발가벗겨서 비난하고 조롱하려던 건 아니었다. 약간 냉소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따뜻함이 있었다. 난 <여교수…>의 인물들 개개인이 밉거나 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을 봤을 때, 성장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 궁금해한다. 하지만 난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정면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 행동의 표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재밌는 건 시나리오와 영화를 본 사람들 모두 그들을 닮은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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