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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의 미카엘 하네케 [3]
김도훈 2006-03-28

서면 질문지에 대한 미카엘 하네케의 답변은 절반만 도착했다. 그는 얼마 전에 있었던 수술로 인해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고, 남은 절반의 질문지를 채워낼 여력이 없다는 전언이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보내준 답변에 외신과의 인터뷰를 일부 발췌해서 첨부했다.

-당신은 현대 유럽 영화계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불린다. 그같은 명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난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지루하냐?’고 물어본다. 감독으로서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은 관객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암시한다. 가능한 한 관객의 마음을 최대한 많이 동요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히든>은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여러 해 동안 함께 일하자고 제의해온 다니엘 오테유를 위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를 보면 내면에 어떤 비밀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하네케는 2000년작 <미지의 코드> 역시 작업을 제의한 줄리엣 비노쉬를 위해 만들었다- 편집자).

-<히든>은 개인적인 죄의식의 기원을 좇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알제리 전쟁에 대한 사회적 환기로 나아간다. <히든>이 지난해 파리 근교에서 무슬림 폭동이 벌어진 몇주 전에 개봉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전에 ‘1961 파리 대학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프랑스처럼 자유로운 언론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40년 동안 그런 비극이 감추어져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영화 속의 상황이 북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어떤 나라, 사람이 죄를 짓고 있는 다른 나라의 어떠한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비밀과 속임수, 그것을 토대로 한 가족제도에 대한 냉소는 초기작들로부터 <히든>까지 지속적으로 읽힌다. 많은 작품들이 중산층 가족을 토대로 하며, 여기 등장하는 가족은 현존하는 사회적 문제와 균열의 축소판이다. 가족제도가 서구 유럽사회에 팽배한 사회적 문제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에게 가족은 미니어처 전쟁이다. 만약 당신이 서구사회의 가족제도를 탐구한다면, 당신은 가족이 모든 분쟁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내 의도가 ‘가족 해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난 네 자녀를 가졌고, 내가 사는 곳이야말로 내 보금자리라 느껴지는 유일한 장소이다. 초점을 두고 싶은 단 한 가지는, ‘가족이 위협을 느낀다는 것’은 상당한 폭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야말로 안정성에 가치를 부여하고 뭔가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의지와 만족감을 구체화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의 상징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우리 가정의 어떠한 것도 잃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는 것이 <히든>의 키워드이다. 가족이 위협을 받거나 그로 인해 뭔가를 상실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폭력’이 가끔씩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조르주를 TV 문학토론 프로그램의 사회자로 설정한 이유는 뭔가.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마지드가 조르주를 만났을 때 곧바로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캐릭터이길 원했다. TV 사회자는 요즘 세상에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니까. 하필 그가 문학 프로그램을 담당하도록 만든 이유는, 조르주가 지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게다가 그런 지성을 가진 사람도 여린 성격을 지닌 겁쟁이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여기에는 특히 TV를 중점으로 하는 미디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여전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당신이 오스트리아 TV계에서 경력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TV에 대한 지독하게 비판적인 시선은 스스로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인가. =물론이다. (웃음) 나의 미디어에 대한 비판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얼마 전 호텔에서 TV용 영화들을 보면서 완벽하게 결론내렸다. 지금은 심각하고 좋은 TV영화나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1997년에 당신은 카프카의 <성>을 TV용 영화로 만들지 않았나. =카프카의 원작으로 TV용 영화를 만드는 것은 국제적인 영화계에서 성공을 거둔 뒤여서 가능했던 일이다. 사실 나는 TV 제작진을 위한 알리바이 구실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성>은 그들 스스로 뒤를 돌아보면서 “이것보라고, 우리 제작진이 얼마나 멋진 일을 해냈는지를!”이라고 자위할 만한 알리바이다. (웃음)

-당신은 종종 불편한 장면을 삽입하는 것으로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당신은 이같은 극적 장치의 이용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가. 혹시 이런 충격요법이 더 많은 관객과의 소통을 어렵게 할 위험은 없는가. =관객에게 ‘폭력’을 보여주는 게 좋은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유혈이 낭자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폭력을 ‘클로즈업’하는 것은 참을 수 없고 불쾌하다. 가끔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좀더 고상하고 좀더 믿을 만하며 효율적이다. 일종의 도덕적인 규칙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면의 롱테이크 신에는 아무런 해석도 없기 때문에 당신의 어떤 영화들보다도 관객을 의문에 빠뜨린다. 어떤 의도인가. =마지막 장면에 대한 무수한 해답과 해석들이 있다. 관객이 자기 나름의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면 영화 자체는 훨씬 덜 흥미로울 것이다! 난 관객이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논쟁하고 “오늘 저녁 뭐 먹을까?”라고 말하는 대신에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논쟁을 하며 극장을 떠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영화는 답을 주는 대신에 관객에게 질문을 해야 한다. 사실, 정치인과 돌파리 의사만이 답을 주는 척하는 것 아닌가! 나는 누가 테이프를 보냈는지에 대한 해답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히든>을 다 보고나서도 누가 테이프를 보냈는지 알고 싶어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영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히든>은 어쨌든 스릴러 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으며, 그래서 해답을 기대하고 들어온 일반 관객은 이같은 결말에 갑갑함을 느낄 것이다. 사실 당신 영화를 보는 관객은 당신이라는 감독의 특성과 어떤 약정을 맺어야만 하니까. =내가 관객에게 제의하는 것은 오랜 전통을 가진 계약적 동의다. 다시 말해, 예술가와 청중이 서로를 심각한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늘날의 관습적인 대량 유통 영화들은 관객을 파트너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지 은행의 돈기계로 볼 뿐이다. 내 작업의 유효성은 지난 수천년간 예술의 역사에 의해서 증명될 수 있다. 극장의 초기 역사를 보라. 그곳에는 관객과 창조자 사이의 상호적인 존중이 존재했다.

-<히든>에서는 카메라가 진실을 밝혀내는 대신에 사기극과 공모한다. 이것은 영화가 “1초에 24프레임의 진실”이라던 고다르의 아포리즘과는 정반대에 있다. =고다르의 말을 개작한다면 “영화는 진실을 서비스하는 1초간 24프레임의 거짓말”이다. (웃음) 영화는 인공적인 건조물이다. 그것은 리얼리티를 다시 건설하는 양 가장한다. 매우 교묘한 속임수의 한 형태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을 폭로할 수도 있는 거짓인 것이다. 만약 영화가 예술적 작업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저 솜씨있는 거짓말의 공정에 불과할 것이다.

-당신은 오스트리아 출신이지만 프랑스 배우와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고, 심지어 <피아니스트>처럼 오스트리아를 배경으로 프랑스어 영화를 만든다. 프랑스에서 일하는 특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프랑스에서 작업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오스트리아는 연간 10편 정도의 영화를 제작하는 반면, 프랑스는 같은 기간 150편 이상을 만든다! 하지만 외국에서 일하는 것이 내 방식까지 바꾸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당신이 오스트리아 출신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클래식 문화와 팝 문화의 상충을 잘 보여준다. <피아니스트>는 물론이거니와 <퍼니 게임>의 오프닝에서 클래식 음악이 갑자기 격렬한 펑크 록음악으로 바뀌는 장면도 그러하다. 이런 대비를 통해 당신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 점점 더 냉혹해지고 있다. 동시에 우린 ‘팬’ 문화라 불리는 젊고 즐거운 문화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건 나에게 극단적으로 비인간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난 우리가 가치라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을 보면서 미쳐버릴 것만 같다.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선천적 모순과 모호함을 지적해주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독일어로 찍을 4년 전에 쓴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1913∼14년을 배경으로, 20년 뒤에 나치가 되는 세대인 독일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금 내가 구상 중인 스토리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독일의 한 마을에 관한 3시간짜리 초상이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가. =아니. 그러나 세상을 지금보다 덜 슬픈 장소로 만들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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