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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점프를 하다> <올인>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
사진 이혜정김혜리 2006-04-06

지난해 봄, 나는 꿈을 꾸었다. 건물의 한쪽이 허물어지는 친숙한 악몽이었다. “또야?” 탄식하며 부서진 계단을 달려 도망치는데 이병헌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오른손에 권총을, 왼손에는 도넛을 들고 있었다. <달콤한 인생>이 개봉을 손꼽던 무렵이었다. 이병헌의 도넛과 권총이라니! 잠을 깬 나는 무의식마저 상투적인 자신에게 실망하여, 하마터면 슬피 울 뻔했다.

이병헌은 실크의 치밀한 결을 지닌 클리셰다. 달콤한 향과 매끄러운 질감은, 배우 이병헌이 어디로 여행을 떠나든 두고 갈 수 없는 가방과 같다. 고른 치열, 푹신한 음색, 은근한 귀티와 적당한 붙임성. 대부분의 한국 관객과 감독들은 어렵지 않게 이병헌의 특성을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내일은 사랑>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별다른 부침없이 성공적인 경력을 유지해온 이 배우는 마치 열려 있는 책과 같다. 그러나 책의 목차를 아는 것과 탐독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이병헌의 근작 <누구나 비밀은 있다> <쓰리, 몬스터> <달콤한 인생>은 배우 이병헌을 탐독하고 주석을 단 영화들이었다. <쓰리, 몬스터>는 건전하기도 하고 멋지기도 한 이병헌의 인상을 단도직입적으로 이용한다. 이런 남자가 주변에 있다면 어떨까, 라고 대뜸 가정한다. 이병헌이 분한 영화감독은 부유하고 유능하고 선량하기까지 한 남자이고 그래서 순수한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이 인물은 이병헌으로서는 드물게, 실제 나이와 근접한 배역이기도 하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이병헌 이미지에서 크림 중의 크림만 떠내서 썼다. 세 자매 공통의 완전한 연인 수현은 여자들의 세계에서는 사랑받고 남자의 세계에서는 경쟁력 있는 남자다. 여기서 이병헌은 거의 웃음을 참으며 스스로를 구경하고 있는 듯 보인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은 이병헌의 달콤함과 매끄러움을 접수하되, 그 달콤함과 매끄러움을 폭력의 우주 안에서 지탱하기 위해 한 남자가 치르는 투쟁에 주목한다. 나아가 <달콤한 인생>의 카메라는 이병헌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제때 제자리에서 본다. 눈빛과 표정, 몸짓을 세분해서 심리를 전달하는 이병헌 연기의 특성을 이해하고 동조한다.

배우는 철저히 이용당하기를 기다리는 존재다. 자신의 잠재력을 낱낱이 파악당하고 착취당할수록 행복한 자가 배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를 유심히 관찰하고 작품의 열쇠로 활용하는 감독들과의 작업은, 이병헌이 배우로서 흥미진진한 국면을 맞이했다는 소식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올인>을 끝으로 방송사와 계약도 완수한 그는 드라마나 영화나 온전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이병헌은 나의 짐작보다 느긋하고 망설임이 많은 사람이었다. <달콤한 인생> 이후의 휴식은 꼬박 1년을 채우고야 끝났다. “촬영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해요.” 막상 신작을 결정하고 나니 계절의 흐름도 조바심이 나는 걸까.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타난 이병헌이 희미하게 몸을 떨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어떤 기운이 아주 잠깐 출렁거렸다. 한강의 회색 교각들이 겹겹의 아치를 그려 짐짓 엄숙하게 그를 가둬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차기작을 조근식 감독님의 <여름이야기>로 결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쉬는 동안 제가 받은 시나리오가 110권이라고 매니저가 그러더군요. 제가 정독한 것은 그 절반쯤 될 거예요. 배우는 지금 어떤 영화를 찍고 있는지에 따라 비슷한 시나리오들을 받아요. <달콤한 인생>을 찍는 동안 액션, 누아르, 미스터리, 스릴러가 많이 들어왔어요. <범죄의 재구성>풍의 시나리오도 많았고요. 그런데 당시 <달콤한 인생> 같은 고생을 한번 더할 엄두도 안 났고 휴먼드라마, 멜로드라마쪽으로 관심이 기울었어요. <여름이야기>는 <TV는 사랑을 싣고>류 프로그램에서 추석 특집으로 황석영 교수의 지인을 찾는 것이 시작이에요. 그리고 영화는 교수의 젊었던 시절로 돌아가죠. 과거의 그는 여름방학에 농활 간 마을에서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됩니다. 한편 현재 시제에는 TV프로그램 PD와 작가 사이에 로맨스가 싹트죠. 주인공은 오만하고 냉소적인 한량 같은 구석이 있는 캐릭터고 제가 20대부터 60대까지 연기하게 돼요. 전체적 바탕에는 <내 마음의 풍금>의 시대적 배경과 정서가 있고, 사랑의 감정에는 <번지점프를 하다>의 느낌이 있고, 캐릭터는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의 제 역과 닮은 구석이 있어요.

-지난 연말 도쿄에서 이병헌씨가 케빈 코스트너, 애시튼 커처와 함께 해상구조대영화를 찍을 거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직 뉴스가 없는 것으로 보아 거절하신 모양입니다. =CAA 에이전트 제니 롤링스가 할리우드에서 저를 대변하고 있어요. <달콤한 인생>을 보기 위해 칸에 온 그녀와 만난 이후 CAA를 통해 할리우드의 시나리오를 계속 받아서 지금도 검토 중이에요. 말씀하신 영화는 <도망자> <퍼펙트 머더>를 연출한 앤드루 데이비스의 <가디언>인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결국 하지 않기로 했어요. 케빈 코스트너가 전설적 해양구조대원으로 사고로 친구를 잃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이고 애시튼 커처는 과거 우상이던 코스트너의 영락에 실망해 반항하는 대원, 저는 지휘에 복종하면서도 코스트너와 묘한 긴장 관계에 있고 커처와 갈등하는 동양계 해양구조대원 역을 제의받았어요. 그런데 할리우드에서 저를 어떻게 알고 제의를 하겠어요. 분명히 일본시장의 존재가 클 거라고 생각해요. 일본 영화시장에 영향을 끼칠 배우가 누군지 계산하는 것이겠죠.

-<올인>에서 주인공들의 사춘기에 극장이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공교로운 우연이다 싶었습니다. 몇몇 인터뷰에서 극장은 당신이 무의식적 그리움을 느끼는 추억의 공간 같았거든요. 노후에는 조그만 극장을 직접 운영하며 좋아하는 영화를 틀고 싶다는 말도 한 적 있고요. =네살 때 살았던 성남의 동네 극장에 사촌형이 데려가서 <빠삐용>을 본 게 처음 경험한 극장이었어요. 빽빽이 서 있ㄴ은 관객 틈에서 영화를 봤는데 안 보인다고 칭얼대자 형이 목말을 태워줬어요. 생애 두 번째 영화는 <나자리노>였죠. 미성년자 관람불가였지만 늑대 한 마리가 어슬렁대는 포스터가 어린아이를 유혹하기에 그만이었죠. 극장 구경 요령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친구들을 데리고 보러 다녔고 주로 이소룡 영화와 그 아류작들, 왕호가 나오는 영화를 정말 많이 봤어요. 그들은 내 환상이고 꿈이었어요. 극장 운영은 누군가 평생 배우로 살 거냐고 물었을 때 막연히 나온 이야기지만 몇 가지 상상은 있어요.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올인> <시네마천국>에 나온 극장 같은 곳이어야겠고 기간을 정해 저예산영화만 틀거나 제가 좋아하는 감독의 회고전, 특정 배우의 영화를 모아서 상영하면 뿌듯할 거예요. 할리우드의 차이니즈 시어터처럼 상징적 의미도 있으면 좋겠지요.

-이소룡 이야기도 나왔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의 다음 세대쯤 되는 시기에 강남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내셨지요? 부모님이 당시 아들에게 어떤 기대를 갖고 있었는지 기억나십니까? =기대가 크셨던 것 같아요. 어려서 반장 안 해본 사람 없겠지만 6년 내내 반장을 했고 중학교에서도 공부는 제법 했거든요. 고등학교 입학할 즈음엔 PD나 영화감독, CF감독을 진로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사회활동을 하면서(웃음) 상황이 좀 달라졌죠. 그래도 성적이 많이 처지진 않았는데 부모님께 큰 충격을 드린 사건이 있었어요. 모교 선후배 관계가 무척 엄격한 편인데 후배 교육시킨답시고 정강이를 찬 것이 급소에 맞았거든요. 사실 나는 후배들을 많이 다그치는 편도 아니었고 스스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선배들 행동에 물들고 그런 문화에 젖어 있었던 거죠. 사흘간 수업을 못 받고 교무실 캐비닛을 마주보고 서 있었는데 사흘째 교무실에 불려온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돌아가서 무척 많이 우셨대요. 또 한번은 고3 때 내키지도 않는데 우연히 친구들과 휩쓸려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렸어요.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해서 고민 끝에 방과 뒤 아버지 사무실로 갔어요. 머뭇거리다 고백하고 불호령을 기다리는데 픽 웃으시더라고요. “이젠 어른이 됐네” 하시면서 “담배 한대 피울래?” 그러셨어요. 아버진 평소 말은 없으신데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감동을 주는 분이셨어요.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도 “제가 연기자가 되면 어떻겠습니까” 여쭙자, 뜻밖에 “뭘 하든 최고는 아니어도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된다면 후원해주마”라고 하셨어요.

-이상적 남성상에 끼친 아버님의 영향이 컸겠군요. =맞아요. 대학 다니면서 남자친구들끼리 하는 일들을 아버지와 함께 못해본 게 많이 후회돼요. 아버진 어머니를 깊이 사랑했고 연조 깊은 영화광이었고 저희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같이 있는 동안 재밌는 분이었어요. 옛날 사람다운 보수성도 있는 반면 의외로 상상을 초월해 엉뚱한 부분도 있었어요. 그런 이중성, 양면성이 제게도 있어요.

-브래드 피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병헌씨를 연상했습니다. 근육질 미남이면서 어리광쟁이의 표정이 있고 언제나 자신감이 비쳐나오는 면이 닮았어요. <오션스 일레븐>의 브래드 피트가 입에 군것질거리를 매달고 사는데, 마침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씨가 초콜릿 무스를 먹는 장면을 보고 웃기도 했죠. 그런데 브래드 피트는 배우가 되기 전에도 주변 사람과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스타였다고 하더군요. 성장기에 인기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은 어떤 식으로든 표식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이병헌씨는 어땠나요? =브래드 피트와 닮았다는 말은 세번쯤 들었어요. 베니치오 델 토로와도 눈이 닮았다더군요. 남보다 한살 먼저 학교에 입학했는데, 나이도 어린 놈이 무척 권위적이었던 것 같아요. 유치원 때 배운 태권도로 애들 기를 꺾으려고 했고 개구리 잡으러 가자 메뚜기 잡으러 가자 주동하는 골목대장이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요일에 엄마랑 외출했다가 우리 반 아이와 마주쳤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친구가 제게 “반장님, 안녕하세요?”라고 90도로 인사를 하는 거예요. (좌중 폭소) 엄마가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어요? 또 어릴 때는 여자아이랑 싸워서 이겨도 뿌듯하잖아요? 언젠가는 조회시간에 반장이라고 애들 줄을 세우다 말 안 듣는 여자애가 있어 엉덩이를 발로 찼거든요. 이겼다고 신나했는데 이튿날 그 부모님이 찾아와 마구 호통하셔서 펑펑 울었죠. (웃음)

“다른 건 하나도 안 힘들었는데 욕먹는 것이 고됐어요”

-<내일은 사랑>의 신범수 역으로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병헌씨가 KBS 14기 공채 탤런트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놀랐습니다. 불쾌하실 수 있겠지만 당신한테는 어느 날 갑자기 발굴된 스타라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그런 반응이 종종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어요. 공채로 뽑힌 60명이 연수에 들어갔는데 본부장, PD님들이 “넌 가까스로 붙었다. 1호로 잘릴 테니 조심해라”면서 저만 면박을 줬어요. 다달이 못 따라오는 사람을 탈락시키는 시스템이라 살벌했거든요. 당연히 한달 뒤에 잘릴 줄 알았는데 3개월 연수 말미 최종 테스트에서 올A를 받았어요.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연극, 영화를 경험했거나 연영과 학생이었는데 저는 어떤 조(調)가 박히지 않은 백지상태라 요구를 잘 받아들인 경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하루는 연수 중에 허심탄회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기명으로 써내라고 하더군요. 슬쩍 보니 다른 사람들은 감사인사가 주였는데 저는 “가르침은 솔직히 고맙지만 PD와 연기자들의 관계가 수직적인 것처럼 보여서 이해가 안 간다”고 썼어요. 그리고 속으로는 ‘내가 지금은 누군가에게 선택되는 상황이지만 나중에 정말 좋은 연기자로 뿌리를 박는다면 내가 대본을 고르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출한 다음부터 써내라고 하신 분이 인사도 안 받으시더라고요. (웃음)

-본인의 잠재력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습니까? =<아스팔트 내 고향>이 첫 작품인데 감독님이 사람들 앞에 저를 세워놓고 “넌 이게 데뷔작이자 은퇴작이야. 끝나면 방송국 근처 얼씬거리지 마라. 대체 왜 연기자가 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어요. 다른 건 하나도 안 힘들었는데 욕먹는 것이 고됐어요. 그게 너무 싫고 무서워 촬영장 나가는 것이 가위 눌릴 정도였어요. 만약 <아스팔트 내 고향> 끝내고 다음 작품 사이가 떴다면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두 번째 작품부터는 감독님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쓴맛을 잊으면서 “진짜 열정이 있어야 하는 직업”이라는 재미를 느꼈어요.

-1996, 1997년은 이정재, 장동건, 박상원, 안재욱씨 등 TV 스타들이 충무로로 왔다가 고배를 마신 시기입니다. 이병헌씨도 그 무렵 찍은 영화들에 대해서 후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는 표현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런어웨이> <그들만의 세상> <지상만가>를 어떻게 스스로 평가하고 정리하셨습니까? =시나리오란 다양한 삶을 담고 있는데 어린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많은 부분 흉내만 내는 게 아니었나, 그런 면에서 무책임하고 무모하지 않았나 싶어요. 예컨대 <그들만의 세상>에서 제가 분한 인물이 충격과 허무감에 빠져 거친 섹스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당시 저는 그런 심리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연기했어요. 그러니까 다시 보면 민망해요. 하지만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흥행도 그때는 10만 관객만 넘으면 파티를 여는 제작자도 있던 시절이라 큰 불만은 없었어요. 작업이 재미있고 제가 할 수 있는 영화가 계속 있고 극장에서 관객과 함께 내 영화를 본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어요. 하지만 겁먹은 순간은 있었죠. 충무로에는 미신이 있어서 영화가 세편 연달아 실패하면 아무리 인기있어도 안 써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불안했어요. 정말 아무도 나를 캐스팅 안 해주면 어쩌나 하는 상상이 제일 싫었어요.

“양대 콤플렉스, 입술과 목소리가 장점이라니 혼돈스러웠어요”

-이병헌씨는 오른쪽 윗입술이 왼쪽보다 눈에 띄게 위로 솟아 있어요. =입술은 진짜 큰 콤플렉스였어요. 나는 내가 어떤지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고 느끼는 부류인데, 배우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얼굴이 되면서 사람들이 평가하는 나를 통해 자신을 조금씩 알아간 것 같아요. 오랜만에 본 사람들은 제 느낌이 많이 점잖아졌대요. 어릴 때는 촬영장에서도 BB탄총으로 여배우들 정말 많이 울렸거든요.

-<달콤한 인생> <올인>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그들만의 세상> 같은 작품들이 이병헌씨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거나 끝을 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가 영화의 액자가 된 셈인데 <마리 이야기> <아마겟돈>의 목소리 연기도 하셨죠. 본인의 목소리에 대해 어떤 감상을 갖고 있나요? =어렸을 때 엄마가 미국에 사는 외조부모님께 녹음테이프로 소식을 전하셨는데, 이따금 내게도 마이크를 주셨어요. 그런데 나는 녹음해서 듣는 내 목소리가 충격적이었고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배우가 되고 나서는, 양대 콤플렉스였던 입술과 목소리가 장점으로 평가받으니 순간 혼돈스럽기까지 했어요. 심지어 “이젠 대중이 다같이 나를 놀리는 건가?” 했다니까요. (좌중 폭소)

-목소리로 출연한 “대한민국은 바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광고가 요즘 방영되고 있는데요. 워낙 반듯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라 캠페인성 메시지를 읽으니 권위적으로 들리는 위험이 있는 듯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변하고 크게는 가치관도 변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라든지 소속감은 아직 갖고 있지만, 언젠가부터 민족주의, 애국주의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내가 그런 메시지에 반발하는 쪽으로 너무 치우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어요. 그 광고는 목소리만 출연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기도 했고요.

-<달콤한 인생> DVD 코멘터리에서 연출자적인 눈으로 장면을 분석하는 언급을 자주 하시더군요. DVD로 영화 보기를 즐기는 걸로 아는데 이병헌씨는 어떤 영화, 어떤 배우의 팬입니까? =처음 연기를 시작하면서 사람들한테 배우로서 무엇을 주고 싶은가 생각할 때 염두에 둔 ‘영화’는 <시네마천국>이었어요. 어릴 적 제게 영화란 그냥 꿈이었어요. 티켓을 건네는 순간 풍겨오는 냄새를 포함해 극장이란 공간 자체도 가슴이 콩닥대는 꿈이었지만, 그 안에서 본 영화들도 왕호, 이소룡, 성룡의 무술영화 아니면 주로 판타스틱한 영화들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내게 ‘영화’는 현실의 반대말이었어요. 그러나 지금 내게 영화의 의미는 많이 달라졌죠. 취향도 마이너한 쪽으로 옮겨갔고요.

“달리 생각하면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영화에서 관객이 이병헌씨의 캐릭터가 잘못 되거나 다칠까봐 연연하게 된 것은 <내 마음의 풍금>(1999)의 수하가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같은 해 촬영한 드라마 <해피 투게더>의 2군 야구선수 서태풍 역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드라마의 주인공은 외적 조건은 열등해도 정신이나 영혼이 특별한 사람이다는 식의 결론이 나는데 서태풍은 이도저도 아닌 평범의 결정체였거든요. =변화가 있었다면 <내 마음의 풍금> 이전까지는 시나리오를 스토리보다 역할 중심으로 봤는데 <내 마음의 풍금>에서는 그 반대였어요. <해피 투게더>의 서태풍은 어찌 보면 배우 입장에서 많은 것을 버리는 연기지만, 다르게 보면 사람들이 모르는 내 안의 다른 ‘나’이기도 했어요. 그의 엉뚱함은 제 것이거든요. 그래서 서태풍의 행동 1/3 정도는 제가 애드리브로 했고 내내 무척 즐기면서 연기했죠.

-이병헌씨는 여성을 상대하는 역일 때는 다소 전형적인 느낌인데, 남자 배우들과 어우러져 있으면 색다른 매력이 보입니다. 실제 이미지도 여성의 연인인 동시에 남자들도 “멋있다”고 인정하는 남자에 가깝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그 점을 극명히 드러낸 작품 같습니다. 남자들 사이에서 매력을 발휘하는 남자랄까, 항간에 퀴어영화라는 평판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남자판 <고양이를 부탁해>!(웃음) 남자들과 있을 때 본래의 내가 더 많이 나와요. 연기에선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촬영 중엔 감춰져 있던 어렸을 적의 내가 살아나는 것 같아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한 작품이 끝나고 몰입했던 인물을 떨쳐버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거든요. 저는 최민수 형처럼 “내가 그를 떠나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다”는 정도는 아니에요. 그저 캐릭터의 버릇이 일상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정도죠. 그런데 터득한 사실은 하나 있어요. 작품을 끝내고 본래의 나를 회복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중고교 시절의 친구들과 만나는 거예요. 그들을 만나면 잊었던 내가 돌아와요. 만약 그 친구들이 평소 일하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면 그들도 변해 있겠죠?

-<누구나 비밀은 있다>를 보며 이병헌씨도 속으로 웃으며 연기하지 않았을까 상상했습니다. 완벽한 남자의 역할이 마치 이병헌씨가 이병헌씨를 갖고 인형놀이를 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 남자는 전지전능한,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 같죠. 천사이건 뭐건 인간과 신의 중간적 존재 같은 느낌, 비현실적인 감각으로 연기했어요.

-<내 마음의 풍금> 이후 이병헌씨가 고른 시나리오를 보면 특정한 취향이 보입니다. <공동경비구역 JSA> <중독> <번지점프를 하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구조적 트릭이 있는 시나리오랄까, 모두 뒤에 가서 맞아떨어지는 미스터리 퍼즐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딱히 실타래가 풀리는 스타일, 반전이 있는 영화보다 독특한 형태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반전은 단지 그 독특함의 형식 중 하나고요. <달콤한 인생> 경우, 액션은 오히려 힘들 것 같았고 한 남자의 극히 세밀한 심리를 줄곧 따라간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런 연기를 한번 평가받고 싶었어요. 배우들은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과제에 부딪혀보려는 마음이 있거든요.

-영화포스터 작업을 함께 진행한 이전호 사진작가께서, 스스로 납득 못하면 작업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배우라고 이병헌씨를 평했습니다. 또 인터뷰에서 “그 부분은 상상으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언급을 자주 하시는데, 웬만하면 연기를 상상으로 하기 싫다는 의식의 반증 같습니다. 배우로서 알지 못하는 세계가 많다는 점에 부담을 느끼십니까? =그래서 나를 가두지 않으려고 애써요. 일이 아니면 매니저를 동반하지 않아요. 가수라면 마이클 잭슨처럼 살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배우가 잭슨처럼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건 제일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거나 보여줘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려면 사회의 밑바닥부터 상류층까지 직접 경험은 못해봐도 부딪혀는 봐야죠. 만약 내가 신인이라면 정말 아주 나쁜 짓 빼고는 다 체험해볼 것 같아요. 배우들에겐 이런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어 포장마차에 술 마시러 가면 모자 푹 눌러쓰고 되도록 사람이 안 보이는 자리에 뒤돌아 앉아서 술을 마시죠. 그러다가 옆 테이블에서 알아보고 “어, 누구 아니에요? 같이 한잔하면 안 될까?”하며 방해도 하고, 합석을 거절하면 “거참, 되게 잘난 척하네” 하며 욕도 하죠. 그럴 때면 “나는 배우니까 추한 모습 보이면 안 된다”, “사고 치면 안 되니 오늘은 그만 마셔야겠다” 하면서 제어를 하게 돼요. 저 역시 그러지만, 달리 생각하면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왜냐하면 그런 감정을 경험해보는 것도 배우에겐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한번쯤 필름도 끊기고 모르는 곳에서 눈을 뜨기도 하고. (웃음)

-생활은 공무원의 그것을 요구하면서 인간 심리의 온갖 극단을 표현해야 하는 연기는 사실적이다 아니다 품평하는 풍토에 반발심이 들지 않으십니까? =그런 괴리가 또 없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공인이라 불리게 되면 배우건 가수건 일단 도덕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하고 그 다음으로 실력이 있으면 괜찮은 거예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배우는 남들이 느끼는 희로애락, 남들이 해보는 경험은 되도록 다 해보고 부딪치는 사람이거든요. 만약 내가 좀 성격이 거칠면 그대로 부대끼면서 살고.

“불안이 나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죠”

-초기작부터 액션에 대해 많은 요구를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권총이 가장 잘 어울리는 한국의 남자배우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실제로는 총을 잘 몰라서 <백야 3.98> 찍을 때 뜨겁게 달아오른 연발총의 총열 때문에 낭패를 보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 액션 연기를 아주 좋아하진 않아요. 아직 동선의 그림이 제 상상과 딱 일치하지도 않고요. 액션 중에서도 <달콤한 인생>은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연기였어요. 저녁 7시부터 아침 9시까지 젖은 상태에서 추위에 떨며 다치고 꺾인 다음 숙소로 가서 샤워하려고 옷을 벗고 욕실 거울을 보면 몸은 너덜너덜하고 검댕에, 가짜 피와 진짜 피가 뒤섞여 묻어 있고 손가락은 뒤로 꺾여 퉁퉁 부어 있어요. 아무리 씻어도 가짜 핏물은 계속 안 빠지고 “불쌍하다” 중얼거리다 곯아떨어지면 오후 5시쯤 좀비처럼 퉁퉁 부어 깨곤 했죠. 2주간 액션신 촬영을 끝내고 나니까 초등학교 때 방학한 것처럼 행복했어요.

-남자 배우의 연기에 대한 평은 그가 힘과 카리스마를 어떻게 표현했는가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눈에 힘을 준다거나 특정한 억양이 반복된다는 비판이 그런 예인데요. 이병헌씨의 연기에 대한 호평들도 과거에 들어갔던 힘이 빠져서 좋다는 요지가 대세였습니다. 배우 입장에서도 강함을 표현하는 적절한 ‘주법’을 찾아내는 게 주요한 고민거리일 텐데요. =결과적으로 문제는 배우가 내면에 그 인물의 정서를 갖고 있는가로 집약되는 것 같아요. 정서가 기본이고 그것이 눈빛이건 안면 근육이건 액션이건 우연히 바깥으로 툭 튀어나오는 거죠. 그래서 영화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클로즈업은 사실적인 숏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크기, 떨림을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어떤 감정을 갖고만 있어도 클로즈업에서는 분명히 나온다고 믿어요. <달콤한 인생>에서 그렇게 했는데 조그만 모니터를 보신 감독님은 안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모니터 말고 직접 절 보고 느낌이 오는지 봐달라고 하면서 조율해갔어요.

-연기의 무게를 더는 과정이라서인지 중요한 대사를 일부러 더 강조하지 않고 던지는 습관이 보입니다. 그것이 치밀한 노력으로 완성된 자연스러움이라는 느낌도 주는데요. ‘웰메이드’ 연기라는 인상이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면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건 너무 앞지른 생각이에요. 중요한 대사를 흘리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연기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계산도 어렸을 때나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제 연기를 보면 굉장히 불안해요. <번지점프를 하다> 등을 보면서 왜 저렇게 발음이 엉성하고 중요한 대사가 말씀하신대로 애매하게 들릴까, 신인들이 보면 “이병헌 선배는 기본이 안 돼 있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돼요. 작품 들어가기 전까지는 시나리오를 무척 꼼꼼히 보지만 촬영장에는 시나리오를 아예 안 가져갈 때가 많아요. 혹시 틀리더라도 상황에 적절한 ‘생소리’를 얻으려고요. 예를 들어 <달콤한 인생>에서 신민아씨를 골목에서 다그치는 장면도 저도 모르게 버벅거린 건데, 그대로 쓴 거예요.

-표정이 미세하게 변하기 때문에 혹시 시나리오 행간에 마음속을 지나가는 대사를 혼자 써놓고 속으로 말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실은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정말 머리가 깨질지도 몰라요. 서예가나 동양화가도 붓을 들기까지는 구상이 있어야겠지만 일단 붓을 들면 느낌에 맡겨야 나중에 봐도 빈틈없는 작품이 나올 겁니다. 몇 센티미터까지는 이렇게, 다음 몇 센티미터까지는 이렇게 하자고 그리면 진정한 작품은 아니겠죠.

-이병헌씨는 매니지먼트사가 여러 차례 바뀐 케이스입니다. 최근 매니지먼트 회사의 사업 영역도 제작까지 확장되고 있는데 한명의 배우로서 매니지먼트에 솔직히 기대하는 기능은 무엇이고 이것 이상은 불필요하다고 금을 긋는 대목은 무엇인가요? =배우 본인에겐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봐주고 보편적인 길 말고 해당 배우의 성격과 특수성에 맞게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매니지먼트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에이전트의 일에 가까운 내용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도 앞으로는 매니지먼트가 에이전시의 방향으로 갈 거라고 봐요. 그런데 세상에는 긴 안목으로 성취감을 느끼기보다 당장 돈을 버는 게 급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기본 원칙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죠. 요즘 상장도 많이 하고 저 역시 그런 회사에 속해 있지만 상장회사란 어쨌든 회사 매출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방금 말한 원칙이 뒤로 밀리기 쉬워요. 공시의 경우도 그것이 배우 본인의 생각인 양 왜곡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달리 비쳐지겠구나 싶으면 불편한 부분이 있죠.

-스크린쿼터 축소 사태에 즈음해 문화를 물자와 동일한 논리로 교역하는 일의 위험성을 지적한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셨습니다. 쿼터 논의에는 몇 가지 맥락이 겹쳐 있는데 예컨대 저는 쿼터 축소 반대 구호로 “세계에 태극기 휘날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보이면 약간 불편함을 느낍니다. 입장을 바꿔보면 자칫 ‘작은 미국’의 논리가 될 수 있고 사고의 일관성이 무너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병헌씨는 우리 대중문화를 타국시장에 수출하는 한류의 복판에 서 있는 입장이므로 더욱 생각이 복잡하실 듯한데요. =그 구호는 저도 확신이 없었어요. 사실 쿼터에 대해 경제논리에 입각해 내 주장을 펼쳐보라면 많은 부분 잘 몰라요. 시위 현장에서 정치색을 느낄 때는 꺼려지기도 하고요. 영화인들 내부에도 생각이 하나로 일치되진 않겠죠. 미국 요구대로 제도를 바꿔서 빚어질 결과는 누구도 예측 못할 거예요. 다만 분명한 건 우리가 우려하는 쪽으로 결과가 나올 경우 피해의 무게가, 일이 잘 풀렸을 때 얻을 혜택보다 무겁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반대하는 게 옳지 않나 싶어요. 이를테면 한국영화 중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영화나 코미디의 극장 독점이 심화되고 비상업적 영화가 스크린에 오를 기회는 거의 사라지는 상황이 최악의 시나리오죠. 자신이 답답할 때도 있어요. 대학 2학년 때 연기를 시작해 내내 이 길만 걸어왔기 때문에 사회 전반의 움직임을 일반적인 내 또래만큼 안다면 거짓말이거든요. 배우들 대부분이 그래요. ‘쟁이’라는 말이 듣고 싶어 달려온 내가 순수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이제 나도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데 너무 기본적인 것을 모르지 않나 걱정될 때도 있어요. 배우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사춘기를 더 오래 겪는다는 생각을 해요. 늘 내가 어찌 될지 모르고 불안감이 예전보다 덜할 뿐이지 안정감이 삶을 지배한다는 생각은 못해요. 그러나 그런 불안들이 자유분방한 나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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