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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윌리엄> 귀족딸이 가짜 기사에 반했다네
2001-08-21

<기사 윌리엄>은 중세의 기사 이야기가 갖춰야할 요소들을 대체로 다 갖췄다. 용감한 주인공과 아름다운 귀족 딸의 사랑이 있고, 명예와 지위가 주인공보다 앞서는 연적이 있고, 이 연적은 자기 지위를 이용해 사악한 술수를 부리고,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인물들이 주인공을 돕고…. 그러나 크게 다른 게 있다. 주인공인 기사 윌리엄(헤쓰 레져)이 가짜 기사인 것이다.

지붕 수리공의 아들이지만 귀족 출신의 기사로 신분을 속이고 마창대회에 나간다. 주인공을 수행하는 이들도 이 사실을 안다. 마창대회 상금을 나눠 갖는 게 이들의 공동목표다. 여기서 많은 게 달라진다. 주인공 일행에게 왕과 민족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이란 있을 수 없다. 전쟁에서 왕을 구하는 일도 없다. 주인공이 활약하는 건 어디까지나 스포츠인 마창대회에서이고, 그의 연적은 마창대회의 챔피언이다. 갈등 요인은 주인공이 우승하느냐와 신분이 탄로나느냐 여부일 뿐이다.

자세히 보면 <기사 윌리엄>은 `기사 이야기'(이 영화의 원제목이기도 하다)에서 시대적 장식물만 빌어온 스포츠 영화에 가까운데, 그 장식물들을 아주 적절하게 활용한다. 그냥 미남 미녀가 아니라 중세시대에 평민 출신의 남자와 귀족의 딸의 만남이어서 특별한 양념을 치지 않아도 설렘이 생기고, 사랑의 아우라가 커진다. 중세의 신분차별이 불공평한 것이었던 만큼 신분을 속이는 주인공이 밉지도 않다.

영화에서 “그 시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라고 소개하는 마창대회는 속도감과 파워가 있으면서도 잔혹하지 않고 승부가 분명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대를 초월해 여러 장르에서 흥미로운 요소만 따와 배합하는 연출이, 얼핏보면 엉성한 것 같지만 솜씨가 상당함을 느끼게 한다. 록그룹 퀸의 <위 윌 락 유>가 마창대회장에 울려퍼지면서 관람객들이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는, 시대상으로 따져보면 얼토당토 않은 장면이 영화 관객의 흥까지 돋구는 첫 장면은 말이 안되는 것 같으면서 말이 되는 이 영화의 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목에 힘주지 않고 경쾌하게 끝까지 가면 좋았을 것을, 종반부에서 억지스런 갈등을 만들어내 기어코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들어 놓고 마는 게 아쉽다.

<LA 컨디덴셜>의 각본을 쓴 브라이언 헬져란드가 감독을 맡았다. 귀족 딸 조슬린으로 나오는 셰넌 소세이먼은 친구 기네스 펠트로의 생일파티에서 제작진의 눈에 띄어 캐스팅됐는데, 장래가 기대될 만큼 매력적이다. 25일 개봉.

임범 기자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