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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섬소녀의 파국적 성장담, <바람의 전설>

EBS 4월15일(토) 밤 11시

드넓은 바다와 섬 그리고 등대지기 아버지와 어린 딸이 있다. 물론 아버지에게는 육지에서의 상처가 여전할 테고 딸은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참지 못할 테고 파도는 무심히 몰아치고 바람도 무심히 불 것이다. 섬의 아름다운 풍경은 그래서 더욱 슬프게 느껴질 것이다. 기본 구도로만 보자면, <바람의 전설>은 때때로 김기덕의 <>을 연상시킨다. 고립된 공간에 사는 늙은 남자와 어린 소녀(이들은 아버지-딸의 관계로 그려지나, 언제나 그렇듯, 거기에는 그 이상의 관계가 함축된다), 스스로 갇히기를 원하는 남자와 그곳을 벗어나려는 여자의 갈등 그리고 결국 누군가의 죽음 혹은 누군가의 성장. 그러나 이 영화는 <>보다 부드럽고 환상적이며 무엇보다 카메라의 시선이 늙은 노인에 대한 연민에 맞춰져 있기 보다는 어린 소녀의 요동치는 내면에 맞춰져 있다.

<바람의 전설>은 브라질 감독 월터 리마 주니어가 모아실 로페즈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부녀가 사라진 섬에 도착한 식량 공급원, 다니엘에게서 시작된다. 한때 호세(아버지)의 딸, 마르셀라에게 육지 소식을 전해주고 글을 가르쳐주었던 다니엘은 자신이 마르셀라에게 선물했던 일기장을 발견한다. 다니엘은 일기를 읽으며 아버지와 딸 사이의 비밀을 따라 나간다. 그런데 영화는 이 과정을 직선적으로 제시하는 대신 아버지와 딸 사이에 있었던 과거 이야기와 현재의 다니엘을 오가고, 또 결합시키며 시간적 구조를 복합적으로 구성한다. 그 사이사이에 개입되는 환상적 요소들 이를테면, 마르셀라의 상상적 연인인 사울로의 목소리 그리고 바람의 움직임에 몸을 맡겨 사랑을 나누는 소녀의 관능적인 몸짓은 고립된 섬의 이미지와 어우러져 묘한 매혹과 공포를 자아낸다. 영화는 현실과 초현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시점을 분산시키고 이야기를 흩뜨리며 폐쇄된 공간과 소녀의 파국적 성장담을 독특한 스타일로 연결시킨다. 내부로만 치닫던 소녀의 열정이 결국 광기가 되어 자연과 하나되는 과정은 마치 섬의 신비로운 전설처럼 그려지고 있다.

한때 시네마노보 계열의 작품을 만들기도 했던 월터 리마 주니어는 이 작품을 통해 남미 특유의 색채를 부각시키며 199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섬 가득 울려퍼지던 상상 속 연인 사울로의 음성과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가 아련하게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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