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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고양이의 교훈
오정연 2006-04-21

야옹양과 동거한 지 4년째가 되어온다. 최근에는 출장에서 돌아온 선배로부터 너무나 마음에 드는 책을 선물받았다. 이름하여 <너의 고양이에게 배워라>(Learn from Your Cat)! 주옥같은 가르침, 이와 정확히 어울리는 사진이 배치된 이 책은 영어로 쓰여져 있다. 고로, 사진은 열댓번씩 들춰봤으되 완독은 아직이다. 솔직히 말하면 굳이 꼼꼼히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생생한 교훈을 전수해주시는 고양이님이 바로 눈앞에 있거늘. 그녀의 진지한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너의 페이스를 지켜라. 동거인이 밤샘 생활에 지쳐 들어오든, 연인의 배반에 눈물짓든 상관없다. 배고프면 밥을 달라고, 심심하면 놀아달라고, 그녀는 언제나 당당하다. 지금 당장 침대에 버터처럼 녹아버릴 것 같아도 눈앞에 식사를 대령해야 하고, 형이상학적 고민에 심취해 있다 할지라도 미친년처럼 야옹양과 숨바꼭질에 열중해야 한다. 그녀는 나처럼 편집기자의 마감 독촉에 주눅들고, 취재원의 비협조적인 자세에 눈치보지 않을 테지. 무엇보다도,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이를 행하는 존재의 우아함이라니. 오늘 일은 물론이고 내일 일까지 마감 직전까지 미뤄두고, 불안에 떨며 음주가무 및 딴 짓에 열중하는 것은 야옹양의 동거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둘째, 중요하다면 최선을 다해라. 그녀가 빈 벽의 한점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곳에 날파리든 개미든 그녀가 사족을 못 쓰는 ‘작고 꼬물거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어쩌다 집안에 빈 종이박스가 굴러다닌다면, 그녀는 박스의 모서리를 뺨을 비롯한 온몸으로 애무하며 느끼지 않고선 견디지 못한다. 물론 마지막 단계는 직접 들어가보는 것. 그것은 야옹양에게 있어 엄숙한 집중의 순간이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이루어지는 몸치장은 어떤가. 무려 1년하고도 3개월이 넘도록 몸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도 청결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정말이다!), 졸음과 싸우면서도 온몸을 빡빡 핥아대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좋아하는 감독이며 영화에 대한 기사인데 일이 되는 순간 미루고만 싶어진다든가, 엄연히 소중한 사람임을 알면서도 순간의 짜증을 이기지 못해 마구 대하는 스스로가, 왠지 슬프다.

마지막으로, 자신에 대해 변명하지 마라. 한 시간만 자고 집을 뛰쳐나가는 동거인을, 그녀는 나른한 미소를 띤 채 배웅한다. 도대체 어째서 너는 하루에 20시간을 자면서도 굶어죽지 않을 수 있고, 얼굴이 붓지 않는 거냐 화를 내도 도리가 없다. 푹신한 침대 위에 몸을 둥그렇게 말고 야옹양은 온몸으로 말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살도록 정해진 인생이라고. 어쩌다가 금지된 음식(이를테면 장미꽃잎)을 탐하다가 사고를 치더라도 순간적인 머쓱함을 표시할 뿐, 그럴 수도 있지, 라는 태도로 여유롭다. 야옹양이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나 역시 한번쯤 취재 중에 바보짓을 하고, 두번쯤 기사가 쓰레기 같더라도, 컨디션이 안 좋아다든가 원래 나는 그렇지 않다며 변명은 말 일이다.

ps. 네? 한두번이 아니라고요? 이것이 저의 본모습인 걸 어쩌겠습니까. (버럭) 이봐이봐, 변명하지 않는 것과 뻔뻔한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