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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7]

회고전으로 만나는 인도의 거장 리트윅 가탁

전대미문의 시청각적 융합물

인도영화의 대표적인 거장으로 손꼽히는 샤티야지트 레이는 리트윅 가탁이 생전에 남긴 글과 인터뷰를 모은 소책자 <영화와 나>의 서문에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존경어린 찬사를 바친 바 있다. “리트윅 가탁은 이 나라가 배출한 소수의 진정 독창적인 재능의 소유자 가운데 하나였다… 서사시적 스타일 속에서 그가 창조해낸 강력한 이미지들은 사실상 인도영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로 작고한 지 꼭 30주년이 되는 인도 영화감독 리트윅 가탁은 우리에겐 여전히 미지의 작가로 남아 있는 듯하다. 심지어 영화광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그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영화의 정치학과 시학을 동시에 고민한 위대한 작가들- 예컨대 로베르토 로셀리니, 장 뤽 고다르,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글라우버 로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오시마 나기사 등- 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화사의 거목이 이런 식으로 잊혀져가고 있다는 건 진정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감상적 오류>

<구름에 가린 별>

소설가로 출발해 인도민중극회(IPTA) 배우이자 연출가로, 그리고 영화감독으로 옮겨갔던 그의 행보는 좀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였다. 심지어 그는 (로셀리니와 유사한 태도로) 기꺼이 영화를 버리고 텔레비전으로 옮겨갈 것이라 말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진정한 관심은 영화에 놓여 있지 않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곤 했다. 그런데 정작 가탁이 만들어낸 영화들은 민속적인 형식과 브레히트적 장치간의 기이한 결합, 다큐멘터리적 터치와 놀랄 만큼 표현적인 촬영의 교차, 거의 당혹스러울 정도로 이례적인 사운드 편집 등이 불가사의하게 어우러진 시청각적 융합물,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영화들이었다(후일 가탁의 초기 걸작 가운데 하나이자 그의 유일한 ‘코미디’인 <감상적 오류>(1957)가 파리에서 상영되었을 때, <카이에 뒤 시네마>는 그의 독특한 사운드와 이미지 병치 방식을 장 마리 스트라우브, 자크 타티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의 그것과 비교하기도 했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비타협적인 예술가였으며 알코올 중독자이기도 했던 이 괴벽의 시네아스트를 평생토록 사로잡았던 주제는 1947년의 벵골분할(과 그 귀결)이었다. 그 자신 동벵골(오늘날의 방글라데시) 출신이었던 가탁에게 이 강요된 분할은 돌이킬 수 없는 문화적 단절을 초래한 참을 수 없는 비극이자 폭력에 다름 아니었다. 따라서 그의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별, 그리고 더욱 큰 비극을 초래할 뿐인 재회는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미심장한 알레고리가 된다. 특히 1960년대 초반에 그가 내놓은 일련의 작품들- <구름에 가린 별>(1960), <사랑스러운 간다르>(1961) 그리고 <강>(1962)으로 이어지는 ‘콜카타 3부작’- 은 이상 언급했던 가탁 영화의 스타일과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난 대표작들로 손꼽힌다.

가탁의 영화 가운데 생전에 비교적 따뜻한 반응을 얻은 작품은 <구름에 가린 별> 정도였다. <사랑스러운 간다르>와 <강>의 연이은 실패는 가탁을 오랜 기간 침묵하게끔 만들었다. <강> 이후 10여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가탁은 당시 신생국가였던 방글라데시 영화계의 자본으로 <티타시라는 이름의 강>(1973)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가히 가탁 영화세계의 총결산이라 할 이 작품은 그가 얼마만큼의 예술적 야심과 깊이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가늠케 하는 현대의 위대한 서사시이다. 동벵골 티타시 강가 말로(Malo) 공동체의 몰락의 과정을 유장한 리듬에 실어 보여주면서 가탁은 자신의 유년기를 사로잡았던 40여년 전의 과거에 대한 숭고한 기념비를 완성했다. 그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 지식인으로 출연하는 <추론, 토론 그리고 이야기>(1974)는 그의 마지막 영화가 되었고 이는 그가 죽은 지 일년이 지난 1977년에야 개봉되었다. 씁쓸한 후일담 한 토막. <추론…>이 개봉되기 열흘 전, 가탁의 데뷔작 <시민>(1952)이 콜카타의 한 극장에서 ‘비로소’ 개봉되었다. 샤티야지트 레이는 만일 이 영화가 제때 빛을 보았더라면 자신의 <길의 노래>(1955)가 차지했던 ‘최초의 대안적 벵골영화’ 자리는 <시민>의 몫이 되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것이 의례적인 겸손의 발언이 아니라 진정 정당한 평가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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