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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나의 바보짓
권리(소설가) 2006-05-05

나의 특기이자 취미는 바보짓이다. 이건 자조적일 뿐 자학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이 말은 자위적이다). ‘바보짓’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다. 쉽게 풀이하면 닭대가리 짓이요(전국의 닭님들아, 미안), 어렵게 말하면 형이상학적 부조리와 모순이 어우러져 탱고를 추는 꼴이라 할 수 있다. 홍상수 감독 말마따나 죽은 자들의 찌꺼기가 뭐라 하든, 내가 바보짓을 자주 한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가 언제부터 그 짓을 하게 되었을까? 일단은 나의 탄생부터 바보짓이었다. 나는 정자가 난자를 껴안으려 했던 1970년대 끝자락의 어느 찬란한 여름에 벌어진 사건을 막았어야 했다. 과대망상자의 뇌를 빌려 생각해보건대, 그 찐득했을 밤(혹은 낮?)과 1980년대 한국사회에 일어난 중차대한 사건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카오스모스적인 인과관계가 작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대체 어떤 실수들을 저질렀기에 이토록 자신의 바보짓을 (바보스럽게도) 홍보하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 사건은 나의 중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100m를 18초에 완주하는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맹맹한 실력을 가진 주제에 400m 달리기 경주에 출전했다. 이것은 당시 우리 반 학생들의 어느 누구도 나보다 빠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게는 아직도 믿을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었고, 어쨌든 난 달렸다. 스타트는 아주 좋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아무 생각이 없는 학생이었기에 아무 생각없이 달렸다. 하지만 혼자 일등으로 달리고 있으려니 왠지 외로웠다(나는 꽤 외로움을 잘 타며 양보 정신도 투철한 편이다). 그 바쁜 달리기 와중에도 난 외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내 뒤를 바짝 추격했고, 난 외로운 마음에 내 옆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특유의 양보 정신을 발휘해 내 자리마저도 남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난 예상대로 꼴찌로 들어와 반 아이들로부터 한겨울의 냉수마찰 같은 대우를 받았다.

두 번째 사건은 고2 때 일어났다. 난생처음 연애편지란 것을 받아보았다. 하지만 난 그때 ‘연애란 건 대학에 가서나 해봐야 하겠지만, 펜팔은 받아주겠어’라고 하는 꽤 합리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유난히 철자가 자주 틀리는 편지를 보내온 녀석에게 대뜸 이런 답장을 보냈다. ‘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좋아하는데, 넌 공부는 잘하니?’ 그 이후로 우린 몇번의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녀석은 내게 하트 궤적을 그리고 있는 에어쇼 사진 한장을 덜렁 보낸 이후로 답장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기억 속에 잊혀졌다. 몇년 전 난 싸이월드의 사람찾기 코너를 통해 ‘우연히’ 그를 발견했다(솔직히 우연은 아니다. 나의 뇌 구덩이 속에 파묻힌 그 먼지 묻은 이름을 기억해내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그의 사진과 대충의 역사를 살펴본 난 외쳤다. “아뿔싸!” “오 마이 갓!” “지저스!” 아는 감탄사는 다 튀어나왔다. 환골탈태란 말은 그럴 때 쓰는 것이었다. 어쨌든 난 그 옆에 송충이처럼 바짝 달라붙어 있는 XX염색체를 가진 생물을 보고 ‘힝’ 하는 콧소리를 내고는 그의 미니홈피를 닫아버렸다.

앞의 두 사건은 어려서 그랬었다고 치자. 하지만 난 대학에 들어가서는 바보짓 정도가 아니라 다분히 고의성 짙은 ‘바보 수작’들을 저질렀다. 칠판에 휴강이라고 써놓고 학우들과 단합해 강의를 빼먹는 한편, 학보사 마감이 임박한 날, 동료들을 선동해 오로지 내 짝사랑 한 사람을 위한 단독 신문을 만들었으며, 졸업식 때엔 외계인 옷을 입고 졸업 사진을 찍었다. 어느 틈에 내 주위엔 친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벌어졌는데, 난 아무래도 그것들이 내 바보 수작과 무관한 것 같지가 않다는 왓슨적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어쩌면 이 재미없는 세상에서 벌어진 혁명들은 온갖 바보짓들의 총집합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설문조사에서 노인들에게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더 많은 모험을 하지 못해 아쉽다.” 자, 어떤가? ‘바보짓=모험’이라고 우기며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보는 건? 오늘부터 바보짓에 도전할 당신의 얼굴을 떠올리며 난 바나나우유처럼 빙그레 웃는다. 오늘도 바보짓 한건 해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