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무사> 죽을지언정 피해갈순 없다
2001-08-24

고려말인 1375년. 중국에는 명과 원이 전쟁중이고 고려는 명과 친선관계를 맺기 위해 사신을 잇따라 보낸다. 명은 고려를 믿지 못한 채 사신들을 투옥하거나 감금한다. 그중 한 사신단이 명에서 첩자 취급을 받아 귀양길에 오른다. 호송줄에 묶여 사막을 건너던 중 원의 공격을 받아 사신과 명의 호송군들이 모두 죽고, 사신을 호위하러 간 고려의 장군과 무사들은 풀려난다.

목적과 명분뿐 아니라 우군과 적군의 구별도 사라진 채 이국땅 한 가운데에 버려진 무사들. <무사>는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이들의 귀향기인 동시에,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그 길로 치닫는 과묵한 검객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영웅연가이다. 이 스케일 큰 이야기를 찍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스태프 300명이 5개월 동안 중국대륙 1만㎞를 횡단했다. 당시의 외교사와 이들의 운명을 연결짓는 대하 사극이 나올지, 호머의 오디세이같은 서사적 로드무비가 나올지 영화계 안팎의 궁금증과 기대가 컸다.

김성수 감독이 택한 길은 디테일이 풍부한 서사극보다, 파멸해가는 마초들을 풍부한 이미지로 잡아내는 사실적인 소묘였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와 샘 페킨파에서 비롯됐다”는 그의 말처럼 이 무사들은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에 나오는 총잡이들을 연상시킨다. 싸우다 살아남으면 다시 모여 앞으로 내달리는 남자들의 일방통행길에 절단된 사지와 피가 난무한다.

대신 스토리 라인은 간결하다. 최정 장군(주진모)은 원군에 납치된 명의 부용 공주(장쯔이)를 발견한 뒤 공주를 구해 명으로 데려다 주고 명예를 회복하는 방안을 선택한다. 그러나 공주 때문에 원군의 추격을 받는다. 노비 출신의 무사 여솔(정우성)과 최 장군과 공주 사이에 멜로적 구성이 있지만,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

한눈 팔지 않고 예정된 파국으로 내닫고, 원군의 장수(위롱광)를 주인공 일행 못지 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무사답게 그려낸 연출은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럼으로써 전쟁과 폭력의 허무를 보다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하지만 캐릭터들이 개성을 발하지 못한 채 자기 입으로 자기 특성을 설명해버리고, 그 대사들도 자연스럽지 못한 건 아쉽다는 차원을 떠나 치명적인 결점으로 보인다. 등장인물들이 한 덩어리로 이미지를 만들 뿐, 개개의 동인과 그것의 설득력이 뒷받침되질 못한다. 그래서 이 마초들이 지금 무엇을, 어떤 상실감을 대변하는지 정체가 잘 안 잡히다. 그게 비장미의 무게감을 떨어뜨리지만 전투장면에 사실감과 속도감이 살아나고, 정우성과 장쯔이는 여전히 멋있고 아름답다. 개봉일은 9월 7일.

임범 기자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