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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의 새해, 뭔가를 보여주겠어!”
2001-08-24

당신이라면, 이런 자신을 쉽게 사랑할 수 있을까? 얼굴에는 주름살이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한 노처녀(혹은 노총각)이고, 비만증은 아니지만 몸은 퉁퉁하며, 손에서는 담배가 떠나지 않고, 간은 늘 알코올에 절어있다. 로맨틱코미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그녀'(르네 젤웨거)는 이 모든 걸 다 가졌다. `사회적 혼기'가 점점 멀어지는 것에 조바심 치기 시작하면,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외모에 먼저 시비를 걸기 마련이다. 브리짓 존스는 32살의 새해를 여전히 홀로 맞아야 하는 자신에게 절망해 또 한병의 보드카를 비워낸다. 그리고는 인생을 제대로 잡아줄 방편으로 일기 쓰기를 시작하더니 첫번째로 다음과 같이 결심한다. `새해에는 술도 끊고 몸무게를 줄여 날씬해진 다음 진실한 사랑을 찾자!'

외모나 술·담배에 대한 결심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똑똑하지만 무뚝뚝한 인권변호사 마크(콜린 퍼스)가 그에게 푹 빠지더니, 매끈하게 잘생기고 매너 좋은 출판사 편집장 다니엘(휴 그랜트)마저 사랑을 호소한다. 뜻밖에도 브리짓 존스는 두 남자 가운데 한명을 선택할 처지에 놓인다. 이 획기적인 전환의 비밀이 뭘까? 처음에는 냉랭하기 그지 없던 마크가 별다른 계기도 없어 보이는데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한다”고 `갑자기' 고백한다.

전세계에 500백만권 이상 팔린 헬렌 필딩의 원작 소설에선 그 비밀을 쉽게 문자로 읽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영화에서는 달리 찾아야 한다. 이쯤에서 잠시, 뚱뚱한 속옷 디자이너(이혜은)의 극적인 결혼 성공담을 그렸던 한국영화 <코르셋>을 참고해보자. 주인공은 뚱뚱한 외모 때문에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곤란을 겪다가 `자신을 긍정하는 힘'을 얻는 순간부터 다른 인생을 살게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배우 르네 젤웨거는 이걸 대사없이 아주 자연스레 보여준다. 기죽은 것 같지만 실은 기죽지 않았고, 절망한 것 같지만 실은 절망하지 않은 르네 젤웨거는 사랑스럽다. 영화가 만들어진 영국에서 시작한 흥행돌풍이 미국으로 이어지고, <뉴욕 타임스>가 “놀랍게 완벽하다”란 말로 이 배우와 배역을 칭찬했을 정도로.

제작과 각본을 맡은 원작자 헬렌 필딩은 이 작품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착안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에서 방영된 <오만과 편견>에서 마크 다아시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콜린 퍼스에게 다시 마크 다아시란 이름으로 캐스팅했다. <오만과 편견>에서 “독신남이 한 재산 갖게 되는 순간,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란 문구는, 브리짓 존스의 다음과 같은 독백으로 바뀌었다. “삶의 한 부분을 돌보기 시작하는 순간, 다른 부분들은 산산조각나기 시작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어온 여성감독 샤론 맥과이어가 연출했다. 9월1일 개봉.

이성욱 기자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