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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프로그램 전성시대 [3] - <키친 컨피덴셜>

<섹스&시티>의 대런 스타와 <저스트 슛 미>의 데이브 헤잉슨이 만든 <키친 컨피덴셜>

주방문 뒤의 생생한 현실

올리브 네트워크 금 밤 10시

잭 보딘(브래들리 쿠퍼)은 타고난 재능 덕에 힘들이지 않고 유명 레스토랑의 주방장이 된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쉽게 얻은 부와 명예는 술과 마약과 여자의 달콤함만 알려줬다. 인생의 진리를 알기에는 아직 어린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스스로 인생을 망치는 것뿐. 이제 잭은 동네 한구석에 있는 어린이 전용 레스토랑에서 지난날을 후회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에게 새로운 삶이 펼쳐진 것은, 뉴욕의 최고급 레스토랑 노리타에 주방장으로 취직되면서다. <키친 컨피덴셜>은 노리타에 취직하면서 달라진 잭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의 저명 요리사 앤서니 보뎅의 동명 자서전이 원작인 이 시트콤은 <섹스&시티>의 프로듀서 대런 스타와 패션 잡지사를 배경으로 한 <NBC>의 인기 시리즈 <저스트 슛 미>의 데이브 헤잉슨이 손잡고 만든 작품이다. 원작자 앤서니 보뎅은 프랑스계 미국인으로 미국의 유명한 요리전문학교인 CIA를 졸업한 뒤 뉴욕 번화가의 식당에서 20년 넘게 주방장을 했던 인물. 하지만 그는 책에서 자신이 “엉터리 요리사에 말썽꾸러기”였다고 고백했다. “명예보다 돈을 좇는 용병으로, 고객에게 훌륭한 식당뿐 아니라 나쁜 곳도 다녔기 때문”이라며.

보뎅의 이런 경험들은 <키친 컨피덴셜>에 현실을 달관하며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선사했다. 그래서 <키친 컨피덴셜> 속 현실은 장난꾸러기 제이미 올리버가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이 보여주는 달콤하기만 한 현재나 리얼리티 쇼들에 출연한 고든 램지의 성공한 삶이 아닌, 평범한 루저들이 살아가는 팍팍한 세상 그 자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갑갑하거나 지루하지는 않다. 이는 <섹스&시티>에서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현실성을 그리는 법을 익힌 대런 스타의 힘이다. 그는 식재료를 훔치지 말라는 ‘바른 사나이’ 잭의 주문에 “알았어. 앞으론 들키지 않게 할게”로 대응하거나, 노리타의 정보를 빼가는 이웃 가게의 주방장과 더이상 자지 말라는 부탁에 “와우, 지금 나더러 하지 말라는 거예요? 섹스가 이보다 더 짜릿해질 수는 없을 줄 알았는데, 더 짜릿해져버렸네!”를 외치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고루하게 흐를 수 있는 이야기의 강약을 조절했다.

만약 <키친 컨피덴셜>에 <섹스&시티>와 <저스트 슛 미>보다 조금 높은 점수를 주게 된다면 나락에 떨어진 요리사 잭의 성장기에 초점을 맞춘 이 시트콤이 결코 교훈적이거나 (시청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키친 컨피덴셜>은 ‘사랑도 섹스도 쿨하게 해야 한다’고 강요(<섹스&시티>)하지도, ‘잡지사가 아버지의 가업이니 (비록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잘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저스트 슛 미>) 않는다. <키친 컨피덴셜>의 달관자적 자세는 스승의 갑작스러운 혹은 의도된 죽음을 맞이하는 에피소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잭은 심장질환으로 더이상 고칼로리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 스승이 제자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고칼로리의 음식을 준비한다. 그저 호랑이 선생에게 비로소 제자로 인정받았다는 일이 기쁠 따름이다. 그가 반성하고, 토끼용 식단을 내놓을 땐 이미 늦었다. 스승은 레스토랑 앞 노점에서 파는 핫도그를 사먹다 즉사하고 만다. <키친 컨피덴셜>은 이를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이 유혹당하는 걸 누가 구해줄 수는 없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곤 자기 몸이나 건사하는 것뿐”이라는 잭의 독백을 내보낸다. 무덤덤히 내뱉는 그의 이야기는 <키친 컨피덴셜>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네 삶이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 시험문제 같은 것이라면, <키친 컨피덴셜>의 이런 지적은 매우 유효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