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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영사기사 김부환
사진 이혜정이영진 2006-05-15

영화제를 돌리는 34년의 ‘업’

김부환(53)씨를 모르면 간첩이다. 국내에서 일한 적 있는 영화제 스탭 혹은 자원봉사자라면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서 영사기를 돌리는 그를 한번쯤 봤을 것이다. 부산영화제 기술위원이기도 한 그는 2004년부터 전주국제영화제 야외상영 영사도 맡고 있다. “영화제들이 자꾸 생기면서 나를 찾아주니까 지금까지 왔지. 수중에 갖고 있는 영사기 렌즈만 해도 120개쯤 될 거야.” 부산에 씨네랜드를 차려 영사장비 대여도 하는 그는 “웬만한 국내영화제에 내 손 거친 장비 하나쯤은 배치되어 있을 것”이라고 쑥스럽게 웃는다. 돌고 도는 영사기와 함께 뛴 지 34년. 이젠 국내에서 손꼽히는 베테랑 기사지만, 그는 오전부터 이동영사차를 끌고 나와 야외상영을 준비한다. “상영 중에 언제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아침부터 준비를 해둬야 그런 일이 안 일어나지.” 5, 6벌의 프린트만으로 상영을 하던 과거처럼 너덜너덜해진 필름이 뚝 끊겨 관객으로부터 야유 섞인 휘파람을 들을 일은 이제 없지만, 긴장을 늦추는 순간 대형사고로 이어진다고. 만반의 긴장으로 무장한 그였지만, 5회 전주영화제 때 대형 스피커를 도둑맞는 바람에 상영 시작 전까지 무진장 애를 태웠던 적이 있다. 경주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 치과기공 일을 배우러 부산으로 떠났다가 ‘업’을 만났다. 숙모와 함께 어릴 때부터 밥먹는 것보다 좋아하던 ‘극장 구경’을 갔고, 당시 영도극장에서 일하던 사촌의 도움으로 난생처음 영사실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영사기를 처음 봤는데 본 순간 저거 만지고 싶더라니까.” 보조 일을 시작한 지 반년이 되어서야 그토록 원하던 “영사기를 만져볼 수 있었다”는 그는 이후 부산극장, 은하극장 등에서 영사기사로 일하다 부산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이동영사 일은 시네마테크 부산에 근무하면서 남는 시간 털어 고아원, 양로원 등을 돌면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덤빈 것이라고. “앞으로는 디지털 영사가 대세가 될 텐데. 그쪽을 한번 연구해보고 싶어.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영사라면 못하는 게 없어야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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