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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연애시대>, 끄덕끄덕
김수경 2006-05-19

<연애시대>는 오랜만에 몰입해서 보는 드라마다. 심지어 방영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오후 10시 전에 술자리를 파하고 집에 들어간 경우도 두번이나 있었다. 이것은 축구중계를 제외하면 내 일상에서는 일종의 사건이다. 감우성(동진)과 손예진(은호)의 무르익은 연기, 공형진(준표)의 넓은 오지랖과 능청스러움, <미술관 옆 동물원>의 춘희를 연상시키는 신인 이하나(지호), ‘한국의 다코타 패닝’ 진지희(은솔)의 무표정 덕분에 매주 브라운관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연애시대>는 이혼한 두 남녀의 미련과 망설임을 다룬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상황이 두 사람은 반갑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다. 이정석의 노랫말처럼 두 사람은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그 말 나는 믿을 수 없어’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주위를 맴돌고 카페에서 마주치고 단골 술집을 공유하며, 핫라인을 살려둔 채 근본적인 이별을 고민한다는 설정 자체가 모순이다. 하지만 이해해주마. 한밤중에 넋이 나가 삶은 달걀을 마구 까먹을 정도로 사랑한다니.

부모님이 들으시면 싫어할지 몰라도 내 주위에는 이혼을 경험한 친구들이 유난히 많다. 40%가 넘는다는 이혼율의 세계가 피부로 느껴진다. 미장원에 깔린 수많은 여성 월간지 중 이유없이 손님들이 자주 집어드는 책처럼 나에게는 이혼 남녀가 꾀어든다. 어쩌면 그건 내가 꽤 넓은 오지랖의 소유자임에도 대개 그들의 결혼에 심드렁하게 반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결혼 지옥설을 10년 정도 미친 듯이 유포했던 과거가 있다. 보통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언니들은 쓸데없는 위로보다는 자신의 인생 경험을 아직 세상사에 미숙한 나에게 강의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신세한탄과 자조로 일관하는 오빠들보다는 훨씬 긍정적이다. 결혼과 이혼은 공히 한 인간의 인간관계와 커뮤니티를 전격적으로 재편한다. 화목하고 완전한 기혼자들의 꽃밭 가정에는 미혼자 독신이 파고들 여지 따윈 없다. 멋있는 독신자 삼촌을 자처하며 이것저것 가정생활에 훈수를 두고 아이들의 뺨을 쓰다듬는 가증스러운 고상함은 주말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판타지일 뿐이다. 이 가설을 실감하고 싶다면 새벽 3시에 홍익대 앞 클럽이나 삼청동 와인바에서 성별이 다른 기혼자 친구 몇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 싶다 친구야’ 놀이를 해보시라.

<연애시대>의 동진과 은호의 행복을 바라는 이유는 그들의 사랑 때문만은 아니다. 준표와 하나, 레슬러 유리로 대표되는 단단한 커뮤니티의 역할에 나는 기대를 걸고 있다. 준표, 하나, 유리에게 동진과 은호는 동진이네가 아니라 동진과 은호다. 결혼하건 이혼하건 그 주변자들은 그저 개인으로 그들을 대한다. 이혼 뒤 연어처럼 나에게 들렀던 친구들도 그런 응대가 필요하진 않았을까.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를 사무적으로 받았던 기억이 인서트처럼 떠오른다. 느닷없이 새벽에 불러내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는 동네친구, 클럽친구, 축구 같이 보는 친구, 영화판 사람들처럼 편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얼마 전에는 가까운 곳으로 이사왔던 친구가 자주 놀러오기에 부담스럽다면서 재섭고 고약하게 굴기도 했다. 그는 <연애시대>의 오윤아처럼 미모에 음식도 잘하는 따뜻한 언니였다. 뭐 믿거나 말거나. 그땐 회사일에 괴로워서 맛이 간 상태였다고 변명할 생각이다. 이제 전화를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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