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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두 시간 반 감금기

“글, 참 싸가지 없이 쓰시네요.” 벌써 지난달의 일이던가? KBS <추적 60분>의 어느 PD가 어느 날 내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이렇게 말한다. “전화, 참 싸가지 없이 하시네요.” 일단 이렇게 대꾸해놓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듣자하니 황우석 관련 KBS <추적 60분>과 MBC <PD 수첩>을 비교하며 ‘많이 차이가 난다’고 했던 내 말이 무척 기분 나빴단다.

“그 방송 보고서 하는 말입니까?” KBS 자체 내에서 방영불가 결정을 내렸는데 그걸 무슨 수로 보나. 게다가 문형렬 PD가 올린 시놉시스를 보니 인터넷 바닥에 굴러다니는 허접한 얘기 그러모은 것. 설사 방영을 했어도 봤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흥분한 그에게 이렇게 대꾸해주었다. “저는요. 계란이 곯았는지 안 곯았는지 알기 위해 곯은 계란을 다 먹어보지는 않거든요.”

그러더니 왜 <추적 60분> 전체를 모독했냐고 한다. 비교를 하려면 <추적 60분>이나 <PD 수첩> 같은 코너 이름이 아니라 해당 프로그램의 제목을 비교했어야 한다는 거다. 문맥상 황우석 관련 방영분의 비교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한데, 그 부분에 대해 사과를 하란다. 결국 방송사의 권유로 그들의 모자라는 독해력에 대해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 논리학적으로 상당히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다.

줄기세포 없는 특허는 앙꼬 없는 찐빵, 문형렬 PD가 만든 프로그램의 핵심은 역시 NT-1이 체세포복제 줄기세포일 가능성을 제시한 부분이었다. 이번에 창원대에 갔다가 황우석의 열광적 지지자들에게 두 시간 반 동안 감금되는 일을 겪었다. 그때 그들은 내게 인터넷으로 공개된 15분 분량의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내게 “아직도 1번 줄기세포가 체세포복제 줄기세포가 아니라고 하느냐”고 외쳤다.

며칠 전 서울대에서는 더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 NT-1은 처녀생식으로 입증됐다고 발표했다. 질량보존의 법칙도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였다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믿음을 꺾을 수 없고, 아르키메데스가 발견한 부력의 원리도 예수와 제자들이 물 위를 걸었다는 믿음을 꺾을 수 없다. 이 과학적 검증으로 황 지지자들의 믿음을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강연장에 들어온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왼다. “여러분, 본 강연에는 부처님도 함께하시는군요.” 강연장에 못 들어온 지지자들은 밖에서 강의실 창을 두드리며 ‘매국노, 매국노’를 연호한다. “여러분, 원래 커뮤니케이션에는 노이즈(noise)가 있는 법이죠.” 흥분한 스님, 목탁을 바닥에 두드려 깨더니 연단으로 뛰어들어 몽둥이를 마구 휘둘러댄다. 흐미, 소림 무술이 따로 없구먼….

그들의 대표자를 자처하는 한 친구가 말하기를, 내 프로필을 보니 80년대에 운동을 한 것 같고, 그때 운동은 주체사상에 입각한 반미운동이었는데, 미국놈들이 특허라는 이름의 기술 자주권을 빼앗아가는데 왜 항의를 안 하냐는 거다. 황빠 중에도 반미와 친미가 있다더니, 이 친구는 반미 황빠인 모양이다. 순간 피식 웃음을 흘리며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워매, 난 PD인데….”

혼자 실실 웃고 있자니 제법 법률을 공부한 듯이 보이는 이가 말한다. “여러분, 지금 진중권씨가 우리를 자극해서 과잉 행동을 유발하려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자중합시다.” 이 말 듣고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대한민국에서는 예술이 살 수 없다. 현실 자체가 초현실주의니까. 이 그로테스크함을 그 어떤 예술적 상상력이 연출해낼 수 있겠는가?

내가 탄 차량으로 몸을 던지는 그들의 몸부림을 보며 도대체 어떤 실존적 공백이 저들을 저토록 황우석이라는 허상에 집착하게 만드는 걸까, 상념에 젖어들었다. 다음날 주최쪽에서 연락이 왔다. 나를 감금했던 그 사람들을 고소할 의향이 있냐는 거다. 그럴 뜻 없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법적 ‘처벌’이 아니라 의학적 ‘치료’일 게다. 아니, 신학적 ‘치유’라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