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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게임
2001-02-15

나홀로 게임 만들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게임이란 게 참 신기하다. 화면에서 꼼지락거리는 유닛들을 마우스로 클릭만 해주면 씩씩하게 대답한 뒤 시키는 대로 가서 열심히 명령을 수행한다. 프로그래밍이란 게 다 마찬가지겠지만, 숫자와 기호로 명령을 내리면 화면에서 손가락 마디만한 캐릭터들이 울고 웃고 뛰어다니다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원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즐기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윈도란 게 이것저것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지만, 보통사람들이 쓰기에는 도스보다 훨씬 편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은 불만이다. 게임 스토리나 캐릭터가 성에 안 차고 시스템도 이것저것 조금만 손보면 좋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온 얘기를 소설로 쓰면 베스트셀러감이라고 큰소리를 치는 택시운전사들처럼, 직접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꾸물꾸물 일어날 때가 있다.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우선 프로그래밍 언어를 마스터해야 한다. 그 다음은 그래픽 툴을 익혀야 한다. 요즘 추세에 맞추려면 3D그래픽이 좋겠다. 다음은 음악이다. 타고난 작곡 능력이 있어도 미디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모른다면 곤란하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도 기획력과 시나리오 작성 능력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나만의 게임을 기획할 열정과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것만으로 상용 게임을 만들 수는 없다. 혼자는커녕 서너명이 만들기도 어림없는 게 요즘 게임이다. 하지만 혼자서 게임을 만들 길이 있다.

‘…maker’, ‘…쯔꾸루’라고 불리는 게임 제작 툴이 있다.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고 싶으면 , 격투 게임을 원한다면 <격투 게임 쯔꾸루>다. 슈팅 게임이나 연애 게임용도 있다. 이런 툴을 이용하면 프로그래밍을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준비되어 있는 캐릭터나 몬스터, 배경 타일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다. 그림 솜씨에 자신이 있다면 직접 그린 그림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표의 수치들을 적당히 설정하면 된다. 모든 게 잘 정리되어 있어서 처음 써보는 사람이라도 쉽게 익숙해질 수 있다.

이렇게 만든 게임이 상용 게임 수준을 따라갈 수는 없다. 가장 최근 나온 게임 제작 툴을 이용하더라도 일단 그래픽부터 4, 5년 전 게임 수준이다. 이것저것 한계가 많은 건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조잡한 그래픽이라도 내가 직접 구상한 시나리오가 눈앞에 펼쳐진다는 게 중요하다.

최초의 게임은 스스로 즐기기 위해 만들어졌다. 팔기 위해 게임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비교적 늦게 생겨났다. 일정 정도 팔리지 않으면 다음 작품을 만들기 힘든 게 대부분의 게임 회사의 사정이다. 상용 게임은 대중적 취향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게임 규모가 점점 커지고 제작비가 늘어나면서 개성있는 게임은 나오기 힘들어졌다. 직접 만드는 게임이라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상업성 때문에 타협을 할 필요가 없다. 화려한 그래픽에 치중하느라 아이디어와 독창성이 밀릴 염려도 없다. 당연히 검열도 없다.

살아오면서 성장소설을 한편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 정도 안 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느끼는 것을 표현할 능력이 없다. 소설은 대신 써줄 수 없지만 게임은 제작 툴이 있다. 꿈만 꾸던 게 실현되어 나와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같이 즐긴다. 이거야말로 게임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