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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뽑은 이달의 단편 3. <달>
장미 사진 이혜정 2006-05-31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호흡하다

삶=사랑=사람. 나재원 감독이 영화를 만들며 얻은 철학이자 세상을 보는 공식이다. 그녀는 삶·사랑·사람을 두고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이라 했다. 삶과 사랑, 사람이 일치하는 사회가 진정 행복한 곳인 셈. 완벽하지 못한 삶 때문에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통을 겪고 슬픔에 빠진다. 그런 까닭에 나재원 감독은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도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어느 날 사주를 봤는데 멀리 있는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더라.” 나재원 감독이 던진 우스갯소리처럼 그녀는 끊임없이 결핍된 세상을 카메라에 담고자 한 노력파 감독이다. 해만 바라보는 여자가 꽃이 되는 과정을 그린 <해 바라기>(desire sun), 실종된 손자를 못 잊어하는 할머니 때문에 손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손녀의 이야기 <심인>, 영상반 학생들이 영화촬영 및 편집 중에 지나간 사랑에 대해 깨달아가는 <비하인드 스토리>, 거울을 소재로 관계에 대해 실험적으로 탐구하는 <candy candy>, 이방인의 시선으로 외롭고 이질적인 풍경을 담은 <이방인> 등이 그가 지금껏 작업해온 단편들이다. 네 번째 단편영화 <>(The Biggest Hole in the World) 역시 외로운 인물들인 ‘알바’와 ‘경구’의 여행을 따라가는 로드무비다.

<>은 딸의 유골을 뿌리기 위해 바다로 가는 경구의 여행에 알바가 동참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담고 있다. 알바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 중 어린 왕자의 소녀 버전 같은 인물. 자신을 외계인이라 여기는 그녀의 취미는 지구인들의 편지를 훔쳐 읽는 것이다. 그녀는 어느 날 경구가 죽은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그를 따라 나선다. 사소한 말다툼 끝에 대책없이 버스에서 내린 뒤 승용차를 얻어타지만 원고교제로 의심받아 수모를 겪는 그들. 몰래 올라탄 트럭의 짐칸에서도 기사에게 들켜 쫓겨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바다. 이 영화의 종착역이기도 한 바다는 경구가 죽은 딸에 대한 집착을 떨쳐내고 알바가 지구 밖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중요한 공간이다.

나재원 감독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는다는 점에서 <>은 희망적인 영화이지만 제작 과정은 그렇지 않았다. 갖가지 사고로 제작 기간이 점점 길어진 것. 촬영 기간이 장마와 겹쳐 작업이 중단되는가 하면 중간에 배우가 바뀌기도 했다. 일정이 밀리다 보니 제작비 역시 800만원이 넘기 시작했다. 영화에 드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나재원 감독은 어느 순간 제작비로 지출한 비용을 세는 것을 포기했다고. “카메라에 바닷물이 들어가 고장났지만 돈이 없어 고칠 수가 없었다.” 감독인 그녀 스스로 촬영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음에도 스탭들은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고 마침내 영화가 완성됐다.

“<>이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시작이 됐다.” 나재원 감독은 <>을 제작하며 더이상 영화일을 못하겠다는 절망적인 생각도 했지만 완성하고 나니 영화를 찍고 싶다는 마음이 오히려 명확해졌다고. 처음 영화를 만들 때처럼 흥분된다는 그녀는 다음 작품을 위해 커피숍 서빙, 시나리오 모니터링, 촬영 보조 등의 일을 하며 자금을 모으는 중. 나재원 감독은 “20년 뒤에는 나만의 색깔과 향기가 분명한 영화를 찍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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