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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에 나타난 여성의 성적 위기
2001-08-28

떠도는 에로티시즘의 유령

영화를 관람한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 “<베사메무쵸> 보기 운동을 벌이자는 기사를 써야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번쯤 빚 보증에 곤욕을 치렀거나 실직의 공포를 상상해보았음직한 남성기자들이 대부분인데, 평범한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오히려 참신한 <베사메무쵸>의 관람 후일담이 업계에 화제다.

그런데 이처럼 ‘참신한’ <베사메무쵸>에는 한국영화사를 관통하는 익숙한 코드가 하나 깔려 있다. 바로 사회적 위기를 여성의 성적 위기로 치환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뿌리깊은 비유 체계인데, 그 원형은 나운규의 <아리랑>(1926)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나라를 잃은 민족의 비애는 주인공 영희가 친일파에게 겁탈당하려는 장면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민족의 위기를 여성의 성적 순수성 상실로 비유하고, 그것을 지켜주지 못한 남성의 자존심 상실로 연결하는 것은 이후 주한미군문제를 제기하는 영화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오발탄>(유현목·1961)의 명숙 이래로 최근작 <수취인불명>(김기덕)의 두 여성에 이르기까지 그 뿌리는 매우 깊다.

<자유부인>(한형모·1956)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모더니티에 대한 거부감이 여성에게 투사돼, 집을 떠나 사회생활에 나선 여성을 ‘자유부인’이라고 비난하며 성적으로 방종한 여인으로 묘사했다. <영자의 전성시대>(김호선·1975) 이후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온 ‘호스티스영화’는 농촌의 붕괴와 근대화의 위기를 창녀가 된 여성 이야기로 표현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1년의 <베사메무쵸>에서는 불황시대 중산층 가정의 위기가 주부의 성적 희생을 통해 가까스로 수습된다. 여자의 순결 상실을 치명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는 과거의 영화들과 마찬가지이고, 어색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앞선 영화들과 다른 점이다.

▶ 베사메무쵸

▶ 한국영화사에 나타난 여성의 성적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