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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보이게 하는 마지막 비밀, <파울 클레전-눈으로 마음으로>
김유진 2006-06-09

7월2일까지 | 소마미술관

회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두 사건은 사진의 발명과 추상회화의 탄생이다. 대상을 똑같이 재현하는 데에도 존재의 목적이 있었던 고전시대의 회화는 사진의 탄생으로 변화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이후에 캔버스를 들고 밖으로 나가 빛을 머금은 풍경을 그리는 것이 가능했던 인상파 화가들이 색채로부터 자유로워진 다음에야, 작가들은 눈에 보이는 사물보다는 개인의 내면이나 생각, 정신세계에 붓을 맡기게 된다. 20세기 추상미술의 중요한 작가로 손꼽히는 파울 클레는 실제 존재하는 자연이나 인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을 배격하고 선과 형태 등 회화적 요소를 통해 삶을 재현했다. 서울올림픽미술관에서 새 단장을 하면서 재개관 전시로 파울 클레를 선택한 소마미술관은 작은 소품들을 포함하여 9천여점의 작품을 남긴 클레의 작품세계를 세 공간에 나누어 조명했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 안내하는 작품들은 비교적 초기작들이다. 풍경이나 인물 등 묘사하는 대상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클레의 느낌으로 그려낸 작품들에서는 좀더 추상적인 표현으로 변화할 암시를 보이고 있다. 대상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은 채 사물을 왜곡하는 선의 사용법이 그렇다. 다음 전시실에서는 눈을 비집고 들어오는 색채의 사용이 먼저 눈에 띈다. 튀니지 여행을 통해서 색채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고백한 그는 무채색 톤의 드로잉에서 벗어나 좀더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여기서는 그에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배가된다. 바우하우스 교수 시절 관심을 더했다는 그의 표현기법적 측면도 주목할 만하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그림 속에서 빛을 발하는 클레의 유머다. 바퀴처럼 보이는 선과 과장된 선을 조합한 <소문>(1939)이라든가 나뭇잎의 형태를 간단한 선들의 조합으로 완성한 <빛에 비추어진 나뭇잎>(1929)에는 그의 위트가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캔버스에 얇은 선 제목을 적어 이로써 구획된 면면에 각기 다른 컬러로 채색해 완성한 작품 <그리고 아!, 나를 더욱 쓰라리게 하는 것은 당신이 내가 가슴속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겁니다>(1916)는 알파벳 한 글자 한 글자에 담긴 절절함이 각각의 선과 색으로 표현되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사망하기 전 2∼3년간 2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그의 성과는 마지막 전시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얇았던 선은 굵어지고, 리듬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경쾌한 분위기는 어두워지고, 항상 공감할 만한 삶과 일상이 그려졌던 캔버스에는 죽음과 관련된 소재들이 채워져 있지만, 거장의 필치는 여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위대한 미술작품의 여러 가지 의미에는 이성적인 설명이 적용될 수 없는 마지막 비밀이 있다’는 말이나, “미술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고 천명한 그의 장엄한 정의 앞에서, 그의 그림을 보며, 생각하며, 웃으며, 느끼는 것은 파울 클레의 작품을 가장 정확하게 즐기는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