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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과 <짝패>를 통해 본 슈퍼 16mm영화의 성취
김수경 2006-06-07

디지털만이 대안은 아니다

16mm영화가 충무로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과 류승완 감독의 <짝패>가 그 주역이다. 슈퍼16mm(16mm필름의 사운드영역까지 촬영에 이용하는 방식)로 촬영된 <가족의 탄생>은 2.35 대 1의 시네마스코프, <짝패>는 1.85 대 1의 비스타비전으로 블로업됐다.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가족의 탄생>과 <짝패>는 20억원 내외의 순제작비로,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에 못 미치는 예산으로 만들어졌다. 상대적 저예산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의 화질은 “기존 35mm영화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는 게 세간의 중평이다.

35mm영화 수준의 화면 퀄리티 구현 가능

<가족의 탄생>

한때 독립장편영화의 돌파구로 여겨졌던 16mm영화(이하 16mm)가 퇴색한 원인은 디지털시네마 때문이다. 영화학교의 수업도 6mm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영화로 급격히 재편됐고, 독립영화의 장편 작업도 HD를 비롯한 디지털카메라에 쏠리면서 16mm는 점차 설 땅을 잃었다. “학생들이나 만지는, 혹은 비디오 업계에서나 다루는 매체”라는 16mm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갈수록 굳어졌다. 흥미롭게도 음지에 버려졌던 16mm영화를 다시 살려낸 것도 디지털이다. 특히 그중에도 디지털 색보정(DI) 기술의 발전은 16mm의 산업적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김태용 감독은 “아날로그 블로업을 했던 과거 16mm와 현재 작품들을 비교하면 화질에 현격한 격차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DI가 활성화된 점이 크게 작용했다. 35mm DI작업에 쌓인 노하우를 16mm에서도 고스란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가족의 탄생>과 <짝패>의 DI를 담당한 헐리우드필름레코더(HFR) 이용기 상무는 “색감을 잡아내는 요소도 35mm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김 감독의 의견을 뒷받침했다. 강렬한 원색을 과감히 사용한 <짝패>의 색감도 이러한 기술적인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류승완 감독은 “16mm의 특성대로 입자가 거친 대신에 시각적으로 색감을 드러나게 하는 차원의 시도였다. 그래서 다른 색깔들은 고르게 보여주면서 원색은 35mm처럼 깔끔하게 드러나는 게 아니라 강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전후 <짝패>가 카메라 최종테스트를 할 당시만 해도 DI에 관련된 기술의 질이 현재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디그레인(degrain: 부풀린 입자를 고르게 하는 일)과 선명도를 높이는 작업에 필요한 디아망뜨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10월에 도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짝패>의 DP(촬영과 조명을 모두 관장하는 촬영감독) 김영철 촬영감독은 기억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 단계만 거쳐도 화면이 망가지던 과거와는 달리 선명도나 디그레인 작업에서 기존 35mm영화에 준하는 수준의 화면 퀄리티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까다로운 후반작업이 고충

하지만 16mm의 DI작업은 아직 후반작업 업체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35mm에 비해 몇배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 “먼지나 스크래치도 35mm보다 훨씬 크게 드러난다. 필름이 얇아 끊어지는 문제도 자주 발생하고 키코드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커팅실에서도 프레임 중간에 잘리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HFR의 이용기 상무는 말했다. 김영철 촬영감독은 “먼지 크기가 똑같다고 가정할 때 16mm에 붙는 먼지는 35mm에 붙은 것의 2.5배 크기가 된다. 그래서 35mm에 있을 때는 먼지지만 16mm에서는 구멍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블로업의 작업 특성상 디그레인 작업이 가장 까다롭고, 먼지나 스크래치도 하나하나 손으로 잡아내는 16mm의 DI작업을 현상소와 커팅실에서 반길 리 만무하다.

까다로운 후반작업을 고려하여 촬영을 진행해야 하는 촬영감독과 스탭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짝패>에서 공간감과 심도가 강조되는 운당정 장면에서 원경의 화면이 약간 뭉개지는 느낌이나 <짝패>보다 더 넓게 블로업을 했던 <가족의 탄생>에서 포커스가 맞지 않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 것은 16mm가 가진 매체의 상대적인 한계에서 파생하는 문제다. 김영철 촬영감독은 “필름에 붙는 먼지와 마찬가지로 포커스가 촬영 중에 2%만 맞지 않아도 블로업 과정에서 6∼7%까지 확대되기 때문에 미리 신경을 많이 썼다. 예산 때문에 많은 금액을 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웰컴 투 동막골>에서 포커스 풀링(화면 초점을 맞추는 작업)을 했고, 데뷔를 앞둔 정석원을 포커스 풀러로 스카우트했다”고 후일담을 밝혔다. 오랫동안 전문가들에게 방치됐던 탓에 상태 좋은 슈퍼16mm 카메라를 찾기 어려웠던 점도 관계자들은 단점으로 지적했다.

필름값 70% 저렴, 예산 절감에 특효

<짝패>

그럼에도 김태용, 류승완 두 감독은 공히 “이런 방식을 다른 감독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16mm는 35mm에 비해 60∼70% 저렴한 필름 비용과 절반에 가까운 카메라 대여비용을 통한 예산 절감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16mm로 촬영된 <모두들, 괜찮아요?>를 제작한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는 “현재로서는 HD와 35mm를 두고 저울질하기보다는 슈퍼16mm를 대안으로 삼는 것이 예산절감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산절감 외에도 현장에서 16mm가 발휘하는 미덕은 상당하다. 경량화된 슈퍼16mm 카메라의 기동성은 와이어없이 차고 뛰는 액션영화 <짝패>에 날개를 달아줬다. 엄청난 컷 수, 빈번한 저고속 촬영, 엑스트라가 넘쳐나는 쉼없이 연결되는 액션 시퀀스를 감안하면 16mm를 선택한 제작진의 결정은 탁월했다. 춘천과 오산을 오가는 로케이션에서 감정선의 연결에 치중했던 멜로드라마 <가족의 탄생>에도 35mm보다 필름 로딩시간이 짧고 필름 롤의 교체에도 여유가 있는 16mm 카메라는 훌륭한 동반자였다. <가족의 탄생>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깊이는 다양한 각도에서 넉넉한 촬영분량을 소화했던 조용규 촬영감독의 집중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35mm보다 훨씬 친근하고 다정한 촬영장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마음껏 많은 분량을 찍고 싶었다”는 김태용 감독과 “누구나 과거에 경험했던 독립영화 혹은 가난하게 영화를 만들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스탭들의 참여도나 전투력이 강해졌다. 담배불 붙일 시간도 없이 뛰어다니며 전투적으로 영화를 찍는 분위기가 마음가짐을 달리 먹도록 만든다”라는 류승완 감독의 현장에 대한 평가는 16mm가 창작자들을 고양시키는 정서적 효과를 엿보게 한다.

영화내용과 특성에 맞춘 매체 활용 사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트래픽> <시티 오브 갓> 같은 외화들이 단순히 예산 절감을 위해 16mm를 도입했을 리 없다. 결국 영화내용에 걸맞은 적절한 포맷이 다양하게 시도되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류승완 감독은 “대안적 영화 만들기에 대한 고민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16mm가 35mm로 찍는 예산을 크게 절감해주는 요소보다는 내용에 어울리는 매체를 활용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이용기 상무는 “현재의 대안 매체는 지나치게 디지털 일변도다. HD도 16mm도 하나의 대안일 따름이다. 국내에서는 35mm가 아니면 HD로만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데 영화내용이나 특성에 맞춰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상황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영철 촬영감독은 “비용이 절감되고 퀄리티가 괜찮다는 식의 막연한 접근은 피해야 한다. 결국 촬영매체는 비주얼의 문제이므로 내가 찍으려는 영화가 어떤 매체와 비주얼과 어울리는지 숙고해야 한다. 35mm가 가장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매체이지만 판단에 따라 다른 매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와이드 릴리즈가 보편화된 현재 산업구조에서 20억∼30억원이 넘는 규모의 영화라면 16mm를 통해 필름값을 절감하는 효과는 사실상 미미하다. 김영철 촬영감독은 3퍼포레이션(필름의 가장자리에 뚫린 구멍) 카메라를 또 다른 대안으로 제시했다. “국내 35mm 카메라는 대부분 4퍼포레이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3퍼포레이션 카메라는 촬영과 현상에서 공히 네거티브가 25%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 물론 100% DI가 필요하지만 35mm와 동일한 기술적 구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16mm와는 다른 장점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는 “16mm 상업영화 제작은 유럽에서는 굉장히 흔하다. 단지 우리가 기형적으로 슈퍼16mm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지금처럼 다양한 영화들이 만들어질수록 슈퍼16mm 작업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화 관련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다양한 매체의 활용 가능성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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