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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x2> <언러브드> <가족의 탄생>에 나타난 빛에 관한 인상기

세 가지 빛

<5x2> <언러브드> <가족의 탄생>은 각각 프랑스, 일본, 한국에서 만들어졌고 모두 연애와 가족에 관한 영화다. 앞의 두 영화는 각각 2개관, 1개관에서 개봉했으며, <가족의 탄생>은 불운하게도 두 할리우드 대작에 가려 다른 상황이라면 가능했을 법한 시장의 환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영화를 ‘남자와 여자와 총’이라고 간단히 정의한 그리피스의 말을 응용하면, 세 영화는 ‘남자와 여자와 빛’이다. 이 영화들만 그 범주에 드는 건 아니겠지만, 세 영화에서 어떤 빛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글은 그 빛들에 관한 인상기다.

1. <5x2>

<5x2>

이 영화는 이혼한 부부의 이야기다. 도착적인 상상력과 충격적인 반전의 <시트콤>으로 명성을 얻은 프랑수아 오종은 구성의 기교와 과잉 표현을 버리고 인물에 집중할 때 더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이 영화도 그런 영화다. 이야기는 모두 다섯 토막으로 나눠져 있으며, 이혼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다섯 에피소드가 시간의 역순으로 배치된다.

첫 에피소드에서 남녀는 이혼을 결정하고 호텔에 든다. 이별 의식으로서의 섹스를 하려다 여자가 갑자기 거부하자 남자는 강제로 항문섹스를 결행한다. 여인은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린다. 남자는 “다시 시작할 수 없을까”라고 말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 게이인 형 커플과 이 부부가 작은 파티를 연다. 남자는 아내가 보는 앞에서 난교를 벌였음을 형 커플에게 고백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선 아내가 출산을 하는데 남자는 병원 앞에서 망설이다 끝내 들어가지 않는다. 남자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네 번째 에피소드는 결혼식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흥겨운 피로연을 벌인 뒤 잠자리에서 남자는 취기를 과장하며 잠들어버린다. 아내는 홀로 정원을 산책하다 미국인 남자를 만나 충동적인 섹스를 벌인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의 무대는 바닷가 휴양지다. 남자는 다른 여자친구와 휴가를 왔고, 여자는 혼자 왔다. 쌀쌀맞은 여자친구가 혼자 등산을 간 뒤 남자는 여자와 함께 바다로 향한다.

앞의 네 에피소드에서 남녀의 심리는 설명되지 않는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만 남김없이 설명된다. 설명의 끝에 이 영화의 인상적인 빛 곧 석양의 빛을 만난다. 남자와 여자가 바다로 걸어 들어갈 때 원경의 산에 해가 지고 있고 카메라는 오래 두 사람을 비춘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아름답고 로맨틱한 장면이지만, 이 관습적인 장면은 그것이 놓인 위치로 인해 관습적인 것과 정반대의 의미가 된다.

우리는 두 남녀의 이후의 삶을 알고 있다. 이들은 이후로 단 한번도 상대방에게 충실한 적이 없다. 둘은 차츰 어긋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다. 사랑은 불가능하다. 석양광은 둘의 유한하며 순간적인 감정을 영원하며 절대적인 것으로 위장하는 빛이다. 신화는 처음부터 죽어 있었고, 그 빛은 축가는 물론 조곡도 아니며 오직 냉소다. 혹은 사랑의 불가능성의 징후다.

2. <언러브드>

여자와 남자1, 2가 있다. 여자는 시청의 하급공무원이다. 유능하지만 30살이 넘었는데도 진급시험을 보지 않으려 하고, 허름한 2층 방에서 혼자 자족하며 살아간다. 유망한 중소기업의 사장이며 이혼 경력이 있는 근사한 남자1이 여자에게 호감을 느낀다. 여자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남자는 여자에게 명품 옷을 입히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싶어한다. 여자는 남자1을 마침내 거부한다. 남자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식으로 바꾸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자는 곧 아래층에 이사온 남자2에게 호감을 느낀다. 시골에서 올라온 어수룩한 남자2는 28살이며 택배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기타로 실패한 음악가에의 꿈을 달래고 있으나 직장에선 무능하다. 여자는 남자2와 정사를 벌이다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한다. 여자는 자신의 자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남자2를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언러브드>

이번엔 남자2에게 문제가 생긴다. 여자에게 외식을 청하지만 거절당하고 좋은 옷 사기도 거부당한다. 그리고 택배회사에서 해고당한다. 남자2는 막연한 기대로 남자1을 찾아간다. 못난 남자2에게 여자를 뺏긴 뒤로 자존심의 상처를 입은 남자1은 남자2를 잔인하게 비웃고 여자의 집에까지 찾아와 남자2를 모욕한다. 여자는 왜 지금 이대로의 삶에 만족하지 않느냐고 말하고 남자2는 자신이 여자에게 선택당했을 뿐이며 지금의 구질구질한 삶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순간 카메라는 구름이 걷히는 하늘을 비춘다. 남자2는 갑자기 여자에게 “이제 내가 당신을 선택한 거야”라고 말하며 여자를 안는다. 우리는 그 짧은 순간에 남자2의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새벽의 빛이 있었을 뿐이다. 이 서사에는 각성의 결과만 있고 각성의 과정이 생략돼 있다. 실은 이 서사는 불완전하며 생략된 과정의 자리에 짧은 여명의 빛이 있다. 그 빛은 서사의 구멍을 메우며 서사의 무능력을 위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순간은 조심스럽게 예고돼왔다. 영화가 시작할 때, 비가 오는지를 알기 위해 처마 밖으로 내미는 여자의 손을 처음 만난다. 그녀는 집 밖을 나설 때마다 그 행위를 반복한다. 여자는 집 밖을 실은 두려워한다. 남자2가 “이제 내가 당신을 선택한 거야”라고 말할 때 그것은 여자가 집 안에 만든 세계에 자족하며 집 밖의 세계로 나가는 길을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어디론가 나가려는 것 같지만, 그것이 남자1의 길인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는 언뜻 소박한 인민주의적 연애관의 찬미처럼 보인다. 실제로 여자는, 가난해도 상호인정과 진정한 유대가 소중하다고 지겨울 만큼 역설한다. 그러나 관객인 우리와 남자2는 여자의 인민주의에 설득된 적이 없으며, 우리는 그녀가 행복하다는 것을 확신하기 힘들다. 이 영화는 사랑은 근본적으로 자기애라는 라캉의 말을 상기시킨다. 사랑의 대상은 이상화된 자아다. 남자1은 여자를 귀부인으로 가꾸려 하며, 여자는 남자2를 비오는 거리로 상징되는 남근적 질서의 바깥에 고정시키려 한다. 이 바깥은 실은 이 영화 안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여자의 2층 방은 임시 피난처에 불과하다. 이 사랑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그때 불현듯 계시처럼 여명이 찾아온다. 처음으로 프레임의 전부를 여명의 하늘이 채웠을 때 남자2가 발견한 빛은, 그 자체가 이 서사가 이를 수 없었던 대단원이다. 이 서사는 무능력하지만 그것을 위장하지 않는다. 이 여명 숏은 극단적인 순진성과 솔직함의 산물이다. 그 빛은 징후가 아니라 사랑의 결말로 이끄는 대단원으로서의 서사적 사건을 대체한 것이며, 벌어지지 않았고 벌어질 수 없는 사건에 대한 환상, 혹은 초월성에의 욕망이다.

3. <가족의 탄생>

이 영화는 혈연이 없거나 혈연이 희박한 이상한 두 가족에 관한 세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다. 앞의 두 에피소드는 두 가족의 형성과정을, 마지막 에피소드는 각 가족에서 성장한 젊은 남녀의 연애를 담는다. 첫 에피소드의 가족은 미라(문소리)와 그의 남동생 형철(엄태웅)의 나이든 아내 무신(고두심), 그리고 무신의 전남편의 전부인의 딸로 이뤄진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또 다른 가족은 선경과 그의 엄마가 낳은 다른 남자의 아들로 이뤄진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선 세월이 흘러 첫 가족의 딸 채현(정유미)과 두 번째 가족의 아들 경석(봉태규)이 연애를 시작한다.

<가족의 탄생>

이 영화는 사랑스럽다. 배우들의 연기는 탄복할 만큼 훌륭하며 대사는 맛깔나고 생기가 넘친다. 이 영화의 인물들을 사랑하지 않기란 힘들며, 일종의 해방감마저 안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앞의 두 에피소드는 이상한 가족의 탄생 직전까지만 다룬다. 첫 에피소드에서 문소리는 무책임한 백수건달 동생이 두 식솔을 남기고 다시 사라진 뒤에 무신과 그의 의붓딸을 떠나보낸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선경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어머니 장례를 치른 뒤 일본행을 포기한다. 미라와 선경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세 번째 에피소드의 중반을 지나야 알게 된다. 두 에피소드에서 생략된 것은 두 여인이 각각 갈 곳 없는 식솔을 가족으로 삼고 살아온 세월이다. 이 생략은 일종의 미스터리 효과를 발휘하며, 선경이 경석의 누나로 등장할 때, 무엇보다 채현이 경석을 데리고 온 춘천 집에서 미라와 무신이 ‘엄마들’로 등장할 때 반전의 쾌감을 안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았구나!’

그러나 어떻게 살았다는 말인가. 이 영화 안에서 그 대답으로 마련된 건 채현의 캐릭터다. 도움이 필요한 주변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해 경석에게 “넌 너무 헤퍼”라는 말을 들은, 그래서 결국 이별을 결심한 그녀는 “헤픈 게 나쁜 거야?”라고 반문한다. 그렇게 말할 때 그녀는 <5x2>의 불가능한 정조에 대한 강박과 <언러브드>에서의 남근적 질서로부터의 수동적 피난을 모두 극복한, 새로운 수평적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는 해방된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는 과연 새로운 가족의 딸이었다.

하지만 이 대답은 반전 효과를 동반한 일종의 트릭이다. 이 영화는 새로운 가족, 새로운 질서를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두 에피소드에서 생략된 것은 후일담이 아니라 실은 본론이다. 아마도 탄생의 전사보다 더욱 쓰라렸을 그 본론을 십수년 뒤의 그것의 결과인 채현의 무한한 연민으로 대체할 때 서사의 밀도는 반감되며 이 영화는 판타지가 된다.

이 영화의 주제는 내 생각에 ‘누나의 힘’이다. 미라와 선경은 두 철부지 남자의 누나이며, 연인인 무신-형철, 채연-경석도 유사 누나-동생의 관계다. 이 누나는 보통 가족의 부모 역할까지 떠맡고, 비혈연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슈퍼 누나다. 생략된 본론의 자리에, 세대를 단절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갈 슈퍼 누나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판타지가 있다.

세 에피소드 중에 최고는 두 번째다. 인물들은 다채롭고 사건은 빈틈이 없으며 갈등도 가장 다양하게 제시된다. 전반적으로 빛이 과잉인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 빛과 어둠이 잘 배합돼 있으며,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등장한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일본행을 포기한 선경은 방 안의 창가에 서 있다. 커튼을 살며시 걷자 노란 햇볕이 커튼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다. 비로소 그녀의 얼굴엔 부드러운 미소가 번진다. 그 빛은 특정한 서사적 기능이나 상징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만한 존재다. 이런 빛이 있다면 아마 세상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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