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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 액션노트 [1]
이영진 2006-06-15

독기 품은 조인성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비열한 거리>를 액션영화라고 분류할 순 없다. 액션, 그 자체의 쾌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유하 감독 또한 촬영 중에 “이 영화 속 모든 액션은 드라마에 복무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열한 거리>를 액션영화라고 부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그러했듯이, <비열한 거리>에서도 유하 감독은 액션보다 감정의 흐름을 우선했다고 한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온 최선중 프로듀서는 “평소 좋아하는 무협영화를 만든다면 또 모르겠지만”이라면서, “그의 영화에는 액션을 위한 수사가 없다. 그가 취하는 액션은 철저하게 드라마에 복속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배우들에게 멋있는 발차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개각도 촬영은 물론이고 심지어 흔한 고속촬영도 좀처럼 안 한다. 촬영 때 합이 맞지 않아서 ‘삑사리’가 나더라도 그게 진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한다. <비열한 거리>를 액션영화라고 부를 순 없지만, 반대로 액션장면을 통해 <비열한 거리>를 슬쩍 엿볼 순 있지 않을까. 액션이 철저하게 드라마의 극적 구조를 뒷받침하는 보조장치라면, 액션이 <비열한 거리>의 얼개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TV에서 언제나 우는 남자였던 조인성이 몸에 문신을 그려넣고 대역없는 강도높은 액션을 소화했다 하지 않나. 적지 않은 액션장면 또한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유하 감독이 선보였던 리얼 액션을 업그레이드한 것이라고 하니 더 궁금할 수밖에. 그래서 제작진이 아직 공개할 수 없다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비열한 거리>의 주요 액션장면을 불러내 뜯어봤다. 유하 감독과 최선중 프로듀서가 슬쩍 내보여준 <비열한 거리>의 액션노트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거기엔 변신과 만회를 위해 독기를 품은 조인성의 투지가, 또 100회 넘는 촬영기간 동안 뛰었던 제작진의 노고가 지울 수 없는 얼룩처럼 남아 있었다. 폭력의 카니발이 벌어지는 ‘비열한 거리’에서 고작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삼류깡패 병두의 거친 숨소리를 액션노트를 통해 미리 들여다본다.

아파트 시행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돈을 뜯기는 바람에 병두(조인성)는 보스 상철(윤제문)에게 미운털이 박힌 상태다. 상철의 뒤를 봐주는 황 회장(천호진)의 도움으로 간신히 성인오락실을 맡아 운영하게 되지만, 병두는 개업식 날 삼거리파의 급습을 받게 되고 싸움에 휘말린다. “건달영화를 만들겠다”며 병두를 찾아온 초등학교 동창 민호(남궁민)는 뜻하지 않게 조폭들의 험한 세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감정의 흐름을 중요시하는” 유하 감독은 대개 시나리오 순서대로 촬영을 진행하는 편이다. 서울 천호동에서 찍은 성인오락실 장면은 <비열한 거리>의 첫 번째 액션이지만, 촬영이 예상만큼 일찍 이뤄지진 못했다. 제작진은 규모가 큰 성인오락실을 찾았지만, 대개 조폭들이 운영하고 있는 곳들이라서, 섭외가 쉽지 않았다고. “이 장면은 찍을까 말까 여러 번 고민했다. 극중에서 곧바로 터널 액션이 이어지는데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럼에도 이 장면을 결국 찍기로 결정한 것은 민호 때문. “이 장면에서 싸움을 벌이는 당사자와 구경꾼의 내면적 욕망이 충돌한다. 병두가 어쩔 수 없이 생존의 싸움을 벌이는 동안 구경꾼인 민호 또한 죽이는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생존 욕구에 휩싸인다.” 유하 감독은 “민호의 시점을 적극적으로 채택하진 않았지만 다큐멘터리처럼 누군가의 눈을 통해 조폭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촬영시 배우들이 실제 머리를 오락기에 박고, 팔꿈치로 찍어누르는 등 험한 액션을 벌여 기물 파손은 제작진이 예상한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1대당 수백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오락기가 무참히 부서졌지만, “기가 오를 대로 오른” 배우들을 말릴 순 없었다는 게 최선중 프로듀서의 덧말이다.

로타리파 조직원들을 데리고 삼거리파에 복수하러 나선 병두. 그러나 이를 알아챈 삼거리파들에 먼저 공격을 당하고, 병두와 로타리파 조직원들은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로 무장한 수십명의 적들과 터널 아래서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을 벌인다.

터널 아래서 수십명의 인물들이 사투를 벌이는 이 장면에 4분을 할애했다. 액션장면 치곤 길지만, 유하 감독은 생존을 걸고 싸우는 조폭들의 절실한 싸움을 통해 그들의 “야만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비루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마틴 스코시즈를 좋아하는 유하 감독이 이 장면을 연출하면서 염두에 뒀던 건 <갱스 오브 뉴욕>의 첫 장면. 세력 싸움을 벌이는 패거리들의 싸움 묘사에 압도됐고 “그에 버금가는 장면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이전투구의 싸움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터널은 진흙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60명이 넘는 배우들은 매서운 11월에 볕도 잘 들지 않는 진흙탕 터널 아래서 일주일 동안 ‘개싸움’을 완성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했다. “시나리오에 써둔 것보다 일부러 더 세게 찍었다. 부잣집 아들 아니면 멜로의 주인공으로 (조)인성이를 받아들이는 관객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서였다. 조인성이 조폭이라고? 하는 불신을 일찌감치 정지시키고 싶어서 강도를 최대한 높였다.” 한달 넘게 리허설을 했다는 이 장면은 리얼 혹은 날액션의 느낌을 극대화하기 위해 봉고차 유리창 같은 경우도 설탕 유리잔 대신 실제 강화유리를 썼고, 실제 싸움처럼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돌이켜보면 미친 짓 했다는 생각을 한다. 배우들을 위험한 상황에 밀어넣고 카메라를 돌린 뒤에 다친 데 없냐고 묻는 감독이야말로 비열한 존재 아닌가.” 전작들이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그 때문에 독기가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는 조인성. 5일째 촬영을 끝낸 뒤 조인성은 장딴지가 파열됐지만 촬영을 강행하자고 고집을 부렸고 감독이 말리는 상황도 벌어졌다. 결국 이튿날 촬영이 끝난 뒤에야 조인성은 치료를 위해 보름 동안의 휴식을 받아들였다. “이 장면을 찍은 뒤에 인성이가 영화 3편 정도 찍었다고 할 정도였다. 나도 웬만하면 고생했다는 말을 안 하는데 그때는 저절로 나오더라.”(유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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