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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로 배우를 엿보다 [2]
김혜리 2006-06-26
선망을 불러일으키는 성공한 여자, 이영애

자이아파트 CF를 제작하는 실버불렛의 이진우 CD는 모델 이영애의 이미지를 ‘실체적 고급감’이라고 규정한다. 윤택한 표면적 이미지만 유통되는 모델과 달리 이영애의 이미지는 그녀가 배우로서 전문직 여성으로서 높은 성취를 이룬 인물이라는 ‘내용’의 뒷받침을 받으며 소비자들에게 호소한다는 뜻이다. 자이 광고에서 이영애는 “인생을 어느 정도 아는, 독립한 생활자인 독신 여성”으로 설정됐다. 이진우 CD는 <대장금> <친절한 금자씨> 등 극중에서 그녀가 분한 개별 캐릭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우로서 이영애가 쌓아올린 입지 자체라고 지적한다.

이영애가 소구층인 여성 소비자에게 심는 감정은 선망이다. 그리고 모델로서 소비자에게 발신하는 1차적 코드는 신뢰다. 전자, 아파트, 기업 PR 등 묵직한 품목의 광고 모델로서 이영애는, 남성으로 치면 한석규와 비슷한 좌표를 갖고 있다. 그녀가 모델로 활동해온 기능성 화장품 역시 미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신뢰도가 모델의 우선 조건으로 꼽히는 제품군이다. 게다가 한류는 이영애의 신용이 통하는 시장을 넓혔다. LG전자 휘센 에어컨 광고를 주관하는 LG애드의 허유근 수석국장은 “국내시장에서는 세계 1위 브랜드임을 각인시키고 해외시장에서는 한국적 이미지를 대변할 모델로서 이영애는 최적이다. 아시아에서는 한류스타로, 그외 지역에서는 국제영화제를 통해 인지도가 높다”며 그녀를 중국의 공리에 비하기도 한다. LG화학과 LG전자 등 같은 계열사 모델로서 이영애의 이미지는 기업의 캐릭터와 포개지고 있다.

성공적인 커리어의 궤적과 함께 중량감은 늘어났으나, 본질적으로 이영애의 모델 이미지는 출세작인 마몽드 CF의 ‘산소 같은 여자’에서 그다지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 허유근 수석국장은 에어컨 모델 선정 이유로 공기 청정 기능을 겸하는 제품의 특성과 부합하는 맑은 이미지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CF 속 이영애는 움직임의 폭이 작고 역동적인 동작의 경우도 느리게 재현되는 예가 많다. 그런 면에서, (휘센 CF의 연출자이기도 한) 이성호 감독의 ‘웅진 자연은 365일 레드오렌지’ 광고는 이영애의 정제된 이미지가 포용할 수 있는 가벼움과 경쾌함의 최대치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현악기의 고음처럼 예민한 이영애의 음색은 약간의 거리감을 유발하는 듯도 하다. 그러나 광고 제작진들은 “여성적이고 자분자분한 말투와 목소리 연기력”이 메시지 전달과 설득에 긍정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이 CF의 이진우 CD는, 그래서 반드시 모델의 내레이션으로 전하지 않아도 될 내용을 이영애의 목소리에 싣기도 한다고 말한다. 6월에 방영될 휘센 ‘알래스카편’은 한발 더 나아가 이영애가 직접 부른 노래를 포함할 예정이다. 자신이 줄곧 견지하는 세련된 긴장감을 해소하려는 듯, CF 속 이영애는 이따금 왼쪽 어깨 너머로 고개를 기울이며 미소를 흘린다. 한 광고인은 이를 “이영애가 가장 아름다운 앵글”로 꼽기도 했다.

당신의 이상적인 남자친구, 권상우

메트로섹슈얼과 레트로섹슈얼이 밀고 당기는가 싶더니, 그 머리 위로 위버섹슈얼이 난다. 오늘날 멋진 남성을 지칭하는 ‘종족명’들은 뻔뻔하도록 이율배반적인 욕망을 우겨 담고 있다. 여자보다 예뻐야 한다고 카우보이처럼 거칠어지라고 요구하더니 “아무 거나 걸쳐도 멋진 남자, 무신경한 듯하지만 배려하는 남자”라는 고난도의 이상을 주문한다. 더 페이스 숍 ‘권상우, 고소영편’을 제작한 광고대행사 컴온의 이원홍 이사는, 권상우의 이미지는 그러한 시대의 이중적 욕망에 흡족한 대답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미소년의 얼굴과 근육질 몸을 가진 권상우는 도회성과 자연미, 분노와 천진함을 힘들이지 않고 오간다. 청바지 브랜드에서 종합 의류 브랜드로 외연을 확장하며 권상우를 기용한 뱅뱅어패럴의 광고 대행사 대홍기획 박장춘 대리는 “어둡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고 권상우 이미지를 규정한다. 권상우의 젊음은 원만하다. 이원흥 이사는 “여성 화장품, 휴대전화, 주류, 패션 등 보통 한 모델이 커버하기 힘든 제품군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광고하면서도 지나친 압도감을 주지 않는 권상우에게는 최진실이나 김지호처럼 시대를 대표하는 CF스타가 될 잠재력이 있어 보인다”고 평한다.

권상우의 이미지는 유연하고 개방적이다. 여성 파트너가 게속 교체되는 더 페이스 숍, 하지원과 공연한 뱅뱅 광고 등 대부분의 출연CF에서 권상우는 빅 모델이면서도 (여성)상대역을 갖는다. 말하자면 권상우는 CF 속에서도 잠재된 스토리와 인물 구도 안의 존재로서 소비자들에게 수용되는 셈이다. CF가 그에게 가장 자주 부여하는 배역은 ‘당신의 남자친구’다.

한때 머리에 화관을 쓴 권상우가 등장한 더 페이스숍 광고가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애니콜 광고에서는 여성적으로 땋은 머리를 선보였고 <청춘만화> 개봉 즈음 방영된 뱅뱅 CF에서는 영화 속 복고풍 단발머리 모양을 유지한 채로 장난스러운 연기를 했다. GS이숍 광고는 밤새 인터넷 쇼핑을 하다 급기야 코피를 쏟는 권상우를 보여주었다. 권상우는 다양한 스타일을 서슴없이 흡수하며, 그 결과를 별로 염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상이한 브랜드들과 자신이 무엇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알고 즐기는 듯하다. 권상우에게 CF는 자신의 이미지를 언제든 변형할 수 있도록 탄력있게 보존하는 장치다.

똑소리 나는 대국민 메신저, 문근영

문근영은 당대 최고의 10대 스타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CF모델로서 문근영의 권능은 또래집단에 호소하는 개성보다 광범위한 신뢰감에 있다. 이 소녀 배우는, 중량급 ‘국민 배우’에게나 기대할 법한 공신력있는 화자의 역할을 감당한다. 그녀를 기용한 애니콜 광고의 장성수 AE(제일기획)는 모델 선정의 첫 조건을 묻는 질문에 주저없이 “애니콜은 국민 브랜드이므로”라고 답의 첫머리를 꺼냈다. 스타 모델을 내내 배제하다가 최근 문근영을 광고 모델로 선택한 국민은행 역시 “국민 여동생, 국민 브랜드, 국민 은행”이라는 두운에 움직였을 것이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국민은행의 ‘월드컵 국민체조’편을 연출한 수요일 감독은 문근영이 “10대부터 60대까지 소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모델”이라고 확인한다.

문근영을 귀여운 캐릭터로 묘사한 미스터 피자 광고도 의도는 다르지 않다. 이 광고를 대행한 메이트커뮤니케이션즈의 염철 국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여자 피자라는 컨셉이지만, 실제로 여자고객만 겨냥할 리는 없다. 문근영은 ‘여자 피자’를 부각시키기에는 어리지만, 우리가 좀더 큰 무게를 둔 것은 메시지 전달자로서의 파워였다. 경쟁업체보다 광고 횟수가 적어도 문근영의 입을 빌린 메시지는 월등히 수용도가 높다.” CF 세계에서 여성성은 아직 문근영에게 긴요한 코드가 아니다. 2년 전 문근영과 계약을 맺은 보브 화장품 광고를 대행해온 더토스트 컴의 나봉채 CD는 “해마다 브랜드와 함께 성장할 잠재 가능성을 문근영에게서 봤고 현실이 됐다”고 자평한다. 문근영의 화장품 광고는 선망할 만한 여성미를 과시하기보다 또래친구가 조금 더 예뻐질 수 있는 법을 속삭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문근영은 빼어난 메신저다. 광고 속에서 문근영은 단지 제품에 적합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모델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건다. 애니콜 DMB 광고 연작과 미스터 피자 광고는 아예 문근영에게 현장에 뛰어든 리포터의 역할을 부여하기도 했다. 광고에 등장한 문근영은 번번이 정보를 전달하고 당부하고 심지어 체조의 시범을 보이며 군중을 이끈다. 광고주들은 CF 속에서 문근영이 한마디라도 더 해주길 바란다고 한다. 그래서 문근영이 등장하는 CF는 상대적으로 대사가 많다. CF의 카메라가 문근영의 정면 숏을 유난히 편애하는 현상 또한, 그녀의 역할이 메신저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상대와 똑바로 눈을 맞추는 것은 훌륭한 대화자들의 공통점이다. 문근영은 그처럼 곧은 시선을 우리에게 던진다. 천진하면서도 만인을 연민하는 모성마저 깃든 그녀의 눈빛은, 경청을 부르는 강력한 주술이다.

고집불통 아버지의 호통 개그, 신구

광고는 다른 장르가 재배 숙성시킨 배우의 이미지를 마지막 순간에 손 내밀어 추수하는 매체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CF는, 내내 존재했으나 시야 밖에 머물던 개성을 발굴하고 단시간에 파급시키는 역할도 한다. 배우 신구는 오랫동안 과묵한 아버지였다. 처마처럼 완고하게 드리운 그의 눈꺼풀은 우리가 함부로 시선을 읽는 것마저 금했다. 2002년 롯데리아 크랩버거 광고는,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가 밝은 눈으로 포착한 신구의 유머를 강화하고 널리 퍼뜨렸다. 배우 본인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그 CF 이후) ‘이상한 영감’이 돼버렸다”고 변화한 대중의 반응을 회고하기도 했다.

신구가 용왕으로 분한 야쿠르트 쿠퍼스 광고는 크랩버거의 기억이 잦아들었다는 판단 아래 기획됐다. 쿠퍼스를 비롯해 왕뚜껑, 장라면 등 기발한 식품 광고로 잘 알려진 대행사 코마코의 은세종 CD는, 모델 선정 이유를 “용왕의 근엄함을 지녔고, 있는 그대로의 말투가 웃음을 부른다. 본인의 억양을 고려해 카피를 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은세종 CD의 말대로 엄밀히 말해 롯데리아 크랩버거와 쿠퍼스 광고에서 신구의 연기는 의식적 코믹 연기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실적이지만 극중 조연이나 시청자의 반응과 결합해 유머를 완성하는 연기다. 안정된 연기력도 중대한 요소다. 쿠퍼스 광고 2편에서 용왕이 외신 기자의 영어 질문에 당황, 황당, 성가심이 뒤섞인 미묘한 침묵으로 대꾸하는 순간은 아무나 소화할 수 없다는 것이 은세종 CD의 생각이다.

이미지의 전복 효과는 한번뿐이다. 일단 한번 반전된 모델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광고는 색다른 해석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서 신제품의 빠른 브랜드 인지가 최대 목표인 미소라면 CF는 신구에게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젊은이의 외양을 부여했다. 대행사 애드리치 제작진은 “30대 이상에겐 신구 선생의 코믹한 모습이 ‘반전’이지만, 롯데리아 광고부터 기억하는 더 어린 소비자들은 그를 ‘원래 재미있는 할아버지’로 기억한다”고 지적한다. 카랑카랑하게 파고드는 신구의 목소리는 중견 연기자 중에서도 ‘세일즈 토크’가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한편 신구가 등장한 익살스런 CF는 모두 반말투 대사가 진한 인상을 새긴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 “토끼 끝이야!”, “다 먹고 봐!”와 같은 신구의 호통은 광고 속 상대역을 향한 것이지만, 시청자에게 직접 날아든다. 신구에게 호명당한 우리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웃음을 참는다. 고집불통이지만 악의는 없는 어른에게 야단맞는 묘한 즐거움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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