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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쿠바의 뒷골목으로
2001-08-29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1999년, 감독 빔 벤더스 자막 영어, 한국어 화면포맷 풀 스크린 지역코드 3

주로 게으름 때문에 놓쳐버렸던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DVD 출시를 기다린 영화였다.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이 영화가 음악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최신 시설로 무장한 극장을 찾아간다 해도 웅장한 음향효과가 아닌 피아노 선율 같은 섬세한 악기 소리들을 느끼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개봉 당시 대부분의 평들이 강조했던 그 아름다운 쿠바음악을 최대한 생생하게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그 유명한 빔 벤더스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빔 벤더스의 대표작은 <베를린 천사의 시>. 개인적으로 네번씩이나 봤던 작품이다. 너무 좋아해서 그랬던 게 절대 아니라 심각한 그 영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느라 억지로 네번을 봤던 것이다. 그러니 빔 벤더스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머리에 쥐나게 하는 감독으로 낙인찍힌 것이 당연한 일. 바로 그 빔 벤더스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그것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었다는 사실을 알고 은근한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극장에서는 아무리 집중해서 본다 해도 결코 한번으로는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결국 여러 번 반복해서 볼 수 있는 DVD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DVD로 본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결코 어렵지 않았다. 거기에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과 일생을 같이한 쿠바의 노인 뮤지션들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건강한 생명력과 싱싱한 음악이 있을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들의 나이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는 사실이다. 최고령자가 무려 아흔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 뮤지션이었으니까.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들의 연주실력은 물론이고 평상시의 행동을 보더라도 도저히 그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이 화면 속에 한가득 클로즈업되어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를 때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입술에서 조금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열정적인 목소리가 너무나 정교하게 귀를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DVD에 담긴 그들의 목소리는 가끔씩 그들의 말과 노래를 직접 이해하면서 알아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였다. 그런 사운드의 정교함은 식구들과 함께 모여 있는 집안이나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변 또는 허름한 뒷골목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뷰장면에서도 진가를 여실히 발휘했다.

또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DVD에서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쿠바의 이국적인 풍광이다. 허름한 쿠바 길거리의 노란색 문, 파란색의 간판, 주황색의 옷, 녹색의 모자 등과 같은 원색의 이미지들은, 그야말로 ‘혹시 치밀하게 연출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아마도 필름으로 옮긴 영화 형태로 극장에서 보았다면, 그러한 원색의 풍광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철저하게 디지털카메라와 자연조명을 이용한 촬영이, DVD라는 매체의 뛰어난 화질과 만나서 유감없이 성능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서플먼트에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세상에 알린 라이 쿠더라는 인물과 각각의 뮤지션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DVD의 매력 중 하나. 물론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약간은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DVD는 열정적인 쿠바음악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만은 분명하다.

김소연/ 미디어 칼럼니스트 soyoun@hip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