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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건강한 뒷담화의 조건
김나형 2006-06-16

동생이 빗금이 잔뜩 그려진 얼굴로 집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사정은 대충 이랬다. 도서관이 갑갑하다고 숙제도 공부도 커피숍에서 하는 내 동생은 학교 앞에 단골 커피숍을 두고 있다. 실제 사장은 존재만 있고, 실질적인 운영은 매니저 A가 하는 작은 가게다. 참새 방앗간 드나들듯 하던 동생은 아르바이트 B와 꽤 친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A와 B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음을 알게 됐다. A와 B는 단골들을 붙잡고 은근히 서로의 흉을 보는 모양이었다. 거기까지는 좋다 치자. 둘의 사이가 점점 나빠지자 A는 B를 내보내고 싶어진 모양이다. 그리하여 몇몇 사건이 터졌다. 다 말하기엔 기나, 요약하자면 A가 없는 말을 지어내서 사장과 B를 이간질했다는 것이다. 사장에게는 B가 하지도 않은 짓을 지어내 말하고, B에게는 사장이 말하지도 않은 것을 지어내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 사실은 B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동생과 그 친구들에게 전한 것이다. B는, 매니저 A가 단골손님들과 친한 척하는 것 같지만 그들이 가고나면 늘 뒷담화를 한다는 말도 전했다. 그 과정에서 B는 그 자리에 있는 한 손님에게 A가 그에 대해 어떤 뒷담화를 했는지 상세하게 전했다. A의 얘기는 사실과 달랐고(지어낸 것이었고), 손님은 속이 상해 울고 말았다고 했다. 동생은 그 꼴을 옆에서 보고 있다가 A나 B나 다 뭐하는 짓인가 싶어 얼굴에 빗금을 잔뜩 그리고 집에 온 것이다.

한마디로 둘 다 지랄들을 하신다. 이들은 뒷담화를 정치에 이용함으로써 뒷담화의 올바른 효용을 모욕되이 만들었다. 게다가 이들이 자신의 정치에 끌어들인 대상은 가게 단골들, 엄연히 직장의 손님 아닌가. 공사의 구분도 못한 것이다.

스트레스받을 일 천지인 세상이다. 어디 가서, 미친년놈처럼 널뛰는 상사나, 착한 척하면서 뒤에선 안 할 짓 하는 사람들의 뒷얘기라도 할 수 없다면 소시민들은 북어처럼 타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뒷담화는 나와 친한 사람들, 나의 하소연에 “그래, 정말 나쁜 놈이네” 맞장구 쳐주고 뒤에 가서 잊어줄, 그런 사람들에게나 하는 것이다. 한 공간에서 일하는 이에 대한 험담을 같은 세력권 안에 속한 사람들과 수군대는 것은 비열한 정치 행위다. 그와 나의 관계에서, 좀더 많은 제3자가 내 편을 들어주길 바라고 그를 소외시켜주길 바라는 그 마음은 추악하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두 가지 병을 앓고 있다. 첫째, 사는 데 낙이 없고 심심하여 마음이 썩어 있음. 둘째, 잘나 보여도 속을 열어보면 ‘자신감’이라곤 없음. 건강한 강자는 남의 흉을 보고 다니지 않는다. 에너지를 쏟을 곳이 많기에 남의 흠을 보고 다닐 틈이 없고, 상대와 마찰이 생기더라도 자신을 다스려 제 속에서 끝낸다. 그러나 병든 약자는 첫째 증상 때문에 눈을 부릅뜨고 다닌다. 세상이 지겹고 재미없어 남의 흉이라도 찾지 않으면 못 견디기 때문이다. 둘째 증상으로 인해 남을 해한다. 약하고 찌질하므로 남이 두렵다. 그가 나보다 심하게 강해 보이면 일단 아부하고, 어찌 해볼 만하다 싶으면 뒤에서 떼로 몰려다니며 난도질을 하는 것이다.

문득 떠오르는 외할머니 말씀. “누가 남을 흉보거든 ‘어, 그러냐? 몰랐네’라고만 하고 아무 소리 말거라.” 그때는 잔소리로만 들리던 말이 지금 보니 지혜의 말씀이다. “어, 그러냐? 몰랐네.” 그리고 침묵…. ‘세상엔 이런 놈 저런 놈 다 있다…’고 인정하되 그를 따르지는 않는 방책이다. 그건 그렇고. 모르는 새 나도 저런 흉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어, 가서 얼굴 좀 비춰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