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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쁜 액션블록버스터, <엑스맨: 최후의 전쟁>
김혜리 2006-06-13

돌연변이는 진화의 더딘 과정에 이따금 찾아오는 비약, 이라고 자비에 교수(패트릭 스튜어트)는 <엑스맨>(2000) 도입부에 정의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과 <엑스맨2>(2003)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영화의 소사(小史)에서 수행한 역할도 비슷했다. <엑스맨>이 없었다면 <스파이더 맨> 시리즈, <헐크> <배트맨 비긴즈> 그리고 <슈퍼맨 리턴즈>의 기획안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엑스맨>의 ‘X’는 게이, 10대, 유색인, 여성 등 어떤 이유에서든 사회의 소수자라고 느끼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대입할 수 있는 유혹적인 미지수다.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엑스맨>의 돌연변이들에게는 초인이라는 사실이 절체절명의 기밀이 아니다. <엑스맨> 시리즈는 파워를 이미 거기 있는 문제 해결의 도구가 아니라, 해석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한다(<스파이더 맨>의 관심사는 힘에 따르는 책임이다). <엑스맨> 시리즈를 끌어가는 이야기는 결국 소수자의 특별한 힘을 이 세계 안에서 어떻게 자리매길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기도 했다.

<엑스맨> 1편의 이슈는 돌연변이를 공공의 적으로 간주한 법안이었다. 이에 대응해 돌연변이 영재학교 교장 자비에 교수가 이끄는 엑스맨들은 평화공존을 택했고, 매그니토(이안 매켈런)파는 인간 권력자들을 강제로 돌연변이로 바꾸는 전략으로 맞섰다. <엑스맨2>에서 극우 보수파 데쓰스트라이크 장군(브라이언 콕스)은 돌연변이 대학살을 획책하고 자비에와 매그니토파는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말살하는 ‘치료제’의 등장으로 불붙는다. 3편의 돌연변이들은 부드럽지만 치명적인 덫에 발목이 걸린다. ‘환자’로서 치료를 받아들이고 인간사회에 편입될 것인가, 동화를 거부하고 박해를 감내할 것인가.(※이하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미국은 연방정부에 ‘돌연변이성’(Department of Mutant Affairs)까지 둔 사회다. 돌연변이성 장관인 엑스맨 출신 비스트(켈시 그래머)는, 제약 재벌 워렌 워딩턴 2세가 돌연변이 유전자를 영구히 제거하는 신약을 개발했으며 이를 빼내려던 매그니토의 오른팔 미스틱(레베카 로민)이 체포됐다는 보고를 받는다. 백신에 관한 뉴스는 돌연변이 공동체를 내분에 빠뜨리고 매그니토는 대인류 전쟁을 선포한다. 워딩턴 2세는 조류의 골격을 타고난 아들(일명 엔젤)을 백신의 첫 ‘수혜자’로 삼고자 하지만, 청년은 마지막 순간 큰 날개를 펼쳐 결박을 풀고 비상한다. 인간에게 치료제가 있다면, 주전파 돌연변이 매그니토의 최종병기는 2편의 죽음에서 부활한 진 그레이(팜케 얀센), 일명 다크 피닉스다. 진은 본디 모든 돌연변이를 압도하는 괴력의 소유자였으나 일탈을 염려한 자비에 교수에 의해 통제되어왔을 뿐이다. 전형적 악녀의 패션으로 돌아온 다크 피닉스는 앞길을 막는 남자들을 가차없이- 비유가 아니다- 가루로 만든다. 이윽고 울버린(휴 잭맨)과 스톰(할리 베리)도 동료를 이끌고 결전지 알카트라즈로 날아간다.

<엑스맨> 시리즈를 낳고 기른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슈퍼맨 리턴즈>로 자리를 옮긴 뒤, 3편의 바통을 넘겨받은 브렛 래트너 감독(<패밀리 맨> <머니 토크> <러시아워> 1, 2)과 시나리오 작가들은 성공한 전편의 처방을 따르려 애썼다. 전쟁과 테러, 줄기세포 연구, 최근의 이민법 투쟁에 이르기까지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미국사회의 많은 헤드라인을 건드리고 있다. ‘치료제’는 1, 2편에 잠재된 돌연변이들의 자문(“나는 내가 자랑스러운가?”)을 요약한다. 어린 어깨에 돋은 날개를 칼로 잘라내는 소년 엔젤의 몸부림과, 잠시 인간의 피부로 돌아간 손을 본 비스트의 눈빛에 번지는 동요는, 따뜻한 기시감을 부른다. 그러나 전편의 추억은 거기까지다. 브렛 래트너 감독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혹은 흥미로운 구도는 상속받았으나, 그것을 구체적 장면으로 진전시킬 아웃사이더의 감수성과 취향은 갖고 있지 않다. 3편의 캐릭터들은 등장하기 무섭게 장기를 선보인 다음, 황급히 선과 악의 진영으로 패를 나눠 달려간다. 특히 매그니토 진영의 품위에 각별한 애정을 품었던 팬에게, 몇몇 경박한 설정과 묘사는 쓰라리기까지 하다. 여성 앞에서도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왠지 머뭇거린다. 다크 피닉스는 무적의 강자이지만 내내 자폐적 혼돈에 빠져 있고 로그(안나 파킨)는 사랑을 얻으려고 자기를 바꾼다. 1, 2편에서 차지한 비중에 불만을 표시해온 것으로 알려진 할리 베리의 스톰은 활약이 대폭 늘어났지만 인상적인 장면은 만들지 못한다. ‘치료제’에 희생된 동지에게 “(돌연변이였을 때 더) 아름다웠다”고 내뱉는 매그니토의 말을 “쓸 만한 몸매였는데”로 번역한 자막도 웃어넘기긴 어렵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엑스맨> 1, 2편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무렵 “각자 다른 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들의 청백전”이라는 전제만 받아든 관객이 그려봄직한 숨가쁜 액션블록버스터다. 부수고 찌르고 정탐하고 돌파하고 얼리고 태우는 돌연변이 고수들의 묘기를 삼삼오오 조합하는 아이디어가 백출하는 한편, 자동차가 화염병마냥 날아가고 금문교가 용틀임을 한다. 하지만 요란한 전장의 백미(白眉)는 물질과 동화해 벽을 통과하는 소녀 쉐도우캣(엘렌 페이지)의 고요하고 투명한 재주다. 감독 브렛 래트너는 갈등도 유머도 스턴트도 짧게 자주 몰아치는 방식을 사랑하는 지휘자다. 하나의 클라이맥스는 오래지 않아 다음 주자에 자리를 내주고 릴레이가 계속되는 동안 존 파웰의 사운드트랙은 충실한 응원단처럼 아우성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 뒤에 숨겨진 에필로그는- 다소 수줍게- 4편의 제작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돌연변이로부터, 이상하고 아름답고 위험한 유전자를 제거한 결과가 어떤 모습인지 몸소 확인한 실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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