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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버리힐즈에는 살만한 집이 없다(House on Terror Tract)
2001-08-30

살육의 집으로 오세요

2000년, 감독 랜스 W.드레슨, 클린트 허치슨 출연 존 리터 장르 호러 (벅스 홈비디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미국 중산층 주택가의 화려한 외관을 훑으며 낮게 이동해간다. 그리곤 잘 정돈된 정원의 잔디밭 사이에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포착하고 다시 그것을 흉측하게 잡아먹는 커다란 새를 클로즈업한다. 초반부터 꽤나 끔찍한 장면인데, 공포스럽다기보다는 B급 호러영화의 어딘지 모르는 조악함과 약간의 유머가 뒤섞인 이 영화는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공포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영화, <비버리힐즈에는 살만한 집이 없다>이다. 도시 중산층의 화려한 외관 속에 감추어진 광기와 불안을 포착했던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벨벳>의 오프닝을 패러디하며 그 위에 다시금 앨프리드 히치콕의 <새>를 포개어놓는 이 영화는 그 시작부터 노골적으로 미국 중산층들이 향유한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성을 노골적으로 비웃고 들어간다.

부동산 중개업자 밥은 자신이 마치 성공한 미국인의 전형인 양 떠벌리지만 실상은 가족의 신변까지도 담보한 회사의 실적위협에 시달리는 인물. 그는 오늘 달콤한 환상에 빠진 신혼부부에게 세채의 집을 보여주고 어떻해서든지 계약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세채의 집은 그 아름다운 외관 속에 차마 언급하기 싫은 기괴한 내력을 품고 있다. 첫 번째 집은, 외도를 일삼던 아내가 정부와 함께 남편을 죽이지만 되살아난 남편의 혼령한테 끔찍하게 살해당한 비극의 현장이다. 두 번째 집은, 아내와 딸을 사랑하는 다정한 가장이 어느날 불쑥 나타난 괴력의 원숭이에게 그 모든 것을 처참하게 잃어버린 장소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집은, 초능력으로 살인마의 범죄현장을 목격하는 소년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막으려다 결국 자신이 죽게 된 집이다.

아름다운 저택에 얽힌 3개의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구성하는 이 영화는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미국 중산층 삶의 이면에 숨어 있는 치열한 생존경쟁과 공포스런 위협들을 드러낸다. ‘이것이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밥의 대사는 이 영화의 노골적인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부분. 올해 부천을 직접 방문하기도 한 랜스 W. 드리슨과 클린트 허치슨이만든 이 영화는 낯익은 여러 호러영화장면들과 B급영화 특유의 저예산 실험정신을 다소 코믹하게 엮어낸다. 특별한 상상력이 아니라 미국, 그 내면의 현실 특히 짧은 촬영기간 동안 통제 안 되는 스탭들과 온갖 불평불만을 해대는 촬영장 주민들 덕분에 자신들이 지금 영화를 찍고 있는 건지 아니면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지 헷갈렸다는 감독은 “나는 우리가 단테의 <신곡> 중 지옥에 나오는 망각의 서클에 빠져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마치 카니발의 절정에 이른 듯 살육과 광기에 휩싸인 마을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정지연/ 영화평론가 woodyall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