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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묵시록> Now and Then
2001-08-31

암흑의 심장에 위대한 마침표를 찍다.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오리지널에서 49분 추가, 코폴라의 예술적 야심을 보다 완벽하게 담아낸 걸작

어느 영화 감독의 고백에 따르자면, 영화를 완성하는 감독은 없다. 감독들은 다만 어떤 단계에 이르러 영화를 ‘포기’할 뿐이다. 그리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아마 역사상 누구보다 어렵게 영화를 ‘포기’한 감독일 것이다.

1979년 봄 코폴라는 16개월에 걸친 전쟁과도 같은 촬영과 2년여의 편집을 마치고 오리지널 <지옥의 묵시록>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 묵시록은 종말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결말 처리에 대한 고민을 “손톱으로 유리벽을 기어오르는 것 같다”고 표현할 만큼 코폴라는 고통받았다. 한편의 영화가 그토록 엄청난 시간을 삼키고 많은 스캔들을 토하는 괴물이 된 광경을 본 경험이 없었던 1970년대 말의 언론이 호들갑을 떨어대는 와중에, 코폴라는 경솔하게도 결말에 대한 불안을 외부로 흘렸고 아니었으면 아무 생각 없었을 평론가들은 눈에 불을 켜고 엔딩의 흠을 찾기 시작했다.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쏟아진 엔딩에 관한 질문들에 화가 난 코폴라는 급기야 극장을 따로 잡아, 자신의 요트에 싣고온 다른 버전의- 커츠의 왕국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윌라드와 랜스의 보트숏으로 끝나는- 프린트를 상영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지옥의 묵시록>은 1979년 칸에서 <양철북>과 나란히 황금종려상을 탔지만 트로피는 영화의 매듭이 되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돈이 많이 든 장면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던 배급사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의 권고에 따라 35mm판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커츠의 부락이 폭격당하는 스펙터클이 추가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작가적 신념의 결핍을 대변하는 듯한 이런 설왕설래는 평단의 불신만 높였고, 이후 오랫동안 마니아들 사이에는 5시간이 넘는 해적판 비디오가 원혼처럼 떠돌아다녔다.

49분이 길어졌지만, 더 짧게 느껴져

<지옥의 묵시록>을 두고 코폴라는 파우스트와 계약이라도 맺었던 것일까? 1980년대 이후 태작의 목록이 길어지면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점차 거인의 풍모를 잃어갔다. 그러나 완성되기를 갈구하는 ‘묵시록’의 메아리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6년 전 코폴라는 런던의 호텔방에서 우연히 <지옥의 묵시록>을 다시 보고 놀라움을 느꼈다. 1970년대 말 당시 지나치게 긴 영화, 괴상한 영화로 악명높았던 <지옥의 묵시록>은 더이상 그렇게 이상한 영화로 보이지 않았다. 세월의 강이 이 대작을 다른 기슭에 데려다놓은 것이다. 아마 코폴라는 그 기슭에서 다시 출항하면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의도한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리지널이 개봉된 지 20년이 지난 1999년 코폴라는 자신이 소유한 포도농원으로 원판을 편집했던 월터 머치와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트라로를 초대해 복원판 제작에 뜻을 모으고, 2000년 3월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에 착수했다. 그리고 올해 2월26일 칸영화제는 2001년 영화제에서 <…리덕스>를 공개한다고 엄숙하게 발표했다.

경쟁부문이었더라면 하마터면 두개째 황금종려상을 받을 뻔한(?) 존경어린 호평 속에서 칸영화제 퍼레이드를 벌이고 한국 극장가에 당도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는, 과연 우리가 기억하는 영화보다 훨씬 아름답고 장대하며 최초의 예술적 야심에 충실하다. 부활한 <지옥의 묵시록>은 우선 윤기있는 화면을 보여준다. 테크니컬러 삼색 프로세스를 현대화한 방식이라는 색-전사시스템(dye-transfer system of printing)으로 비토리오 스트라로의 지휘 아래 재인화된 화면은, 한층 색이 깊고 풍부하며 회화적 디테일을, 메콩 강물 위에 부서지는 햇빛의 결까지 풍부하게 되살려낸다. 그러나 관객에게 무엇보다 먼저 체감되는 <…리덕스>의 변화는 ‘연결’이 매끄러워졌다는 점. 아예 통째로 들어냈던 시퀀스들이 복원되고 에피소드가 풍부해지면서, 마치 대서사시의 하이라이트처럼 파편화돼 보였던 영화에 응집력이 생겼다. 덕분에 49분이 더 길어진 <…리덕스>의 상영시간이 오리지널보다 오히려 더 짧게 느껴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더 자극적이고 더 웃기고 더 로맨틱하며 더 강력한 역사적 관점을 가지게 됐다”는 코폴라의 <…리덕스>에 대한 자평은 그저 자화자찬이 아니라 추가된 시퀀스들이 영화 전체에 끼친 효과에 대한 적확한 묘사라 할 만하다. 플레이보이 바니걸들과 프랑스 고무농원의 여인이 윌라드 일행과 접촉을 갖는 오리지널판에 없던 장면들은, 전쟁의 포연이 미향(微香)처럼 감도는 관능적 매력을 영화에 불어넣고, 윌라드와 병사들이 서핑을 위해 마을을 포격하는 킬고어 중령의 서핑보드를 훔쳐내 술래잡기를 벌이는 시퀀스는 1969년판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사춘기적 유머를 더하며 윌라드와 병사들의 캐릭터에 생기와 입체감을 준다. 이 영화의 가장 골치아픈 수수께끼였던 말론 브랜도의 커츠 대령 캐릭터도 그의 철학과 정치적 입장을 암시하는 대사들이 보충되면서 설득력을 보강했다. 평론가 하워드 햄튼이 지적한 대로 <…리덕스>의 재편집은 오디세이의 고전적 비극과, '아무하고나 자고 아무나 죽이는' 비치파티 영화의 결합물로서의 <지옥의 묵시록>을 더욱 완전하게 다듬어낸 셈이다.

안개 속에 홀연히 등장하는 고무농원 시퀀스는 1979년판에서 완전히 생략됐던 대목. 베트남전쟁 당시까지 농원을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비현실적이라 마치 유령처럼 보이는 농원의 프랑스인들은, 윌라드의 여정에 몽환적인 간주곡을 제공하지만 그들의 대사는 현대사의 맥락 안에서 베트남전쟁이 점하는 좌표를 지적하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는 농원이 우리 것이니까 싸운다. 하지만 당신네들은 뭐지? 당신네 미국인들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무(無)를 위해 싸우고 있어.”

그러나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를 더욱 단단하고 완전한 형상으로 다듬어낸 힘은 단순히 추가된 장면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22년이라는 시간의 경과는, <지옥의 묵시록>을 영화이기에 앞서 하나의 스캔들로 변질시켰던 필요 이상의 뒷이야기들로부터 거리를 갖게 만들었다. 물론 지난 20년간 영화가 점점 이벤트화 되어가면서 <지옥의 묵시록>이 자아낸 소란 정도는 심상한 일이 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 쏟아졌던 “자기도취적”이라는 비난은 영화 만들기의 패션이 극단화하고 관객의 수용방식도 다양하게 변모한 오늘에 와서는 무색해져버렸다. 세월은 또한 관객의 시야를 넓혔다. 예컨대 베트남전쟁 때까지 버틴 프랑스인들의 고무농원장면이 1979년 당시 들어갔다면 그 현실적 가능성을 놓고 말이 많았겠지만 2001년의 관객은 그 장면을 하나의 판타지 또는 코멘트로서 보는 시학적 관용을 갖게 됐다. 반면 영화 만들기의 지난했던 과정 자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혼미한 채 광기의 심장부로 노저어가는 윌라드의 여행 그리고 전쟁의 부조리한 본질과 일치됨으로써 발생한 <지옥의 묵시록>의 에너지는 여전하다. 삶을 모방한 예술의 위용 역시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옥의 묵시록>은 오래 지속되는 장점과 수명 짧은 단점으로 이루어진 영화였고 <…리덕스>는 22년 뒤 그것을 증명한 것이다.

한 시대에 대한 거대한 은유

<지옥의 묵시록>는 도어즈의 <종말>(The End)로 시작한다. 도어즈의 노래가 저주의 주문이 됐는지 아니면 축복이 됐는지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가 나온 지금 <지옥의 묵시록>은 아무도 깨어날 수 없는 꿈, 진정한 끝이 있을 수 없는 영구한 영화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것은 대담한 야심을 품었던 한 젊은 예술가의 영혼과 한 나라, 나아가 한 시대에 대한 메타포가 되었던 ‘거대한’ 영화의 고단한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이 흐른 뒤 <지옥의 묵시록 리서렉션>이나 <지옥의 묵시록 딜럭스>라는 제목의 재편집판이 발표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가 21세기의 씨네필들에게, 할리우드가 ‘위대한’이라는 고풍스런 형용사를 어색함 없이 걸칠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의 마지막 걸작을, 그 장려한 ‘신들의 황혼’을 보여줄 것이다.

김혜리 기자 vermeer@hani.co.kr

▶ <지옥의 묵시록> Now and Then

▶ 오리지널 <지옥의 묵시록>의 제작기

▶ 영화사에 등재된 디렉터스 컷

▶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의 탄생 (1)

▶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의 탄생 (2)

▶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의 탄생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