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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에 등재된 디렉터스 컷
2001-08-31

‘감독 앨런 스미디’ 지우기

요즘은 DVD를 출시할 때 삭제되었던 장면을 집어넣는다든가 다시 편집하는 게 유행처럼 되었지만(계약서에 DVD를 만들 때에는 감독의 요구대로 재편집한다는 규정을 넣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디렉터스 컷’을 만들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제작사가 마음대로 편집을 하거나, 소수 관객의 반응이 너무나 뜨거워서 뭔가 새로운 팬서비스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때 잘린 장면 등을 추가하여 ‘디렉터스 컷’을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이유는 제작사의 간섭이다. 상영시간이 너무 길거나, 관객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을 내리면 따로 편집기사를 불러다가 독자적으로 편집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에 격분한 감독이 제작사와 너무 심하게 싸우다가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빼라고 할 경우에는 ‘감독 앨런 스미디’라는 타이틀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찍기는 했지만 ‘이건 내 작품이 아니오’라는 뜻이다. 이 정도까지 악화일로를 걸었을 때에 감독이 다시 ‘디렉터스 컷’을 만드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앨런 스미디’라는 낙인은, 거의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작품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었음을 의미하니까.

데이비드 린치의 <사구>를 둘러싼 분쟁과 결과는 지극히 혼란스럽다. 애초에 TV시리즈 정도의 분량으로 만들어져야 했을 프랭크 허버트의 대하SF소설 <사구>를 135분에 구겨넣은 것 자체가 실수였다. <사구>의 후반부는 보이스 오버에 의존하면서 성급히 사건들을 봉합시켜버린다. 스토리가 너무 방대하고 복잡해서 관객이 <사구>의 상황설정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제작사는 고심을 했다. 그중 하나는 ‘앨런 스미디’를 이용하는 것이다. <사구>의 DVD에는 ‘감독 앨런 스미디’로 나오는 또 하나의 프롤로그가 실려 있다. 이 프롤로그는 오로지 그림과 내레이션에만 의존하며 <사구>의 사건이 벌어지기 전 수백년 동안의 사건들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앨런 스미디판’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은 제작사는 데이비드 린치가 편집한 135분 버전으로 개봉했다. 그리고 극장에서 인물 설명서를 미리 배부하는 촌극을 저질렀다. 그뒤에는 50분 분량의 잡다한 장면들을 추가하여 190분 버전의 ‘스페셜 에디션’을 만들었지만, 데이비드 린치의 동의를 구하지 못해 결국 감독은 ‘앨런 스미디’가 되었다.

이처럼 제작사의 입김에 휘말려 일부 장면을 자르고, 암울한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꾸며 낙담했던 감독들에게 마지막 남은 부활의 기회가 바로 ‘디렉터스 컷’이었다. <블레이드 러너>는 가장 유명한 디렉터스 컷으로 꼽힌다. 지금은 흥행감독으로 변신했지만 한때는 ‘작가’로 평가받던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는 어둡고 모호하다는 이유로 전면적인 손질이 가해졌다.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꾸고, 주인공 데커드가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는 내레이션을 추가했다. 너무 불친절하다는 이유였다. 리들리 스콧의 ‘디렉터스 컷’은 내레이션을 지우고, 해피엔딩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데커드가 리플리컨트임을 암시하는 장면을 집어넣었다. 감독이 원한 것은 구체적인 설명이 아니라 관객의 상상력이었던 것이다.

너무 길고 우울하다는 이유로 2시간의 영웅담으로 바꿔버린 제작사와 기나긴 세월을 싸우다가 타협한 테리 길리엄의 <여인의 음모>는 11분을 잘라내고 131분으로 개봉되었다. ‘디렉터스 컷’에서는 삭제된 11분의 복원이 이루어졌다. ‘디렉터스 컷’은 편집 자체를 뒤흔든다기보다는 자신이 원치 않았던 삭제 장면의 복원 정도가 가장 흔하게 이루어진다. 감독이 직접 잘라낸 경우도 마찬가지다. 뤽 베송은 <레옹>의 미국판을 편집하면서, 레옹과 마틸다의 사랑이야기 일부를 잘라냈다. 어린이에 대한 성적 표현이 금기시된 미국의 수위에 맞춘 것이다. <그랑블루> 역시 너무 길다는 이유로 미국 버전은 2시간 이내로 줄였다. 코믹한 에피소드들을 줄이고, 결말도 해피엔딩처럼 바꾸었다. 뤽 베송은 미국판에서 자른 장면들을 모두 살려내고 ‘디렉터스 컷’이란 이름을 붙였다.

제임스 카메론의 <어비스>는 거대한 해일이 세계 대도시들을 위협하는 장면 등을 추가하며 애초의 의도를 강화했다. <에이리언2>는 액션장면 등을 추가하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감독판’을 보아도 감흥이 별다르지 않다. 이런 경우는 흔히 ‘스페셜 에디션’ 정도로 붙인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4, 5, 6편을 ‘스페셜 에디션’으로 내놓으면서 특수효과장면과 음향을 다시 처리했다. 스페셜 에디션이 특히 많아진 이유는 DVD 덕분이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통하여 화질과 음질을 개선하고, 일부 장면을 덧붙이면서 ‘스페셜 에디션’이란 이름으로 내놓는다. <엑소시스트>는 재개봉하면서 과거에 잘린 장면들을 추가했다. 감독이 직접 리마스터링 작업에 참여하고, 삭제된 장면을 추가했지만 ‘디렉터스 컷’이 아니라 ‘당신이 보지 못했던 버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는 감독이 다시 편집한 ‘디렉터스 컷’이지만, ‘원초적인 의미’로 되돌아갔다는 의미로 제목에 ‘리덕스’를 붙였다.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에 추가된 장면들은 감독의 의도를 더욱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신화적인 느낌을 고양시켜 준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김봉석 기자

▶ <지옥의 묵시록> Now and Then

▶ 오리지널 <지옥의 묵시록>의 제작기

▶ 영화사에 등재된 디렉터스 컷

▶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의 탄생 (1)

▶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의 탄생 (2)

▶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의 탄생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