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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성매매의 월드컵?

얼마 전 한국의 인터넷 신문을 읽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독일월드컵 기간 동안에 베를린 올림피아 경기장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월드컵 개최에 맞춰서 대형 성매매촌이 들어선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은 손봉숙 국회의원의 고발로 널리 알려졌다. 놀라운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경기장 옆 성매매촌이라는 사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소식을 독일 주요 언론에서 접하지 못했다는 거였다.

간단히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2002년에 성매매가 합법화된 독일에서 2006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잠재적 대규모 인신매매에 대한 우려가 증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성매매촌이란 말은 그 과정에서 과장된 경고의 의미로 등장한 것으로 보였다. 물론 독일에서 월드컵 기간을 중심으로 성매매 산업이 활발해진 것은 사실이고 이와 관련한 성매매 합법화 자체에 대한 논쟁도 치열하다. 성매매 문제는 어느 나라든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인류사의 가장 오래된 산업’이라서 그런지, 어느 사회나 자유로울 수 없는 주제이다. 이 문제를 두고 각 사회가 나름의 해결책을 찾는다.

독일의 경우에는 결국 합법화하기로 했다. 이유는 ‘수요’가 있는 한 ‘공급’도 있는 법. 불법화할 경우에는 범죄화의 가능성, 건강, 의료보험, 연금 등과 같은 문제의 위험에 판매자와 구매자가 오히려 노출된다는 문제의식이다. 생존권리를 보장하고 인신매매와 강제성매매를 더 엄격하게 색출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다. 물론 찬성이유가 있는 만큼 반대논리도 정당하다. 이 두 가지 논리는 서로 팽팽히 맞서면서도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 반대논리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다. 도덕적으로 신성한 성, 귀중한 생존의 성, 아름다운 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는 강제노동, 인신매매, 폭력노출 등 판매자, 구매자와 인근 주민들이 겪는 피해가 상당하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성 판매자는 상당 부분이 여성이며 가부장주의적인 사회의 독점을 누리는 남성을 위해 봉사하고 이로써 남성권력을 재생산한다. 어떻게 봐도 인간이라면 성매매는 있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성매매에만 해당하는가? 사람을 죽이는 직업을 갖는 (직업)군,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축적된 어마어마한 과잉가치를 순식간에 전세계적으로 옮기는 브로커, 사람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기계로 대체하거나 디지털화를 통한 감소(해고) 전문가인 컨설턴트 등등 수많은 부도덕적인 직업이 있다. 이런 직업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도의적으로 올바른데(?), 성매매는 왜 그렇지 못한가? 찬성이유는 이런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 수사일 뿐이다.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어떻게 하면 이러한 공급의 수요를 줄이거나 아예 사라지게 할 수 있는가이다. 이와 관련해 위에서 간단하게 소개된 손봉숙 의원의 고발은 두 가지 시사적인 면이 있다. 하나는 성매매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려는 대한민국 사람 또는 (여성)정치인으로서 다른 나라의 현실(독일의 성매매)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은 매우 바람직하고 모범적이다. 감시단을 파견해서 독일에서 성매매하고 귀국한 한국인들을 법적으로 처벌하겠다는 주장은 도가 지나친 면이 있어 보이지만, 성매매에 관대하거나 무조건 외면하는 이 사회에 꼭 필요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다른 시사적인 면은 한국 국회의 나머지 대부분 (남성)의원들의 반응이다. 손 의원은 어딜 가나 ‘여성 의원 혼자서 하라’는 대답만 듣고 결국 홀로 성명서를 내고 말았다(손 의원과 미국, 스웨덴 등 국제적인 반성매매 운동에 동참하는 활동가들이 주장한 것처럼). 독일에서 특히 동구권으로부터 ‘수입될 4만명 여성들’이 ‘성 수용소’ 같은 ‘대량 성매매촌’에서 착취를 당할지가 사실인지는 따로 논할 문제라 치자. 주목할 것은 남성(의원)들의 완전한 무관심이야말로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는 점이다. ‘남자의 자연스러운 성욕’, ‘남자되기를 위한 수단’, ‘접대문화의 관습’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강력하다. 때문에 성매매에 동반할 수 있는 인신매매, 성착취 등을 널리 알리고 예방운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 수단은 국가권력을 통한 성매매의 금지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뿌리를 뽑으려면 훨씬 더 깊이 파야 한다. 성매매와 같은 성상품화는 가부장제의 권력불균등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즉,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생존전략으로 성상품화를 택하게 된다. 이런 사회적인 모순의 징후는 예컨대 비공식 2002년 미스 월드컵 미나, 공식 2006년 미스 월드컵 김리나, 플레보이걸 이파니 등등 월드컵 열기를 틈탄 연예인들의 잇단 ‘노출사건’에서도 볼 수 있다. 언론들은 가장 선정적으로 촬영한 장면을 보여주느라 바쁘고 대중은 그걸 일상적 일로 여겨 넘어가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한 징후일 뿐이지만, 성매매 혹은 성중독과 같은 병을 치료하려면 전 사회적으로 침투되어 있는 성상품화를 동시에 아니 먼저 도마 위에 올려야 한다. 한국이나 독일이나 이번 월드컵에 그 어느 때보다 애국주의, 쾌락주의, 천박주의에 빠져 있다. 손 의원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내놓은 문제제기를 계기로 해서 성매매에 대한 고찰과 그 사회적인 원인에 대한 성찰 그리고 현실적인 해결책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