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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에 찍는 의문부호, <교도관 나오키>

지금 나의 눈앞에는 다섯개의 스위치가 있다. 나를 포함한 다섯명의 동료들은 그 스위치를 한꺼번에 누르도록 명령받았다. 다섯 중 어느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중 하나는 분명히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발판 하나를 밑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그러면 그 위에 동아줄을 목에 매고 눈을 가린 채 서 있던 사형수가 버둥거리며 아래로 떨어지리라. 마지막 생명의 증거인 얼마간의 오물을 바지 사이로 흘린 뒤, 20분 안에 이 세계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는 그 스위치를 누를 자격이 있는 걸까? 과연 인간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걸까?

<교도관 나오키>(원제는 <숲의 나팔꽃>(モリのアサガオ))는 사형 확정수들이 수감되어 있는 구치소에 발령받아온 신참내기다. 사회의 쓰레기라는 범죄자들, 그중에서도 잔인한 방법으로 다수를 살해해 갱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된 사형수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 나오키의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사형수들의 생활을 직접 바라보면서 그 불안은 더 큰 혼란으로 요동치게 된다.

일반 재소자들과는 달리 사복 차림으로 상상 이상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형수들. 나오키는 그들의 세계가 온갖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하나하나 깨닫게 된다. 개중에는 매일 아침 들려오는 교도관의 발소리에 ‘혹시나 이번엔 내가’ 하는 공포를 느끼는 자도 있지만, 더이상 희망이란 없는 상황에서 아무런 반성도 없이 교도관을 놀리는 재미로 살아가는 자도 있다. 사형수를 동정해 펜팔을 해오는 여자와 옥중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시시덕거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7년간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보낸 반성의 편지를 통해 드디어 용서의 답장을 얻자 갑자기 삶의 의미를 잃고 자살을 시도하는 자도 있다.

사형이 확정되고 집행될 때까지는 평균 7년. 지상에 존재할 권리조차 박탈해버린 악한들에게 국가의 세금으로 안락의 시간을 부여하는 것도 아이러니고, 뼈를 깎는 마음으로 반성하고 완전히 뉘우친 사람을 극악한 공포 속에서 죽여야 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나오키는 부모의 원수에게 복수한 죄로 사형수가 된 동갑내기 와타세와의 대화를 통해 ‘사형’이라는 제도에 또렷한 의문부호를 찍는다.

<여검시관 히카루> 시절 서투르지만 개성적인 맛을 보여주었던 고다 마모라의 작화는 이제 확실한 궤도에 올랐다. <나니와 금융도>의 아오키 요지 등 오사카 만화계 특유의 평면적이면서도 구수한 화풍을 단단하고 세련화시키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가늘게 떨리는 듯, 혹은 잉크가 미세하게 번지듯 그려내는 가는 선의 맛과 알차게 배치된 디자인감 풍부한 연출이 이 만화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