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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허벅지의 미학
오정연 2006-07-07

힘들어 죽겠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마감도 새삼스레 힘겨운데, 새벽의 축구 관람까지 병행해야 하는 상황.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브라질 등 기본적으로 봐줘야 하는 경기에, 한국전 같은 필수 메뉴, 트리니다드 토바고처럼 왠지 정(?)에 이끌려 보고 싶어지는 선택 매뉴까지…. 사무실 여기저기서 누적된 피로를 호소하는 한숨이 깊어져간다.

단순무식한 애국심부터 결정적인 승부의 순간을 목격하는 희열까지, 축구를 즐기는 이유는 저마다 제각각이다. 쉴틈없이 쏟아지는 한국 대표팀 관련한 썰렁 뉴스(이를테면 ‘프랑스전, 승리로 전략 수정’ 같은 헤드라인들. 기왕이면 월드컵 우승으로 전략을 세울 것이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월드컵 관련 광고들(어째서 그 와중에 돼*바 광고는 한번도 안 나오는 건데?)을 견디면 월드컵은 제법 괜찮은 시즌이다. 어쨌거나 평소 같으면 새벽에 케이블 앞에 죽치고 앉아 있기를 몇차례 거듭해야 볼 수 있는 명품 경기가 매일같이 이어지니까. 4년 만에 돌아오는 세계인의 축제에서 명품으로 인정받기 위한 기준은 무엇일까. 단순히 자국팀, 혹은 응원팀의 승리라는 신념은 곤란하다. 한국팀이 첫 경기부터 죽을 쑤거나, 아르헨티나가 16강을 탈락하는 등의 상황이 닥칠 경우 심각한 공황상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안전한 기준으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선수들의 외모. 여기서 미남의 기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니, 폭력적인 외모지상주의라는 비난은 사절이다. 스포츠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는 투혼을 잃지 않는 자이고, 그 투혼을 가장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축구장이거늘. 게다가 객관적인 능력과 미모를 겸비한 메시도 눈부시지만,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얼굴 안에 순박함을 지닌 루니의 매력도 만만찮다.

개인적으로 이번 월드컵을 통해 깨닫게 된 명품의 기준이 있으니, 이는 바로 (막상 자판으로 두들기려니 민망하지만) 허벅지였다. 생각해보라. 펑퍼짐한 야구선수는 있어도 뚱뚱한 축구선수는 없다. 꾸준히 자신의 트랙을 달릴 뿐인 육상과 달리, 연신 격렬한 몸싸움이 이어지는 축구에서 허벅지 근육은 더욱 극적이다. 게다가 허벅지의 관점에서 대부분의 골은 아름답다. 속이 시원해지는 중거리슛은 전체적인 각선미를 살필 수 있고, 접전 끝에 가까스로 들어가는 골은 비교적 장시간의 감상이 가능해 좋다(이런 기준에서 코너킥 혹은 프리킥 이후 헤딩으로 이어지는 슛은 점수가 다소 낮다). 문제는 이런 편협한 기준을 가지면 사소한 불만이 많아진다는 점. 카카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그의 플레이를 근접 촬영하지 않는 카메라맨이 원망스럽다. 몇 십년 전에 비해 심각하게 길어진 축구 유니폼 바지는 물론이고, 웬만해선 허벅지를 드러낼 수 없는 박지성의 작은 키도 불만이다(길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아데바요르의 허벅지는 너무 길어서 오히려 낯설다). 그래도 선수들의 웃통벗기 골 세리머니를 폭압적으로 금지시킨 당국이 긴 바지로 유니폼을 변경할 계획은 없어 보이니, 이는 정말 다행이다. (휴우)

주말이 지나면 한국의 16강행도 결판이 나고 월드컵은 이제 후반기로 접어든다. 누구나 하나쯤 자신만의 축구 관전법을 개발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