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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최민식의 쿼터 투쟁 대담 [2]
정리 이영진 사진 이혜정 2006-07-11

쿼터,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의 문제

안성기/ 칸 이야기나 좀 해줘. 촬영하느라 자세히 듣지도 못했는데. 혼자 가서 거의 다 했잖아. 대단한 일을 한 건데.

최민식/ 저 혼자 한 것도 아닌데요. 가기 전에 공연예술노조나 감독조합 등과 같은 프랑스쪽 네트워크와 연락을 좀 했고, 호의적인 답신이 왔어요. 물론 거기 갈 때만 해도 칸 이사회에서 우리의 운동을 지지한다는 성명서까진 바라지도 않았어요. 정치적으로 미묘하잖아요. 게다가 개막작인 <다빈치 코드>를 위해 컬럼비아영화사에서 역사상 최대인원을 파견했고. 영화제 입장에선 톰 행크스랑 귀빈들 초청했는데, 안티 할리우드 외치는 사람들 손 들어주기도 뭣하고. 그런데 문화다양성연대의 심포지엄이 열리는 날 우리를 지지한다는 공동선언서가 채택됐다는 거예요. 우린 침묵시위하고 한국의 상황을 외신에 알리는 정도에 주안점을 둔 건데. 소식 듣고 만세가 나오더라고요.

안성기/ 첫날만 해도 살벌했다고 하던데.

최민식/ 우리가 집회신고를 안 했거든요. 영화제 기간 내에 집회를 허가해줄까 싶어서 무작정 도발을 한 거죠. 근데 그곳 경찰들이 파업을 하는 바람에 연방경찰 시위진압반이 투입됐어요. (웃음) 무지막지한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했는데, 한번은 촛불시위하는데 플래카드도 찢고 피켓도 뺏고 난리였죠. 통역 하시는 여자분이 겁을 잔뜩 먹는 바람에 상황도 잘 모르고 애를 먹고 있었죠. 터프하다던데 진짜 터프하더라고요. 근데 우리가 장소를 참 잘 선택했어요. 프레스센터 앞에서 했는데, 절 인터뷰했던 기자들이 어디선가 나타나서는 제지하는 거예요. 이 사람 한국에서 온 배우다, 평화적으로 시위하는데 왜 그러느냐, 무례하게 굴지 말고 그들의 시위를 보장해라. 귓속말로 통역하시는 분이 상황을 전해주는데, 코끝이 찡해지던데요. 이사회 임원이기도 한 감독조합 부회장을 비롯해 정식 안건으로 발의해서 결국 스크린쿼터 운동 지지를 끌어내준 해외 영화인들도 고맙고, 인터뷰 도중 너무 흥분한 <리베라시옹>의 플로랑스 오브나스 기자도 기억나고. 그들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긴 했어요. 간만에 말이 통하는 친구들을 만난 것 같아 좋았지만, 왜 그런 느낌 있잖아요. 부모에게 버림받은 느낌 같은 거. 우리 관객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안성기/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난 아직도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이 중요하다고 봐.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다들 찬성했던 협약이잖아. FTA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문화부문을 예외로 둘 수 있는 아주 좋은 핑계였는데, 우리 정부는 그걸 무시하고 말았잖아. 협약에 찬성해놓고, 제일 먼저 등을 돌린 셈이 됐는데, 이건 외교적인 마이너스지. 미국도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도 중요하다고. 편파적으로 의지하면 위험도 커지는 법인데. 문화적 다양성도 중요하고, 외교적 다양성도 중요하다고. 토고에 대해서 관심이 높다고 하는데.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서 아나. 지리시간에 어디 식민지였는지, 특산물이 뭔지 정도밖에 모르잖아. 너무 한쪽밖에 모르고 쫓아가는 게 문제라고.

최민식/ EU는 문화다양성협약을 각국 의회의 비준까지 얻어냈잖아요. 미국으로선 본 협상 테이블에 스크린쿼터를 올리는 건 명백한 반칙이니까, 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고 우리 정부는 그걸 받아준 거죠. 주권국가라지만 우린 너무 대미의존도가 심해요. 미국없이 경제든 군사든 안보든 독립할 수 없다고 어렸을 때부터 주입받았고, 세뇌됐으니까. 그런 상황을 인식 못하는 건 아닌데, 왜 친교, 동맹, 우방이라고 하는 좋은 의미의 친구라고 할지라도 쓴소리를 할 때가 있어야 하잖아요. 네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대해서 뭘 아느냐고 하실지 모르겠으나, 아주 상식적인 선에서 볼 때 그렇다는 거죠.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고 하셨잖아요. 전 노무현 대통령이 이준기에게 자신감을 좀 가지라고 했는데, 미국에 대해서 과거에 말씀하셨던 그 자신감을 진짜 한번 가져보시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장하준 교수가 쓴 글을 봤더니 물은 높은 데서 아래로만 흐른다면서요. 비슷한 나라끼리의 FTA는 시너지가 있을 수 있지만 미국과의 FTA에서 그런 걸 기대할 수 없는 게 명백한데.

안성기/ 관료들이 좀더 복잡하고 섬세한 마인드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뭉뚝하게 정책 만들고 추진하는 거 보면 아쉽다고. FTA 협상단 구성원을 도중에 교체하는 거 보면 할 말 다 했지, 뭐.

5.15/ 최민식, 김홍준 감독 등 10여명의 영화인들 칸에 도착해 시위 시작. 5.17/ 칸영화제 개막식에서 칸 원정시위대, 침묵시위 벌임. 5.21/ 칸 이사회, 만장일치로 “한국의 스크린쿼터 지지” 입장 표명. 4회 문화다양성의 날을 맞아 영화인 대책위 성명 발표.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 이후 7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지만 캐나다, 멕시코 등의 국가가 협약에 관한 국내 비준 절차를 끝냈고, 프랑스,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EU 다수 회원국들도 국내 비준 절차 밟고 있다며 정부 압박.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안성기/ FTA 물 건너가고 내년 3월까지 협정 체결이 안 되면 스크린쿼터 축소 또한 원위치로 되돌릴 수 있을 거야. 전제조건 아니라고 했지만 그것도 거짓 아닌가 싶고. 그동안 국회쪽과 같이 영화진흥법 모법에 스크린쿼터 146일을 박을 수 있도록 해야지.

최민식/ FTA 결렬되면 원인무효가 되는 거죠. 김현종 FTA 통상교섭본부장이 외신 기자회견 때 4대 선결조건과 관련해서 쇠고기나 배기가스나 약값 기준에 대해선 얼버무렸는데 스크린쿼터만큼은 FTA 협상의 촉진을 위해서 들어줬다고 했거든요. 협의의 촉진을 위해서라니, 참. 테이블에 같이 앉는 것이 그렇게 영광스러울 수가 없어서 스크린쿼터를 내주다니. 그래놓고 미국의 압력과 상관없이 내부에서 조율했다고 하질 않나. 전 통상절차법 개정도 중요하다고 봐요. FTA라는 중요한 협정에 대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사후동의 정도밖에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죠. 미 무역대표부는 미국 의회의 간섭을 받는데 말이죠.

안성기/ 국회의원들도 어떤 세계관 같은 걸 갖췄으면 좋겠어. 분명한 분들이 계시긴 하지만, 근근이 하루하루 큰 조직에서 살아가기 바쁜 것 아닌가 걱정이 돼. 당론과 배치되더라도 소신이 있다면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최민식/ 국민들이 떠드니까 이제야 겨우 움직이잖아요. 오늘 FTA 공청회에서도 난리가 났다던데. 정부는 정말 이해가 안 가요. 득이 실보다 더 많은 꿀맛 FTA라면 왜 협상 내용을 베일로 감싸려 하는 건지. 국민의 이해가 중요한 건지 외교적 관례가 중요한 건지. 게다가 국내에선 실이 더 많다는 주장도 높아지는데 그런 상황에서 정말 경쟁력을 확보하고 선진한국을 만드는 협상이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까발려야 하는 거잖아요. 개인적인 견해지만, 스크린쿼터와 FTA 투쟁에서 정치적 협상이나 타협보다는 진심이 필요하다고 봐요. 희망보다 불행을 안겨줄 여지가 큰 위험한 경제협정이고 게다가 미국 스케줄에 맞춰 촉박한 시한 내에 졸속으로 처리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이상 계속 싸워야죠. 세금 들여 만든 FTA 관련 국정홍보처 광고 볼 때마다 그렇게 다짐해요. 앞으로 우리가 더 떠들어야 한다고.

안성기/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보지만 영화계 내부의 문제점들도 이번 기회에 함께 고쳐가야겠지. 억지로 칼 댄다고 다 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최민식/ 오늘 오전엔가 스탭노조와 제협과 상견례가 있었잖아요. 교섭단체 결성이 됐는데 우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죠. 노사 관계가 원만할 순 없을 것이고, 게다가 처음이니까 삐걱거릴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영화인들이 노조 출범을 반대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봐요. 누구 배를 채우려고 스크린쿼터를 유지하느냐는 비난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영화계 내부의 문제들을 서서히 풀어갈수록 스크린쿼터 싸움의 동력은 더욱 커져간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언론이 도와줘야 해요. 어디처럼 “배우들 돈 너무 밝혀요” 하는 식은 곤란하죠. 스크린쿼터 축소 앞둔 국면에서 의도도 불순하고.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거예요.

안성기/ 스크린쿼터가 축소가 시행되는 7월1일부터 싸움은 다시 시작인 거지. 그러니까 <씨네21>도 제목을 그렇게 좀 달아줘. ‘이제, 시작이다!’ 하는 식으로. 앞으로도 민식이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거야. 지금까지도 물론 희생이 굉장히 많았다고 생각해. 난 그렇게 못하거든. 저렇게 많은 희생을 하기가 겁날 때가 있어. 그래서 좀 약간 변명을 하자면 길게 가야 하니까 죽지 말고 우리 살면서 같이 가야 한다고 하는 거지. (웃음)

최민식/ 보스는 원래 가만있는 거예요. 아래가 설치는 거지. 게다가 난 꼴통 기질도 좀 있고. 물론 저도 후배들에게 집회 때 전화할 때는 미안하긴 해요. 배우라는 직업이 좀 그렇잖아요. 이미지를 생각 안할 수도 없고. 최근에 민노당 공천설 해프닝도 그래요. 언론에서 자꾸 상처를 주려고 하는데. 근데 그분들이 날 잘 몰라요. 이미 굳은살 박혔다는 거. 복싱할 때도 맞을 만큼 맞으면 감이 안 와요. 그 정도 상처에 흔들릴 수야 없죠. 그런 사안으로 칼집에서 칼을 뺄 순 없죠. 안 빼죠.

안성기/ 나도 수화기만 들면 괜히 미안해지는데. 이젠 새로운 조직책이 하나 생겼으니까 좀 덜 미안해지려나. (웃음)

5.15/ 민주노동당, 한-미 FTA에 협정문 초안 공개 요구. 6.6/ 2차례의 예비협상에 이어 한-미 FTA 본협상, 미국 워싱턴에서 시작. 6.22/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에서 FTA 신중론 확산. 통상협상 진행상황에 대해 국회에 보고하고 협상완료 전 국회 동의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통상절차법’ 발의 검토 논의. 7.1/ 연간 73일로 축소된 스크린쿼터 축소 시행. 영화계, ‘스크린쿼터 원상회복 및 한-미 FTA 저지를 위한 문화제-가자, 모이자!’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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