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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네티건 그리고 네토피아

얼마 전 약 4만명의 인구에 달하는 지방 소도시에 놀러갔다 온 적이 있다. 그 소도시 근처에 이르렀을 때 <관객모독>이라는 연극의 선전포스터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참 희한했다. 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사는 지방에서 웬 추상극인가? 거기에다가 가장 싼 표값이 1만5천원. 그러나 다음날 오전, 다시 서울로 떠나려고 했을 때는 입장권을 끊지 않아도 그 연극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말이다. 그때는 주중이었고 워낙 소도시라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소녀 등 많지 않았다. 버스표를 끊으러 매표소로 가다가 카운터 앞에 서 있는 한 총각의 모습을 봤다. 필자는 거리를 두고 몇시에 갈지를 고민하며 시간표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총각은 표를 파는 두 여자들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4∼6개의 대표적인 욕들을 빠른 속도로 반복해가면서 중간중간에 한두가지 관련된 설명의 문장을 집어넣는 광경이었다. 처음에는 택시기사 어쩌고저쩌고 하고 여기 사람들은 모두 다 불친절하고 다 깡패라면서 이 소도시에서 있으면서 겪은 일 때문인 줄 알고 속으로 극단적인 이 ‘표현주의자’에 대해서 썩은 미소를 지었다. 총각이 표 하나 사고 승강기를 향해 사라졌기 때문에 더이상 신경을 안 썼다. 하지만 잠시 뒤 필자가 이미 터미널 다방으로 가 있었을 때 총각의 큰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그리고 1시간 동안 끊이지 않았다. 다방에서 힐끗힐끗 하면서 순간적으로 혹시 다방 안까지 오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그 총각은 몇명 밖에 없는 텅 빈 낡은 터미널에서 배고픈 호랑이처럼 어슬렁거리면서 이 깡통을 치고 저 철벽을 치면서 자기의 욕을 위한 먹이를 찾고 있었다. 표 파는 두 여자 말고 나머지 사람들은 필자처럼 무모한 호랑이를 피해갔다. 진정한 마음으로 다가가서 설득해봤자 어차피 맞거나 무시를 당할 것이 뻔했다.

직접적인 신체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고 표적도 되지 않고 일찌감치 그 호랑이로부터 도피해서 안전한 거리를 두고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필자조차 총각의 증오와 폭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주표적이었던 매표소 여자들은 1시간 동안 정말 괴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창 뒤에 있어 어느 정도 안전했겠지만, 언어폭력은 신체폭력보다 상처를 덜 주는 것도 아니고, 또 혹시 어떻게 들어와서 몸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으리라.

인터넷상에서도 바로 이러한 경험을 매일매일 할 수 있다. 특별히 한국적인 현상인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인터넷이 워낙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거의 실제 사회의 거울과 다름없다. 하지만 인터넷의 특징으로 익명성이라는 탈을 쓰고 더 자유로워서 그런지 그 총각처럼 행패를 부리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실제공간보다 가상공간에서 신원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TV에 나온 어느 인터넷 선전처럼 네티즌들은 말도, 탈도 많기가 십상이다. 댓글 폭력, 이메일 테러, 해킹 등 온갖 사이버 행패들을 저지른 이들을 종합해서 잘 표현하는 말은 이른바 네티건이다. 영어의 ‘시티즌’이라는 시민의 뜻에서 비롯된 네티즌처럼 ‘훌리건’(악성 축구 난동꾼)이라는 말을 네티건으로 적용시킨 표현이다.

이번에 유럽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또다시 일부 축구팬들의 폭력성이 나타났다. 실은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다. 다른 나라에 가서 다른 나라의 대표팀이 이기면 안 된다거나 ‘그냥’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주변을 가리지 않고 마구 부수는 행태, 이것은 네티건들과 너무나 닮은꼴이다. 최근에 오심 판정과 관련해서 FIFA 홈페이지에 대량 이메일을 보냄으로써 결국 한국의 접촉을 폐쇄하기까지 이른 것도 그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극우 골빈당인 게 뻔하지만 일부러 <한겨레>의 인터넷 페이지에 들어가서 무조건적으로 욕설이나 부정적 언사를 퍼붓는 행패, 아니면 마찬가지로 <조선일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똑같이 일방적인 비방을 가하는 ‘꼴통 좌파’ 등이 그것이다. 이것도 부족하면 같은 ‘좌파’나 ‘진보’인데도, 또 한번 갈려서 저 파의 매체에 이 파의 지지자들이 동물의 영역을 표시하는 행태처럼 욕설을 무차별적으로 뿌린다. 인터넷은 실제 사회의 거울일 뿐만 아니라, 가끔 사회의 돋보기이기도 하다. 예컨대 성과 관련된 문제이면, 특히 남성들이 일반적으로 토론할 때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입장에서 훨씬 더 심한 욕설로 가부장의 권위주의를 폭력적으로 재생산한다. 임수경, ‘개똥녀’, 신문선 등과 같은 큰 사건이나 성매매특별법, 호주제폐지운동, 월드컵 응원 때의 여성들의 피부노출 등과 같은 특히 성문제와 관련한 주제가 인터넷상에서 토론대상이 될 때 네티즌들은 문명의 의복을 벗어 본능의 네티건을 드러낸다. 그들은 상대방의 글을 제대로 읽지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은 채 묻지마 반대와 부정, 오만과 편견에 빠진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러한 네티건들은 그 총각과 별 차이가 없다. 다시 그 소도시의 터미널로 돌아가자. 결국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관들이 와서 행패를 부린 총각을 데리고 평화로워 보이는 산기슭 사이로 사라졌다. 컴퓨터 화면 앞에 앉듯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관객모독> 퍼포먼스를 관람한 셈이다. 하지만 박수는 우리를 모독한 이들에게 도저히 보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