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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바다를 비추는 작은 등대, 시네마테크 부산을 가다

시네마테크 부산을 취재하기 위해 만난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지석 교수는 대뜸 “왜 이제야 내려왔어요”라고 나무랐다. 그만큼 시네마테크 부산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알려져야만 한다는 뜻이었을 거다. 1999년에 개관한 시네마테크 부산은 오즈 야스지로와 구로사와 아키라, 장 르누아르, 하워드 혹스 등의 쟁쟁한 회고전을 기획해왔고,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적은 지방에서 <더 차일드> <라스트 데이즈> 등의 예술영화를 상영하며 영화관으로서의 기능도 함께 수행해왔다. 최근에는 박찬욱과 김지운, 봉준호 감독 등을 부산까지 초대해 그들이 추천한 영화를 상영하고 강연을 듣는 ‘수요시네클럽’ 같은 적극적인 이벤트도 병행하고 있다. 터놓고 말하자면 시네마테크 부산을 찾아간 데는 그처럼 서울에서도 대면하기 힘든 화려한 이름과 제목에 이끌린 것이 컸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서 만난 것은 바다를 향해 열린 번듯한 상영관과 소개 책자만 보아도 서울 관객으로서 부럽기만한 거장들의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불씨, 라고 하면 지나치게 구태의연한 표현일까. 식은 밥상처럼 대하던 오래된 연인에게 다른 여인의 눈길이 닿고서야 새삼 질투 섞인 애정이 타오르듯, 바닷가까지 찾아와 좋은 영화를 챙겨보는 시네마테크 부산의 관객은, 시샘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시네마테크 부산은 좋은 영화와 좋은 관객이 만나는 좋은 장소였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에 관해 강연 중인 봉준호 감독

7월19일 시네마테크 부산의 직원들은 180석에 가까운 좌석이 모자라 통로마다 접는 의자를 가져다두고 있었다. 그날은 <괴물>의 봉준호 감독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을 함께 보고 강연을 하는 ‘수요시네클럽’이 있는 날이었고, 티켓이 현장 판매분까지 매진되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지방에서 만나기 힘든 유명한 감독을 보러 몰려든 이들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중에서 지명도가 낮은 편이고 상영 시간도 두 시간이 넘는 <천국과 지옥>을 보고난 관객은 봉준호 감독도 예리하다며 숙고할 정도로 열심히 영화 그 자체에 관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시네마테크 부산의 허문영 원장은 영화인을 초청하여 한달에 한번 여는 이 행사가 전반적으로 위기를 맞은 시네마테크의 현재를 돌파하기 위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정성일씨가 강연했을 때는 애초 10시쯤 끝났어야 했던 강연이 11시까지 이어졌다. 관객 수는 오늘보다 훨씬 적었지만,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어서, 그 시간까지 관객이 거의 자리를 뜨지 않을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고 흐뭇한 심정을 드러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인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도시지만, 모든 문화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한국에선 여전히 변방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부산. 고적한 바닷가에 자리잡은 시네마테크 부산은 폭우가 쏟아지는 한여름의 도시에서 조그맣게 반짝이는 불빛을 밤이 늦도록 끄지 못하고 있었다.

3천여장의 DVD와 VHS, 3300여점의 영화서적 보유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시네마테크 부산은 타지 영화인들에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과 폐막작의 기자 시사회가 열리는 한적한 극장일 뿐이었다. 그러나 구로사와 아키라와 장 르누아르의 회고전이 열린 2002년 무렵부터 시네마테크 부산은 그토록 멀리 있지만 않다면 매우 가고 싶은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한꺼번에 17편이나 볼 수 있는 기회는 지금도 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때문에 서울에 사는 어느 영화인은 여름 휴가를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이 열리고 있던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보냈고, 기나긴 영화사에서도 볼드체로 기록될 걸작들과 함께 건물 밖으로 몇 걸음만 걸어나가면 파란 바다와 하얀 돛을 펼친 요트들이 보이는 풍경을 누리고 돌아왔다고 기억했다. 강연이 끝나고 “집앞에 이런 곳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 몇번이나 말하던 봉준호 감독도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자료실에 3천장이 넘는 DVD와 VHS, 3300여점에 달하는 영화 관련 도서와 논문을 보유하고 있는 시네마테크 부산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시간이 유독 빠르게 흘러가는 공간일 것이다. 2000년부터 시네마테크 부산을 자주 찾았다는 김광준씨는 “영화를 보러 갔다가도 바깥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거나 자료실에서 책을 뒤적이다 오는 날도 있다”고 말했다.

시네마테크 부산이 지금처럼 자리를 잡기까지는 몇 차례 시행착오와 지방이기 때문에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무관심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부산영화제와 연계되어 1999년에 개관한 시네마테크 부산은 영화제 집행부의 설득과 노력으로 체육시설이 들어서기로 되어 있던 요트경기장 빈 터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부근에 지하철이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차가 없는 젊은 관객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장소였다. 설비를 확보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쓰지 않았던 구식 영사기를 가져온 탓에 첫해에는 부산영화제 개막작인 <박하사탕>의 기자 시사회 도중 이창동 감독이 기술적인 문제를 지적하여 상영이 잠시 중단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이고 시네마테크 부산 설립을 주도한 이들 중 한명이었던 김지석 교수는 그나마 뺏어오다시피했던 그 영사기는 새로운 기계가 들어온 다음 시네마테크 부산 건물에 유물처럼 장식되었다고 말하면서, 시네마테크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7년 전 부산에서 “이런 형식의 시네마테크는 한국에서는 최초가 될 것”이라고 시의회와 지방자치정부를 설득했던 나날을 회고했다.

지자체 지원과 부산영화제 연계 방식으로 운영

김지석 교수가 말한 이런 형식이란 시(市)의 지원을 받고 영화제와 더불어 운영되는 시네마테크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처럼 안정된 운영체제가 없었다면 시네마테크 부산은 때로는 프린트 제작비를 대면서까지 서울에서 개봉한 예술영화를 동시에 들여오고, 자막번역에도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소규모로 개봉하는 예술영화는 기대수익이 높지 않아 프린트를 한두벌만 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언론으로 그 영화를 접하는 부산 관객은 프린트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려와 고집은 자막번역에도 통하였다. 시네마테크 부산 조설아 자막팀장은 “영화제가 확보하고 있는 자막번역팀이 있어서 영어와 일본어 외의 언어권 영화도 질이 높은 번역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낯선 영화를 소개하는 시네마테크의 자막번역이란 험난하기만 한 것이어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온 어느 번역가는 비가 내리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낡은 필름을 보며 시적인 대사를 번역하다가 생전 처음으로 작업 도중 울어버렸다고 전해진다. 2002년 아시아 각국의 영화를 상영했던 ‘아시아필름페스티벌: 아시아영화의 위대한 유산’ 때는 시베리아에서 살다온 한국인과 키르기스스탄 출신인 그의 아내가 힘을 모아 우즈베키스탄영화의 자막을 감수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처럼 시일을 두고 영화제와 인적 자원을 공유하기도 하면서 차곡차곡 쌓여온 시네마테크 부산의 연륜은 자막번역을 비롯한 업무뿐만 아니라 관객에게서도 드러나고 있다. 관객이 들지 않을 거라고 모두 말렸지만 꼭 하고 싶어서 올해 6월 한국 최초로 자크 타티 회고전을 감행한 허문영 원장은 애초 200∼300명의 관객을 예상했지만 기대치보다 높은 500명가량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에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을 준비하면서 서울보다 여덟편이 많은 열여덟편의 영화를 준비하는 과감한 프로그래밍을 했다. 평일 낮에는 관객이 드물다고 해도 분명한 고정 관객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좋은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를 기뻐하며 시네마테크를 꾸려가고 있는 스탭들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이다. 시네마테크 부산 홍보를 맡고 있는 안영수씨는 영화를 보러온 관객에게 자주 말을 걸고 그들 또한 친근하게 대해준다며, 지금 극장 안에 있는 관객은 VIP회원인 대학생이고, 또 다른 관객은 낮에 자주 오는 분인데 수첩에 보고 싶은 영화 목록을 적어둔다고, 낯을 익혀야만 알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네마테크 부산의 회원은 700여명. 적다고 보기는 힘든 숫자이지만 분위기는 다정하여 장내를 정리하던 중년의 직원은 “사이좋게 세명씩 같은 줄에 앉았네”라며 <금지된 세계>를 보러온 여섯명의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관객 김광준씨는 “몇년 동안 영화를 보러다니다 보니 모르는 사람인데도 얼굴을 알게 되어 관객이 단 두명이었던 날 상영이 끝나고 함께 차를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700여명에 달하는 탄탄한 고정 관객이 밑거름

서울보다 수가 많지는 않아도 탄탄한 고정 관객은 초반부터 힘이 되어주었다. 초창기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일했던 최윤나 부산영화제 사무국장은 자막이 없는 VHS에 하나씩 자막을 입히다보면,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의 자막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뒤를 이어 2대 원장을 맡았던 이용관 교수도 주말마다 나란히 시네마테크를 찾아오는 노년의 부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처럼 기쁨을 받으면 주기도 하는 법이어서 관객 또한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맞닥뜨린 강렬한 순간을 마음에 품어왔다. 소설책 뒷부분 해설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애타게 보고 싶어하다가 마침내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아베 코보 원작의 <모래의 여자>를 보았던 관객, 영화가 길어 1부와 2부로 나누어 상영한 <7인의 사무라이>를 보다가 난생처음 1부만 끝났는데도 박수가 터져나오는 장면을 목격한 관객, 잡지에서 읽기만 했던 <녹색광선>의 ‘녹색광선’을 필름으로 확인한 관객, 시네마테크 부산이 너무 좋아 이사할 때가 되자 해운대쪽에 집을 구했다는 관객. 그 모든 순간이 뒤엉켜 탁 트인 하늘과 바다 사이에 오똑하게 자리한 시네마테크 부산을 풍성하게 감싸주고 있을 것이다.

시네마테크 부산은 장점과 단점과 복잡한 과제를 동시에 떠안은 조직이다. 김지석 교수는 이곳은 “시네마테크이면서 지역 영화문화의 발전을 고려하는 공적인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영화제작을 가르치는 사설교육기관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에 실기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그 예”라고 말했다. 또한 운영에는 간섭을 거의 하지 않지만 예산 분배 과정에서 통계를 고려해야 하는, 다시 말해 관객 숫자를 고려해야 하는 부산시의 입장도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시네마테크 부산은 ‘심화과정’이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자크 타티와 이치가와 곤과 마스무라 야스조 회고전을 기획하면서도 지난해보다 관객이 줄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을 짊어지고 있다. 소식지를 발행하고, 언론의 보도에 기대기보다는 블로그 등을 통해 자체 홍보력을 높이려는 시네마테크 부산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더 많은 관객과 좋은 영화를 공유하고 싶다는 소망과 더불어 공적인 기관으로서의 책임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작 실기 교육 등 공적인 기능도 수행

이처럼 시네마테크 부산은 수많은 소망과 과제를 지붕이 넘치도록 감당해야만 한다. 어느 관객은 사려깊게도 “한산한 평일의 시네마테크 부산을 볼 때마다 걱정이 된다. 시네마테크 부산에 바라는 것은 계속 그 자리에 있어 달라는 것뿐”이라고 근심했지만, 그곳에 영화를 보러가는, 혹은 앞으로 보러가게 될 관객은, 그런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영화만 즐기면 될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저 좋은 영화를 보는 일이 좋을 뿐인 관객이 시네마테크 부산에 가장 큰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허문영 원장은 “시네마테크 부산 관객은 서울에서는 이미 사라진 듯한, 영화를 발견하고 좋아하게 되는 최초의 흥분을 간직한 듯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흥분은 시네마테크 부산에 정말 존재하고 있었다. 자료실의 비디오데크 앞에 앉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거미의 계략>을 보고 있던 50대 관객 김묘숙씨는 갈빗집을 운영하면서 점심과 저녁 영업 사이 몇 시간을 틈내어 시네마테크 부산에 영화를 보러온다고 했다. 시간을 맞추지 못해 상영 중인 기획전 ‘B급호러영화파티’의 켄 러셀의 <런던의 악마들>을 놓쳤지만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거미의 계략>을 발견한데다가 오프닝 크레딧을 보고야 좋아하는 보르헤스가 원작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영화가 밥벌이가 되기 이전 마냥 좋기만 했던, 고작 십년도 안 되었지만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시절을, 그 순간 영화처럼 떠올렸다.

“황금기 미국영화와 이 시대 아시아 감독들을 소개하고 싶다”

허문영 시네마테크 부산 원장 인터뷰

부산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인 허문영 원장은 2005년 3월부터 시네마테크 부산 원장을 겸하게 됐다. 일년 내내 서울과 부산을 오가기 때문에 고된 업무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내가 보고 싶던 영화를 여러 사람과 함께 볼 수 있어 좋다”는, 지극히 시네필다운 즐거움으로 시네마테크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시네마테크 부산은 여러 가지 이벤트를 개최하고 소식지도 발간하고 있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 관객의 호응도 높아지고 있는지. =지난해엔 관객이 오히려 30% 정도 줄었다. 시네마테크와 예술영화가 전반적으로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유명한 감독을 비롯한 외부 인사를 초대하여 강연을 하기도 하고, 프로그램도 대중성을 강화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B급호러영화파티’가 그런 경우다. 올해 하고 싶었던 이치가와 곤과 라울 월시 등의 회고전을 포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반기에 회고전을 여는 마르셀 카르네와 줄리앙 뒤비비에는 한국 관객이 흔히 생각하는 프랑스영화, 우아하고 감상적인 시적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여서, 관객이 좀더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한다.

-국내 최초로 자크 타티 회고전을 하기도 했고, 예전에 비해 프로그램이 다양해졌다는 느낌이다. =시네마테크 부산이 상영료가 비싼 편이었던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을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흥행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감독들을 거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의 기준은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황금기의 미국영화를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루이스 브뉘엘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존 포드와 에른스트 루비치 같은 감독을 거쳐야 한다고 믿는다. 그때 할리우드 영화감독들은 영화의 육체성과 개별 숏의 관능성을 철저하게 추구했던 이들이었다. 다른 하나는 에릭 쿠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같은 동시대 아시아 감독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시네마테크는 어떤 식으로든 동시대 영화를 끌어들여야만 한다. 영화는 현재의 매체이고, 감독들은 언젠가 문화적인 유산으로 남을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확신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즈 야스지로와 같은 거장들의 회고전은 다시 할 수밖에 없다. 앙드레 바쟁은 영화에 관한 한 기억을 믿어서는 안 되므로 5년에 한번은 다시 보아야 할 좋은 영화들이 있다고 했다.

-시네마테크 운영을 맡은 지 일년이 넘었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다면.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필름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자크 타티 회고전에서 상영했던 <축제>는 컬러로 찍었지만 원본이 발견되지 않아 프린트에 손상을 입은 흑백으로만 돌아다녔던 영화고, 나도 그 영화를 흑백 비디오로 봤다. 90년대에 그의 딸이 컬러 프린트를 발견했어도 한국에선 그 영화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축제>가 컬러로 스크린에 영사되던 순간 울컥하는 감격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