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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2001-09-07

이재룡 감독 등 영화인 4인이 말하는 시네마테크의 매력 (1)

이재용 - 영화감독

좋은 영화는 나를 깨어나게 한다

1995년 여름에 나는 영화 편집일로 뉴욕에 몇개월간 있었다. 어느날 한 시네마테크에서 무성영화시대의 거장 에른스트 루비치의 회고전이 있었는데, 사실 그전까진 그의 이름을 영화사 책에서나 본 듯한 기억이 있을 뿐이었다. 그중 1919년 작품 <굴 공주>(Oyster Princess)를 보았는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성영화 코미디이고 폴라 네그리라는 여배우가 나왔으며 무척 재미있었고 기술로나 표현기법이 지금 보아도 별로 낡지 않게 매우 뛰어났다.

그 영화를 보고나서 무엇보다 ‘우리가 대한독립 만세를 부를 때 그들은 벌써 영화의 완성을 이루고 있었구나. 우리는 1927년에야 비로소 연쇄극 <의리적 구토>를 만들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는 한해에 꼽을 만한 수작이 한두편 나올까 말까 했고 과연 한국영화에도 르네상스가 올까 하고 나 스스로 의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출발선이 너무나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하나였고, 또 하나는 ‘한국에서는 저런 영화는 필름으로는 물론 비디오로도 못 보는 거겠지. 좋겠다…’ 하는 거였다. 영화공부는 극장에서 영화로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영화들을 시네마테크에서 필름으로 보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사실 영화사 공부를 한다 해도 영화는 보지도 못한 채 제목이나 감독이름을 외우거나 영화를 본다 해도 고작 비디오로, 그것도 네오리얼리즘영화 이전 것은 볼 기회도 거의 없이 그렇게 열악하게 공부하던 한국 상황이 서글펐다.

한국에서도 비록 비디오지만 시네마테크라는 이름을 걸고 영화를 보여주는 곳이 몇 군데 있었으나 초창기에 좀 찾아다니다가 안 가게 되었다. 화질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번역이 안 된 채 봐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봤는데도 기억이 잘 안 나는 영화를 생각해보면 한글 자막이 없었던 것이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올 여름 나는 무척 행복하게 보냈는데, 보기 드문 영화들을 서울에서 필름으로, 그것도 한글 자막을 넣어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등에서 주관하는 영화주간들이 그것인데 비디오영사로 자막을 입히는 기술이 나오면서 비로소 시네마테크운동이 본격화하지 않았나 싶게 그것은 훌륭한 방법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난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오즈 야스지로며 로베르 브레송, 알랭 레네 등등 거장이라는 그들의 영화를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기 전까지 필름으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실은 비디오로도 본 적이 없다. 에릭 로메르도 거의 마찬가지고 지난주에 한 ‘영화사강의’ 영화들도 그렇다.

한때 내 영화를 만들면서 보니까 재미로 보는 것 외에 굳이 남의 영화를 볼 필요가 있을까 생각 한 적 있었다. 왜냐면 결국은 자기 식대로 영화를 만들지 그다지 다른 영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다시 드는 생각은 좋은 영화는 나에게 영감을 주고 잠든 뇌를 한 번 흔들어 깨운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영화를 보는 것을 사람을 만나는 것에 비유하곤 하는데 영화와도 인연이 닿아야만 제대로 만날 수 있다. 시네마테크 영화주간들에서 보여주는 영화들은 어쩌면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르는 영화들이다. 그것들을 굳이 만나야 하느냐고 물으면 그건 자유지만 분명히 누군가에겐 아주 소중한 경험들이 될 것이다. 많은 것들의 가치에 의심을 품는 나로서도 당연히 옳다고 지지하는 것 중 하나가 시네마테크운동이다. 놓치지 말고 기회가 왔을 때 보길 바란다.

유운성 - 영화평론가

비디오에 만족했다면 많은 걸 놓쳤을 것

내겐 그다지 흔치 않은 영화적 경험을 맛보게 해준 영화 가운데 하나가 (얼마 전 TV에서도 방영된 바 있는)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이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한 세 가지의 관람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지난해 말 브레송 회고전을 통해 이 영화를 처음 보았고 얼마 뒤 프랑스문화원에서 다시 보았다. 그리고 <NHK> 위성방송을 통해 본 것이 세 번째이다. 사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았을 때도 이 영화의 비극성에 공감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경험은 과장없이 말해 가장 소름끼치는 공포영화를 보았을 때의 그것에 필적할 만한 것이었다(그런데 난 아직 공포영화 중에서는 그만한 정서를 유발시키는 예를 보지 못했다).

영화제나 회고전을 찾아다니는 건 두 가지 단순한 이유에서다. 하나는 이미 (비디오로) 본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서만 가능한 영화적 경험을 전해주리라 믿어지는 영화들을 찾아나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제나 회고전이 아니고서는 개봉관에서 거의 접할 가망성이 없는 영화들 가운데 이른바 ‘발견’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물론 기대가 충족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긴 하지만 아주 없지는 않다. 가령 포르투갈영화제에서 본 올리베이라의 <아브라함 계곡>이 전자의 기대를 만족시킨 영화였다면 같은 감독의 <불안>이라는 영화는 후자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외침과 속삭임>이나 <악의 손길>을 비디오로 보는 데에 만족했다면 난 아마 많은 것을 놓쳤을 것이다. 크리스 마르케의 <마지막 볼셰비키>나 <레벨 5>는 (개인적으로는) 예상치 못한 ‘발견’이었다.

기억에 남아 있는 몇편의 영화들이 있다. 두상 마카베예프와 파졸리니의 영화들, 혹은 존 포드의 영화들. 내가 그 영화들을 예전에 비디오로 보았을 때 놓쳤거나 알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새삼 궁금해진다(이 속보이는 말로 영화제를 기획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 기대하진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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