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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에 다함께 박수”
2001-09-07

<수취인불명> 현지반응

김기덕 감독은 이제 유럽에서 적지 않은 지명도를 얻은 것 같았다. 제5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일인 지난 8월29일(현지시각) 오전 <수취인불명>의 기자 시사회가 열린 뒤 이탈리아 위성채널인 <텔레플리>(tele+), 영국의 텔레비전 뉴스 <APTN> 등 이탈리아, 영국, 독일, 포르투갈의 신문·방송사 20여곳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인터뷰를 해온 기자들은 모두 <섬>을 기억하고서 이 영화에 대한 질문을 빠뜨리지 않았고, <수취인불명>과 관련해 영화의 표현방식뿐 아니라 주한미군문제와 한-미관계 등을 묻느라 인터뷰 시간이 대부분 1시간을 넘겼다. 이런 관심은 김 감독이 지난해 <섬>에 이어 올해 <수취인불명>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2회 연속 진출한 데 힘입은 바가 크겠지만, 그의 영화가 지닌 강렬한 개성이 먹혀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수취인불명>을 본 현지 언론인이나 일반관객에게 반응을 물었을 때 나온 말들은 이랬다. “강렬한 이미지가 상징하는 것들이 일관성이 있다…. 폭력적인 장면들이 의미가 있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캐릭터 구현이 잘돼 있다, 원작소설이 있는가….” 30일 오후의 공식상영 때는 주상영관인 살라그랑데의 좌석 1300석의 3분의 2가량이 찼고,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의 표정도 대체로 밝았다. 상영도중 극장을 나서는 이는 찾기 힘들었다. 지난해 <섬>을 이곳에서 상영했을 때, 상영도중 극장을 박차고 나가는 이와 마지막까지 남아 박수를 크게 보낸 이들로 반응이 갈렸던 것과 대조를 보였다. 감응의 정도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지만, <수취인불명>이 <섬>보다 폭넓은 층에 다가갔다는 건 분명해보인다.

30일 밤 이 영화의 제작사 LJ필름이 마련한 리셉션장에 온 이번 영화제 작품선정위원인 알베르토 크레스피는 <수취인불명>을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47년작 <파이자>에 견주며 찬사를 보냈다. “2차대전 당시 미군이 이탈리아에서 독일군을 몰아낼 때를 다룬 <파이자>는 미군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양가적 감정을 대변했는데, 54년이 지나 이탈리아인들은 <수취인불명>을 보면서 그 영화의 느낌을 되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순간 이건 훌륭한 경쟁작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나라의 합작영화가 유달리 많고 그 영화들이 세계화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게 이번 영화제의 한 특징이고 보면, 주한미군 기지촌 주민의 이야기인 <수취인불명>은 그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이건 심사에서 장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도 리셉션장에 와서 <수취인불명>에 대한 자기 생각을 간략하게 밝혔다. “<섬>과는 영화언어 등 여러 면에서 다른 영화로 보인다. 사회적 주제를 다루고 있고, 그런 면에서 한발짝 더 나아간 영화다. 김기덕 감독은 다양한 접근방법을 가지고 끊임없이 실험한다. 그래서 장래가 기대되는 감독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에두아르도 안틴은 같은 자리에서 내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독립영화제 행사에 김기덕 감독의 회고전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기덕 감독은 이날 “공식시사회장에서의 박수소리가 <섬> 때와는 다르게 들렸다”면서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렸던 <섬>과 달리 이번에는 대다수 관객이 한국의 역사적 상처에 공감하며 박수를 보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공식행사가 이어지던 이날 내내 ‘월드컵 2002’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는데 이와 관련해 “월드컵을 홍보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글자가 제일 큰 티셔츠를 샀다”고 말했다.

베니스=임범 기자/ 한겨레 문화부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