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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전쟁과도 같은 영화제 만들기

올해 로카르노영화제의 실패로 본 영화제 기획의 어려움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포스터

그보다 더 좋은 사람에게 그런 일은 일어날 수도 없었다. 프레드릭 메르가 로카르노국제영화제(8월2∼12일) 위원장을 처음 맡은 올해, 완전 사고투성이가 된 것을 보면 요즘 성공적인 영화제를 개최하기 위해선 좋은 성격과 영화광의 영화에 대한 이해력 이외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업계에서 최고 수준의 인맥도 필요하며, 자기 영화제를 최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광적인 추진력 그리고 체력이 남아돌아야 한다.

마흔네살의 메르는 지난 20년 동안 다양한 직책으로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일해왔다. 지난해에 이탈리아인 문화기자 출신 이렌느 비냘디의 수석프로그래머 직을 넘겨받을 것을 제안받고 놀랐다고 한다. 14년 동안 이탈리아인들이 주도해왔던 이 영화제에, 스위스인인 그는 지방정부가 이 자리에 원했던 요건에 맞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정치적으로 메르는 좋은 소식이 됐다. 페스티벌 구조를 긴축해서 강화하고 (비디오 경쟁부문과 비냘디의 학문적 살롱 형식의 혁신들을 폐지하면서) 피아차 그란데(이 호반도시의 주요 광장)에서 저녁 상영회를 개최할 때의 화려함을 다시 살려내자는 그의 발상은 탁월한 센스를 보여주는 듯 보였다.

실제로 올해 로카르노는 영화 편수에서는 의미가 있을 정도로 더 긴축되진 않았다. 지난해처럼 한 가지 주제에 대한 광범위한 회고전도 없었고, 핀란드의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와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10편이 추가로 상영되었을 뿐이다(그렇게 독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감독치고 놀랍게도 틀에 박힌 라인업을 선보였다).

그러나 영화제 시작부터 엉망이 되지 않았던 것은 유일하게 날씨뿐이었다. 피아차 그란데 상영작 중 단 한편도 비가 내려 취소되는 일은 없었다. 스위스 산맥에서 평상시의 푹푹 찌고 습한 날씨는 시시때때로 바뀌게 마련인데 이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그게 좋은 소식이었고, 나쁜 소식은 첫날밤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메르와 마르코 솔라리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제외하고 개막작 <마이애미 바이스>를 대표해서 피아차 그란데에 온 이는 없었다. 특히 감독인 마이클 만도 불참했는데, 겨우 국경 넘어 이탈리아에 있었음에도 직접 오는 대신 짧은 비디오 메시지를 보내기만 했다.

메르의 주요 심사위원 중 한명인 프랑스 여배우 에마뉘엘 데보는 이미 “개인적인 사유”로 심사위원단에서 빠졌고, 일주일 뒤 또 다른 심사위원인 오스트리아 감독 바버라 알버트가 경쟁작 중 한편의 시나리오 작업에 동참했다는 사실이 지역신문에 ‘폭로’되어 사임했다. 그러는 동안 언론은 기자회견 및 시사 일정 변화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고, 솔라리는 내년 60회 기념을 격에 맞게 축하할 만한 충분한 돈이 없다고 인터뷰를 하고 다녔으며, 스위스 신문들은 영화제의 두 경쟁부문이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보도하고 있었고, 메르는 목소리가 쉬어가고 있었다.

그러고나서 폐막식 하루 전날에 러시아 감독 알렉산더 소쿠로프에게 명예표범상을 수상하면서 메르는 8천명이 있는 피아차 그란데의 무대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날 저녁 칸, 베를린, 베니스영화제의 수장들과 지역의 유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벌어진 소쿠로프 만찬에 메르는 나타나지 않았다.

메르는 이제 괜찮아졌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다가오는 몇주 동안 생각할 것이 많을 것이다. 실수들 중 여러 가지는 단순히 경험미숙에서 온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개막작에 딸려올 인사를 먼저 확인하지 않고 작품을 확정한 것, 주요 경쟁부문에 들어갈 좋은 영화가 충분치 않은데 두 번째 경쟁부문을 만든 것, 기존의 언론관례를 불필요하게 변경한 것, 그리고 한해에 너무 많은 신입들을 고용한 것과 같은 일들 말이다.

그는 여전히 사람들로부터 호의를 사고 있지만, 그건 한해 정도만 더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에 영화제를 개최한다는 것은 평화를 만드는 것보다 전쟁을 하는 것에 더 가깝다. 그렇기에 좋은 사람이라고 반드시 계속 버틸 수 있는 게 아니다.

번역 조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