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영화음악가 5인이 털어놓는 한국 영화음악의 오늘과 내일
정리 문석 사진 손홍주(사진팀 선임기자) 2006-08-24

8월9일부터 14일까지 청풍명월의 고장에서 열린 제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영화와 음악의 황홀한 만남을 지향하는 행사였다. 특히 이번 영화제는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한국의 영화음악가들이 함께했다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미를 가졌다. 집행위원장인 조성우 음악감독을 비롯해 조영욱, 이동준, 한재권, 김준석 등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영화음악가들은 청풍호반에 차려진 포장마차에서 오랜만의 회동을 기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한국 영화음악계의 현실을 토로했다. 이들은 영화음악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쏟고 있는 한국 영화계를 안주로 삼아 청풍호수처럼 맑은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이들의 수다가 한국 영화음악, 나아가 한국 영화계의 큰 발전을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었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성우: 다들 제천에 와줘서 고마워. 이렇게 모이니까 좋네. 이동준씨가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영화음악 일에선 가장 선배고 그 다음이 영욱이와 나고, 그리고 재권이가 있고 준석이가 막내네. 그런데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어떤 것 같아.

조영욱: 영화음악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더욱 의미있는 행사 같아.

조성우: 이번에 힘을 기울인 것으로 영화음악아카데미가 있고, 영화음악상, 영화음악가 회고전, 영화음악 포럼도 신경을 많이 썼어. 니노 로타 회고전은 조영욱 머리에서 나온 건데 굉장히 잘한 것 같고, 영화음악상을 신병하 선생님에게 드리는 것은 원일의 발상인데 좋았던 것 같아.

조영욱: 아카데미는 어떻게 하게 된 거야.

조성우: 영화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음악학도가 굉장히 많아졌잖아. 영화음악을 하고 싶다는 연락도 많이 오고.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커리큘럼에는 영화음악을 특성화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거야. 현장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그래서 영화음악을 하고자 하는 음악도들을 끌어모아서 정보도 주고, 길을 열어주자, 그런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잘했지?

조영욱: 음, 잘했어.

조성우: 80명을 받았는데, 정말 많이 응모를 해서 선발하느라 힘들었어. 해보니까 학생들이 이런 것을 기다려왔는지 굉장히 열정적이더라고. 그리고 오늘 포럼들 안 왔지? 저작권이 주제였는데 아주 좋았어. 일본 쇼치쿠음악출판사 대표가 와서 일본의 선진적 시스템에 대해서 아주 적나라하게 얘기해줬지.

용역계약서가 아니라 저작권사용승인계약서가 필요하다

이동준: 제가 패널로 나갔는데, 오죽하면 제 첫마디가 “일본의 시스템이 너무 부럽습니다”였겠어요. 다들 들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자극도 됐을 것 같고. 오늘 가장 좋았던 말이 ‘저작권은 인격에 대한 권리’라는 것이었어요. 그런 맥락에서 일본음악저작권협회(JASRAC)가 확실히 일을 하고 있고.

조성우

조성우: 원래 내가 올해 일본영화의 음악을 담당하려고 했었거든. <출구 없는 바다>라는 작품인데 계약서까지 다 주고받았다고. 그런데 그 영화가 가미카제 나오는 전쟁영화야. 그것 했다가는 돌 맞을까봐 취소했거든. (웃음) 하여간 그 영화가 순제작비 50억원 정도 되는데 계약금이 얼마 안 돼. 한국에서 50억원짜리 영화면 보통 계약금과 음악료가…. 영욱이 너는 얼마 받니?

조영욱: 아, 왜 자꾸 나를 끄집어내. (웃음)

조성우: 그것 합친 게 5천만원이야. 한국보다 훨씬 적지. 물론 제작비는 다 대주는데 계약금은 5천만원이야. 일본에서는 굉장히 많이 주는 거래. 그런데 그 계약서 양식이 뭐냐면 저작권사용승인계약서야. 한국처럼 음악을 언제까지 만들어준다는 용역계약서가 아니라 내가 만든 음악 또는 내가 사용한 음악에 대한 저작권을 이 영화에서 사용승인을 해주고 거기에 대한 인세를 몇 퍼센트 받는다 이런 거거든. 만약에 음악이 잘 만들어져서 DVD, O.S.T가 팔리면 그대로 다 수익이 나오는 거지.

조영욱: 유럽이나 미국 같은 데도 영화가 상영할 때마다 저작권료가 지불돼. 한국은 그게 안 돼 있거든. 한번에 해주면 끝이거든. 외국은 DVD도 판매 수량에 따라 장당 얼마씩 저작권료를 지불하게 돼 있다고.

이동준: 일본에선 DVD를 내도 저작권료를 주는데, 우리는 못 받아요. 한국 수출사가 일본에 팔 때 모든 권리를 한꺼번에 넘기는 ‘올 라이츠 클리어’(All Rights Clear) 계약을 한다고요.

조성우: 일본에서 <외출> DVD가 엄청 팔렸잖아. 나는 저작권료를 못 받았어. 내가 “변호사를 통해서 저작권에 관한 문제는 국제법에 따르기로 한다”라는 규정을 만들어서 한국 수출사 담당자에게 줬다고. 이 내용으로 계약하라고. 그쪽에서는 알았다고 했는데 결국 일본 수입사에서 ‘올 라이츠 클리어’로 사야 한다고 주장하니까 결국 그렇게 팔아버렸어.

조영욱: 문제는 한국 제작자에게 그런 인식이 없는 거야.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돈을 주고 용역을 받는 것인데, 돈을 줬는데 왜 또 돈을 달라고 하냐 그러는 거라고.

음악도 영화제작의 한 과정이다

조성우: 저작권만이 문제가 아니지.

한재권: 가장 큰 문제가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나, PD가 영화음악의 작업공정을 모른다는 점이에요. 내가 봤을 때는 10% 정도만이 약간 이해하는 정도죠. 나머지는 막연하거든요. 작곡가들이 언제 곡을 쓰는지도 몰라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영화 몇번 보세요’라고 물어보기까지 해요. (일동 웃음) 그러니까 촬영이 끝나고 마지막에 급히 막 작곡가를 찾아서 하는 일이 벌어지죠. 그런 경우 때문에 음악만큼은 들쭉날쭉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조영욱

조영욱: 영화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영화의 부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촬영하고, 편집하는 것은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음악은 별개의 파트로 생각하는 것 같아. 신경 안 쓰는 거지.

김준석: 내가 가장 안 좋게 생각하는 게 제작기간이에요. 촬영이 끝난 다음에 후반작업 기간이 얼마다, 이렇게 잡혀 있으면 편집은 며칠, 음악작업은 며칠, 이렇게 보장된 다음에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고 나면 촬영 종료 날짜부터 밀리잖아요.

이동준: 그래도 절대 안 바뀌는 것은 개봉일이잖아. (일동 웃음)

김준석: 개봉일이 뒤로 미뤄지기는커녕 한달 당겨진 적도 있었어요. <말죽거리 잔혹사>는 한달이 당겨져서 최종 편집본을 받고 2주 만에 끝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전에 미리 작곡해놓은 음악 갖고 맞추느라 바쁘게 끝나버렸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디테일을 잡는 게 상당히 어려웠던 것 같아요.

조영욱: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미리미리 준비를 해놓는데도 결국엔 시간이 모자라. 역시 본격적인 작업은 편집이 끝난 뒤에야 할 수 있겠더라고. 신별로 맞추고, 액션 맞추고 해야 하니까.

한재권: 저는 2015년이 되고, 2020년이 돼도 음악감독에게는 충분한 작업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한국 영화산업 발전과정이 있는데다가, 또 우리나라 사람 멘털리티가 있잖아요. 결국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나 스스로 생각해야 돼요. 저는 촬영장에도 자주 가고, 현장 편집본을 어떻게든 뺏어와요. 감독이 안 주려고 하면 PD 통해서 받고, PD도 안 주려고 하면 현장 편집기사라도 구워삶아서 받아요. 그 거친 현장 편집본이라도 보면서 작업을 하는 게 그나마 시간을 버는 방법인 것 같아요. 저는 처음 입봉했을 때 1주일 만에 작업한 적도 있어요.

이동준: 원래 할리우드에서는 최종 편집본 나오고 12주를 주는 게 룰이잖아. 그런데 그건 옛날이야기고, 최근에는 CG 분량 때문에 어떤 특별한 큐는 감독이 편집할 수 있게끔 곡을 써달라고 한대. 어디서 인터뷰를 봤는데 그 작곡가는 처음에 그림을 안 보고 2곡을 썼대. 그런데 또 어떤 작곡가는 계약할 때 최종 편집본이 나오고 12주가 보장 안 되면 일하지 않는다고 한대.

조성우: 음악을 빨리 만드는 데 익숙해지니까 시간을 많이 주면 겁나. (일동 웃음)

이동준: 하긴 시간을 많이 준다고 해서…. 작곡가 천성이 게으르잖아요. (웃음) 그런데 한번은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나서 내 영혼을 모두 팔아서 긴 시간 작업하고 싶어요. 과연 그런 기회가 올까.

한재권: 상업영화에서는 그런 기회가 안 오겠지. 그리스에 가서 테오 앙겔로풀로스 영화 하면 되겠네요. 음악작업 기간 6개월 주고 막 그럴 거야. 엘레니 카라인드루가 <율리시즈의 시선> 음악작업을 7개월 했대요. 앙겔로풀로스가 그냥 기다려주고. 전화도 한번 안 하고 그냥 기다려줬대. 그래서 카라인드루가 음악 다 됐다고 연락이 왔을 때 칸영화제에 출품하겠다고 전화를 걸었대요.

조영욱: 예술영화니까. 그런 게 불가능하다는 게 상업영화의 비애야.

국적이 아닌 실력이 중요하다

조성우: 요새 일본 작곡가가 한국에서 많이 작업하잖아. 나는 그게 긍정적일 수는 있다는 생각이야. 영화 만드는 제작자나 연출가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처음 할 때만 해도 영화음악가가 만드는 음악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인식이 있었어. 거기에 돈을 많이 투자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고. 그런데 요새 보면 히사이시 조, 가와이 겐지, 이와시로 다로를 잡아온다고. 그만큼 영화에서 훌륭한 음악을 필요로 한다는 얘기잖아.

이동준

조영욱: 그건 제작사의 변화라기보다는 감독들의 지위가 향상됨으로 인해 감독들이 그런 것을 요구해서 그러는 것 같아.

이동준: 우리나라에선 조개구이집이 잘되면 전부 조개구이를 하잖아요. 굉장히 트렌드에 열광하는 속성이 있다고요. 과연 이 사람이 정말 필요해서, 이 사람의 음악을 알고 접촉했냐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거죠. 그냥 남들이 쓴다니까 쓰는 건 아닐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점도 있어요. 우리가 영화음악을 하면 화젯거리가 전혀 안 된다고요. 그런데 한국 가수나 일본 음악가가 음악을 하면 홍보 측면에서 재미가 있겠죠.

한재권: 나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BMW나 벤츠가 들어왔을 때는 현대자동차가 반발을 안 했대요. 그런데 일본의 렉서스가 들어오니까 현대차 품질이 굉장히 좋아졌다는 거야. 일본 자동차가 들어와서 잘 팔리고 하니까 우리나라 업계가 긴장하고 분발하고 열심히 해서 굉장히 좋아졌다는 거죠.

조영욱: 그런데 그 말은 일본 작곡가들의 실력이 더 좋다는 얘기야?

한재권: 아뇨. 일본 차와 한국 차가 그렇게 절대적으로 품질 차가 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일본 작곡가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음악을 또 잘했어요. 처음에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이 히사이시 조와 작업을 한다고 했을 때 놀랐어요. 연극 <웰컴 투 동막골>도 내가 했고, 박광현 감독의 <내 나이키>도 내가 음악을 맡았었어요. 그런데 내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발표했을 때 굉장히 놀랐어요. 그런데 막상 영화가 완성됐을 때 들어보니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성우: 히사이시 조가 그러더라고. 박광현 감독이 편지를 썼다고.

한재권: 박광현 감독이 아니고, 이은하 PD가 썼지.

조성우: 하여간 너무너무 같이 하고 싶다는 편지를 받았는데, 거기에 감동을 해서 참여하게 됐다는 거야. 아름답잖아.

한재권: 나는 <국경의 남쪽>에서 캣 스티븐스의 <The First Cut Is the Deepest>라는 노래를 썼어요. 캣 스티븐스가 저작권 안 풀어주기로 유명해요. 한번 알아봤더니 당연히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어. 그래서 영문 시놉시스와 함께 구구절절한 사연을 쓰고 마지막에 ‘당신의 노래가 이 영화에 나옴으로써 남북통일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어요. 그로부터 1주일 뒤에 써도 된다는 답이 왔어요.

조영욱: 내가 문장력이 안 되나봐. (웃음) <클래식>에서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를 사용하려고 했는데, 아트 가펑클은 허락을 했어, 그런데 폴 사이먼이 뒤튼 거야. 그런데 그 노래들이 <러브 인 맨하탄>이란 형편없는 영화에 나오더라고. (일동 웃음)

<은행나무 침대>와 <접속>은 영화음악을 전문화·산업화한 작품

한재권: 그러고보니 다 파트너가 되는 감독님이 있네요. 저는 장진 감독, 성우 형은 허진호, 이명세 감독님, 영욱이 형은 박찬욱 감독님, 그리고 김준석씨는 유하 감독님과 많이 했네요.

조성우: 허진호와 <행복> 작업을 하는데 이젠 나한테 질린 모양이야. 감독이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잖아. 그러면서 조영욱이나 동준씨 이야기를 하면서 연락처 가르쳐달라더라고. 그래서 안 된다고 했지. (일동 웃음) 그런데 나도 파트너를 한번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 일단 당신(조영욱에게)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내게 넘겨. 그리고 나도 한번 블록버스터를 해보고 싶은데 동준씨는 강제규 감독 것 나한테 넘겨. (웃음)

한재권

이동준: 저는 모인 김에 이런 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음악감독이라는 호칭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음악감독이란 표현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정말 이상했어요. 너무 포괄적이고 해서.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음악감독이라는 말은 영화음악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성우: 그런데 슈퍼바이저, 프로듀서, 작곡가, 이렇게 작품에 따라 호칭이 달라질 수 있는 거잖아. 작곡이 중요한 경우가 있는 거고, 어떤 경우에는 선곡이 중요할 수도 있고. 음악감독이라는 말은 다 뭉뚱그려서 쓰는 것인데, 특히 오리지널 스코어 작곡가를 음악감독이라고 한다는 것은 이상하잖아.

한재권: 저도 음악감독이란 표현이 꺼림칙해요. 현장에 가면 감독님들이 워낙 많아요. 그러다보니 마치 업무화되는, 작업화되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예술가라는 생각을 갖고 작업하는 사람들인데, 감독이라고 규정하면 권위적인 느낌이 들어요.

이동준: 아주 예전에는 작곡가라고 했죠. 신병하 선생님도 그냥 작곡가였고. 일본에도 음악감독 호칭 없어요. 분명 예전보다는 기분 좋은 호칭인데 세분화돼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조성우: 그러고보면 동준씨가 음악감독 1세대인 셈이야.

이동준: 우리가 1세대라고 하는 것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그런 거지, 제대로 따져보면 신병하 선생님 세대가 1세대 아닐까요?

조성우: 제천음악상을 신병하 선생님에게 드렸는데, 그분은 영화음악 작곡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았던 독보적인 경우라고 생각해. 정말로 우주인이야, 우주인. 영화음악에 대한 인식이 형편없는 와중에도 오리지널 스코어를 80여편 작곡했다고.

이동준: 최창권 선생님도 계시잖아요. 김성태 선생님도 있고.

조성우: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쓰는 의미에서 스코어 작곡가라는 의미로 보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1세대가 될 것 같아.

조영욱: 나는 그런 점에서 이동준씨를 높이 쳐요. 한국 영화음악이란에 관심을 갖게 한 포인트는 이동준씨의 <은행나무 침대>라고 봐. 그전까지는 영화 자체가 너무 침체돼 있었잖아.

조성우: 그리고 영화음악이 산업이 될 수 있다고 보여준 건 조영욱의 <접속>인 것 같아. O.S.T 같은 부가상품의 덩치가 크구나 하는 것을 알려줬지.

김준석: 죄송한 말씀인데, <은행나무 침대>를 보고서 “저거 음악한 애 누구야” 그랬거든요. (웃음) 그게 한국 영화음악을 들을 만한 것으로 만든 최초가 아닌가 생각이 들거든요. 그 뒤로 한국 영화음악이 전문화되지 않았나 싶어요. 아까 얘기로 돌아가면, 예전에 조성우 감독님 모시고 현장에 가면 ‘조성우씨’라고 불렀거든요. 그럴 때는 ‘이 사람들이 음악감독을 영화스탭으로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굉장히 속상했어요. 그러니까 이분들이 전문화된 1세대가 아닌가 싶어요.

조성우: 맞는 말 같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영화음악을 전문화하고, 산업화한 세대인 것 같아. <은행나무 침대> <접속> 이렇게 하면서…. 아, 그리고 <8월의 크리스마스>도 좀 껴줘. (웃음)

음악에도 저작권이 있다는 것을 알린 첫 케이스, <비트>

이동준: 사실 저는 한국영화가 물이 바뀌는 중간에 일을 시작해서 정말 별 경험을 다 해봤어요. 나름대로 서라운드를 가져갔더니만 음악이 안 나온다고 해서 보니까 음악이 들어가면 안 되는 가운데 트랙에 음악이 모두 들어가 있기도 했고, 믹싱하다가 테이프가 씹히기도 하고 그게 개봉관에서 나오기도 했고…. 나름대로 굉장한 꿈을 갖고 시작했는데 완전 충격이었죠. 그래도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면서 여러 문제의식이 바뀌어나갔던 것 같아요. <은행나무 침대> 중에 들리지도 않는 하드코어 음악이 하나 있었는데, 강제규 감독님이 먼저 ‘이 곡 쓴 사람에게 허락받아야 하지 않아요’라고 묻더라고요. 1995년, 96년에는 한국영화와 영화음악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충만한 젊은 영화인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김준석

조영욱: 예전만 해도 선곡은 음악가와는 별개의 문제였잖아.

조성우: <비트> 같은 경우, 애초부터 스코어가 필요없는 영화였어요. 선곡이 필요한 영화였거든. 그런데 그런 개념이 없으니까 작곡가를 음악감독으로 한 거야. 결국 선곡으로 확정하면서 나는 아웃된 거지.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그 당시만 해도 외국 음악을 갖다 써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거야. <비트>는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음악 저작권 문제로 고발된 영화야.

이동준: 비틀스의 <렛 잇 비>만 안 썼어도 됐을 텐데.

조성우: 마릴린 맨슨 노래도 있고 엄청나. 아까 포럼에서도 얘기가 나왔는데 <비트>는 아직도 해외 수출이 한건도 없는 영화야. 저작권 문제가 안 풀렸기 때문에. 벌금 내고 비디오로 낼 때는 음악이 다 바뀌었고. 그것을 원래대로 저작권을 풀려고 하면 10억원 정도 내야 할 거야. 그래도 한국 영화음악 역사에서는 의미있는 사건이지. <비트>는 남의 음악을 함부러 써선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첫 번째 케이스라고.

조영욱: 비틀스는 건드리는 게 아니야.

이동준: 비틀스의 원곡을 영화 속에 사용한 게 한번도 없어요.

한재권: 내가 알기로는 역사상 O.S.T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든 영화가 <아이 엠 샘>이야. 비틀스 노래를 다 썼으니까. 물론 비틀스가 부른 원본이 아니라 다 새로 녹음했지만, 거기에만도 엄청난 돈이 들었다는 거야.

전진수: 말 나온 김에 내년에는 비틀스 회고전을 기획해볼까요?

한재권: 그거 말 되네. <헬프!> <어 하드 데이스 나이트> <옐로 서브마린> 같은 영화도 있고.

전진수: <아이 엠 샘>처럼 리메이크한 노래가 들어 있는 영화도 틀고.

한재권: 감독으로는 앨런 파커 회고전을 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조성우: 아이디어가 막 쏟아지는구나. 내년 영화제도 재미있게 같이 만들어보자고.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