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이창
[이창] 나약함을 견디는 법
권리(소설가) 2006-09-08

100만년 만에 치과에 갔다. ‘파로돈탁스’까진 아니더라도 이에 처방을 하고 싶단 생각은 애초부터 있었지만, ‘치과의사는 도둑놈’ 설 때문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와중 새로 생긴 치과가 있어 충동적으로 방문해보았다. 충동적이라 함은 양치질을 하지 않았단 뜻이었다. 당연히 재앙이 일어났다. 요새 의사 자격시험을 얼굴로 뽑는다는 얘기는 못 들어본 것 같은데…? 20대 후반의 그 의사는 확실히 도둑놈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도둑.

의사는 번쩍번쩍 무섭게 빛나는 치료 기구들을 내 입에 갖다댈 때마다 <X파일>의 멀더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조금 시리실 겁니다.”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앞에 있는 고화질 모니터에 비쳐진 내 치아 상태 때문이었다. ‘타도! 치과 의료 기술 및 과학 문명!’을 속으로 외치고 있는 사이, 위생사와 간호사를 포함해 서너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내 치아를 마치 키보드 청소하는 사람처럼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DEL 키도 ESC 키도 다 빠지고 썩어버린 내 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Back space 키를 마구 누르고 싶어졌다. 내가 입을 크게 못 벌리자, 닥터 멀더는 “요새 20대 여성분들의 턱관절이 좀 약하세요” 하면서 날 두둔해주었다. 스컬리 같은 목소리로 몇 마디 응수해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모럴 해저드 수준의 내 치아 상태를 두눈 뜨고 똑똑히 봐야 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어딘가에 ‘치아의 신’이 계신다면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신이시여, 왜 십계명에는 ‘하루 세번 양치질’이란 말은 없나이까?

148만원. 대략 난감한 진료비 앞에서 난 80대 노인의 잇몸처럼 시리디 시린 마음을 달래야 했다. 하지만 한번에 뽕을 뽑히기엔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 나는 치과 의사가 다른 사람을 치료하느라 열중하는 사이, 간호사와 가격 흥정 끝에 8만원을 깎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그야말로 ‘분노의 양치질’을 했다. 과다출혈을 했단 사실보다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입을 벌렸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의사도 알았을 것이다. 환자가 자신의 입을 크게 벌릴 수 없는 데에는 단지 치아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신감 결여 때문일 수도 있단 사실을. 솔직히 말해 내가 부끄러웠던 건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탓이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쩌면 신나게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도 ‘유독 나만 괴롭다고 느껴질 때’, ‘행복하게 사는 법’ 따위의 말에 쉽게 낚여버리는 사람일지 모른다. 나 역시 그렇다. 인생의 기복을 몇번 체험하지 못한 주제에 까불다가 덩치 큰 놈한테 한방을 맞으면 쉽게 좌절하고 쉽게 약해진다. 부끄러운 모습을 나 자신에게 들켜버리기 때문이다. 실망, 분노 혹은 극단적 체념 상태에 빠지는 과정을 몇 차례 경험하면서 나는 나만의 극복 방법을 터득했다. 그것은 ‘일시적 중독’이다. 나는 슬럼프에 빠지면 <바보는 늘 결심만 한다> <바보들은 운이 와도 잡을 줄을 모른다> 등 이른바 ‘바보 서적’들을 스탠드 높이만큼 쌓아두고 읽기 시작한다. 그것은 실제로 내가 바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인생 지침서들은 늘 나에게 ‘괜찮아, 할 수 있어, 인간은 누구나 그래’라고 용기를 북돋워준다. 그런 조언을 들으면 마치 인생을 다 겪은 80대 노인과 아주 친밀하고 따뜻한 대화를 나눈 것 같은 느낌에 무척 행복해진다. 물론 이런 방법은 나처럼 활자 중독 상태인 사람에게 어울릴 것이다. 어떤 이들은 같은 책을 읽어도 ‘이딴 뻔한 말들에 기대느니 변기에 키스를 하겠어!’라고 말하며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들도 죽어라 쇼핑을 하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또는 잡지에서 ‘충격 고백, 이혼한 XX씨 그동안 말 못한 사정 독점 인터뷰’ 등을 읽으며 자기를 위로해줄 대상을 찾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하는 법’ 따위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이런 제목에 현혹되어 이 글을 읽었을 당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요컨대 사람들은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아주 바보스러울 만큼 나약하단 사실은 잘 모르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힘든 일이 닥치면 팔자소관 탓을 하면서 인생의 저쪽으로 멀리뛰기를 시도하려 한다. 하지만 무리해서 멀리 뛴 순간 당신은 뒤로 자빠질 것이다. 자신이 환자인 동시에 의사여야 한다는 것은 분명 인생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참된 의사는 환자의 치부를 흉보지 않고 부끄러운 모습을 기꺼이 보여준 환자에게 최선을 다한다. 당신은 환자로 끝나고 싶은가, 아니면 환자의 마음을 훔치는 의적(醫賊)이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