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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된장녀’와 탈식민주의
정희진(대학 강사) 2006-09-08

스타벅스 본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8월 현재, 스타벅스는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37개국에서 1만178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단한 글로벌 기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수익 배분은 그다지 전 지구적이지 않다. 개인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형태의 가맹점이 없는 스타벅스는 본사가 모든 매장을 직접 운영한다. 따라서 순익도 미국 본사가 독점한다. 내 주변에는 스타벅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원두를 볶은 지 오래된 듯 커피는 맛이 없는데도, 커피 한잔 값이 웬만한 한끼니 식사 가격을 상회한다. 게다가 스타벅스 회장 하워드 슐츠는 극우 시오니스트로 널리 알려진 인물. 서방 세계의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 증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 ‘Innovative Minds’의 이스라엘 기업 불매 운동에 따르면(www.inminds.co.uk/boycott-starbucks.html) 스타벅스 회장은 이스라엘과 미 군부의 핵심 후원자다. 1998년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이스라엘 건국 50주년 공로상”을 받은 바 있는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팔레스타인 사람을 테러리스트라 비난하고 이스라엘의 단결을 주장한다. 평화학 전문가들은 스타벅스 수익금의 일부가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에 사용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스타벅스가 한국사회에서는 왜 사치스러운 여자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된장녀’는, 자신은 능력이 없지만 돈 많은 남자나 부모에 기대어 외국 명품과 고급문화를 지향하는 허영심 많은 여성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신여성’은 있지만 ‘신남성’이라는 말은 없는 것처럼, 언제나 ‘OO남’보다 ‘OO녀’가 압도적으로 많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누군가를 호명하거나 현실을 정의하는 언설 주체는 남성이기 때문이다. ‘떨녀’, ‘개똥녀’, ‘뚱녀’, ‘엘프녀’, ‘치우녀’, ‘똥습녀’, ‘5분 대기녀’, ‘된장녀’ 등등 모두 이러한 권력 구조의 산물이다. ‘된장녀’의 유래는,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는 여자들’이라는 설, 욕설 ‘젠장녀’가 ‘된장녀’로 변화했다는 설, 서양 문화에 열광해봤자 ‘어차피 너는 된장’이라는 등 분분하다. 하지만 위 세 가지 해석 모두 ‘서구적 소비문화’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는 한국 남성의 자기 문화에 대한 비하와 자조가 성별화된 담론으로 여성에게 투사(投射)된 것이다. 스타벅스를 애용하는 여성은 ‘된장녀’가 아니라 ‘스타벅스녀’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심판대로라면 말이다.

사실 ‘된장녀’는 그리 새로운 담론이 아니다. “여자들은 서구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한국 남성의 불안과 비난은 우리 현대사의 주된 서사였다. 1967년, 시인 신동엽은 대표작 <금강>에서 “딸라의 냄새란 좋은 것, 미나리처럼 쭉쭉 뻗은 코리아산 여대생들 라이프지 끼고 그 근처 와 온종일 빙빙 돌지”라고 썼다. 탈식민주의 여성학자 김은실은, 젠더(성차별)는 한국 근대화 기획의 강력한 서구 지향과 자기 정체성 찾기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는 출구였다고 지적한다. 여성은 한국 남성의 근대화(서구화) 열망과 민족주의 사이의 갈등과 긴장을 매개하는 사회적 기호였다. ‘스타벅스’와 ‘된장’-‘고추장’을 대립항으로 설정하고, 즉, 서구와 우리를 배타적으로 이분화하여 이를 성별로 재현하는 것이 대표적인 방식이다. 여자들은 서양을 추종하지만, 나(남성)는 ‘고추장남’으로서 우리 고유의 것을 지키고 민족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적으로 고추장도 먹고 커피도 마신다. 서구와 우리는 그렇게 간단하게 분리되는 투명한 존재가 아니다. 내 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다. 주체와 타자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서구’와 ‘우리’의 이분법은 관념론일 뿐만 아니라, “아무리 뉴요커 흉내를 내봤자 결국 된장녀”라는 말은 정체성에 대한 고정된 이해이며, 무엇보다 ‘된장’을 폄하하고 있다. 커피에 비해 된장은 냄새나는 반문명의 상징이라도 된단 말인가? 민족주의와 서구 숭배는 서구 근대성의 쌍생아다. ‘된장녀’를 비난하는 한국 남성 문화는 서구의 비서구 사회에 대한 시선을 스스로 내면화한 것으로, 서구 우월주의와 공모하고 있다.

만일 스타벅스가 서구 문화의 첨병이며 허영과 사치의 주범이라면(커피 가격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스타벅스 불매 운동을 벌여야 하는 것 아닌가? 스타벅스에 대한 반감이 왜 스타벅스를 향하지 않고, 여성과 자기 문화에 대한 비하로 연결될까. 혹시 지금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는 보수 인사들처럼, 한국의 남성 문화는 ‘민족 범주’를 우선시하기보다는 강자를 선망하고 그들 앞에 비굴하면서 그 분풀이를 ‘만만한 우리 여성’들에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