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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이들의 사연, 사랑스럽게 감싸요,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김현정 2006-09-20

지난해에 초연된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세상으로부터 튕겨져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연인에게 혹은 운명에 버림받은 이들은 초라한 병실에서 시간을 잊은 채 살아가지만, 가슴에 묻어둔 사연은 지난밤 꿈의 잔영처럼 남아 그들 곁을 맴돈다. 그렇고 그런, 유행가 같은 사연들. 그러나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밀실추리 형식을 도입하고 현재와 과거를 병렬로 배치해, 눈물과 한숨의 사연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가톨릭 재단의 무료병원장으로 부임한 베드로 신부는 7년째 602호에 입원해 있는 하반신마비 환자 최병호를 TV다큐멘터리에 내보내 기부금을 끌어오고자 한다. 그런데 폭설로 길도 막힌 방송 전날, 최병호가 사라진다. 베드로 신부는 최병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정숙자 환자,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이길례 환자, 602호에 배정된 순진하고 신앙심 깊은 자원봉사자 김정연, 간밤에 외출했던 흔적이 있는 닥터 리 등을 면담해 최병호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한다. 베드로 신부는 김정연과 같은 날 병원에 도착한 자원봉사자 소녀 한명도 최병호와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이 사람들은 신부를 붙들고 자신의 과거사를 늘어놓는다.

노래와 극이 다정하게 어울리는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알코올 중독자와 행려병자들을 사랑스러워하는 뮤지컬이다. 꽃무늬 블라우스와 분홍색 치마를 입고 수줍은 연정을 속삭였던 소녀 시절의 이길례, 거친 세파 속에서도 사랑을 믿었던 쇼걸 시절의 정숙자,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에 스스로를 유폐한 최병호. 인간의 이기적인 면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소중하고 따뜻한 마음을 눈여겨봐주는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단순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선율로 무대를 채우면서, 버려진 이들을 파스텔처럼 아련한 기운으로 감싸안는다. 꿈과 희망이 모두 소진됐어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을. 좁은 무대의 벽에 구멍을 내어 무대장치와 소품을 들이고 내는 가난한 발상,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최병호 실종사건을 해결하는 결말이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