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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미식축구, 한 게임 더?
2001-09-12

<애니 기븐 선데이>

Any Given Sunday 1999년, 감독 올리버 스톤 자막 영어, 한국어, 중국어, 타이어 화면포맷 2.35:1 지역코드 3

지지난해 겨울,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기 위해 뉴욕에 갔다. 세기말을 가장 멋진 곳에서 놀아보자라는 생각도 있었고, 새 밀레니엄 첫날부터 아이맥스극장에서 상영된 <환타지아 2000>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렇게 계획했던 여러 가지 일정을 다 끝내고나서는, 며칠 동안 정처없는 발걸음을 즐기면서 뉴욕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애니 기븐 선데이>를 상영하고 있던 작은 극장을 발견한 곳은, 전철에서 무작정 내려 거닐던 퀸지의 한 동네에서였다. 뜻밖의 행운이라 생각하면서 덜컥 표를 사서 들어가기는 했는데, 문제는 전체적으로 허름한 극장 안을 스페니시와 흑인 관객이 상당수 채우고 있어 약간은 낯선 분위기였다는 것. 하지만 극장 규모에 비해 기형적으로 보일 만큼 커다란 화면과 주위 관객의 열광적인 분위기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나는 <애니 기븐 선데이>가 선사하는 격렬한 미식축구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미국에 있는 동안 놓쳤던 영화들 중 DVD로 출시된 것을 챙겨보는 동안, 이상하게도 <애니 기븐 선데이>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감독의 자자한 명성 때문인지 기대 이하였다는 평을 접할 때마다 ‘그건 그랬어’라고 수긍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느낌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선선해진 가을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쌓인 게 많아서인지 속이 후련해지는 DVD 한편을 봐야겠다고 벼르다가 <애니 기븐 선데이> DVD를 선택했다. 그리곤 아예 작정을 하고 볼륨을 한껏 높인 채 소파에 퍼져 누워 감상을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이번에 본 <애니 기븐 선데이> DVD는 극장에서 본 <애니 기븐 선데이>와는 분명 다른 영화였다. 가장 확실한 변화를 느끼게 하는 부분은 역시 사운드.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했을 때를 되살려보자면, 당시의 사운드는 전체적으로 크고 웅장한 반면 많은 부분에서 대사와 음향들이 서로 뭉개져 있었다.

하지만 DVD에서는 마치 ‘차라락-’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일렬로 고르게 정렬되는 듯이 사운드의 생생함과 강렬함이 동시에 표현되고 있었다. 역동적인 경기장면에서 연출되는 강렬한 효과음, 관객의 함성소리, 그 함성 속에서 주고받는 대사들과 거친 숨소리를 모두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역시 서브우퍼에서 울려나오는 육중한 저음에서부터 센터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인물들의 대사에 이르기까지 인위적인 음의 분리효과가 탁월한 DVD만의 특성이 아주 잘 드러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애니 기븐 선데이> DVD의 경우, 지나치게 사운드의 기복이 심해 사람에 따라 약간의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갖추고 있는 DVD 플레이어의 사운드 성능을 테스트하기에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런 폭발적인 사운드와 함께 마치 두 시간 반 동안 한편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것과 같은 역동적인 화면도 DVD를 통해 증폭되는 부분이다. 뛰어난 화질 위에 감독의 폭발적인 편집스타일이 어우러지는 장면들은 DVD가 아니면 감상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플먼트에 수록되어 있는 LL Cool J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런 생각이 더욱 확고해진다.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그렇게 역동적이고 신나는 경기장면을 다 담아내기에 역시 TV브라운관이 작게만 느껴진다는 점이다.

김소연/ DVD 칼럼니스트 soyoun@hip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