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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의 매력, 책으로 만난다 [2]
이다혜 2006-09-22

범죄수사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기 위한 호기심 풀기

1. 법의학의 중요성이 대중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전 미식축구 영웅이었던 O. J. 심슨이 전처 니콜 브라운 심슨과 그녀의 애인 론 골드먼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받은 이른바 ‘O. J. 심슨 사건’은 미국 경찰 내부에서 범죄 현장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건이다. 이 사건에는 미국 최고의 법의학자로 손꼽히며 실존하는 셜록 홈스라고 칭송받는 헨리 리 박사(케이블TV 폭스채널의 <닥터 리의 사건파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가 참여했는데, 이 사건의 행방을 결정지은 주요한 요소는 경찰이 증거를 조작했다는 변호인의 주장이었다. 실제 벌어진 일은 증거 조작이 아니라 증거 훼손과 방치였는데, 경찰들이 시체의 피를 밟고 한 시체에서 다른 시체로 옮겨다니고 니콜과 골드먼의 시체는 법의관의 검시도 받지 않은 채 길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 사건에서 시체를 치우는 사람 정도의 취급을 받은 법의관은 시체 발견 뒤 10시간이 지나서야 사건에 관한 통고를 받았다. 경찰들은 보호장비없이 집을 돌아다니는 동안 사진조차 제대로 찍지 않았다(<CSI>를 본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이 얼마나 몰상식한 짓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체를 찍은 사진은 많았지만 집 내부를 찍은 사진은 없었다.

2. <별순검>을 보면 조선시대에도 법의학적 수사를 했다. 부검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어떻게 사인을 규명할 수 있었을까? =조선시대 검시의 핵심은 시체의 안색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시체의 구석구석을 살펴 상처를 찾고 색깔을 관찰했다. 시체의 머리부터 검사를 시작, 상처가 있는지, 상처가 새것인지 오래된 것인지를 구분하고 생식기를 포함한 귀나 콧속, 발톱과 같은 부위에 대나무 바늘을 꽂아 살해한 것은 아닌가를 살핀다. 여름철에 신체의 아홉 구멍에서가 아니라 관자놀이 부위나 목 뒤, 겨드랑이나 배에서 먼저 구더기가 나오면 이 부위에 손상을 입은 것이 분명하다. 썩어 문드러진 시체라 해도 구타당하거나 칼로 다친 상처는 매우 깊고 진한 색을 띠기 때문에, 상처가 오래되면 검푸른색으로 변하면서 뼈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구더기도 생기지 않는다. 은비녀를 조각수로 씻은 뒤 시체의 입 안과 목구멍에 집어넣고 종이로 밀봉했다가 얼마 뒤 빼보면 청흑색으로 변해 있는 경우는 독사한 것으로 결정난다. 독을 먹은 지 오래된 경우는 은비녀를 항문에 꽂는다. 이외에도 찹쌀이나 찰수수 등을 사용한 독사 판명 방법이 있는데, 모든 검시도구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3. 총알을 조사해 살인사건에 쓰인 총의 종류를 밝히는 탄도학 이야기가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말하는 강선이란 무엇인가? =범죄에 쓰인 총을 추적하는 탄도학은, 19세기부터 활발한 연구와 성과를 기록해왔다. 19세기 초 이후 대부분 총의 총신 내부에는 강선(鋼線: 강철로 만든 줄)이 있다. 총신 내부에 새겨넣는 나선형의 강선은 총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총알은 총신 내부의 구멍에 밀착한 상태에서 발사되도록 총알을 총신 구멍보다 약간 크게 만드는데, 총신 내부에 파놓은 강선 요철의 볼록한 부분이 총알의 겉면에 독특한 자국을 만든다. 이 강성은 총의 지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탄도학자들은 강선이 몇개인지, 각 강선 사이의 폭이 얼마나 되는지, 강선이 오른쪽으로 도는지 왼쪽으로 도는지를 보고 제조사를 금방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강선의 홈 깊이로 같은 종류의 총이라 해도 사건에 쓰인 총을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다. 이 이론이 최초로 적용된 사건은 1889년이었으니 탄도학이 얼마나 오랫동안 권위를 인정받았는지 알 수 있다.

4. 지문 인식 프로그램을 가동시키는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을 보면, 지문에 점이 몇개 찍혀 있고 그 점 부분이 일치하는 것으로 지문을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점들은 무엇일까? =사건 현장에 지문이 널려 있는 일은 드물다. 단 하나의 지문으로 범인을 찾아내야 하는 일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컴퓨터가 널리 쓰이지 않던 시대에 지문 기록 카드를 일일이 찾아 대조하는 작업이 얼마나 지루했을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대식 지문 감식법은 1927년, 런던 경찰국의 해리 배틀리 형사반장이 지문 분류체계를 만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배틀리는 초점이 고정된 특수 확대경을 만들었다. 반지름이 3mm에서 15mm에 이르는 7개의 동심원이 새겨진 확대경이었다. 각 동심원에는 A에서 G까지 알파벳을 붙인 뒤, 확대경을 지문의 특정 지점에 놓고 살핀다. 그는 지문의 조합을 9개 유형으로 분류했는데, 이 방식이 현재 존재하는 모든 지문 분석법의 토대가 되었다. 실제로 1923년부터 1925년 사이 런던 경찰국이 지문을 이용해 불과 70건의 사건만 해결했지만, 1928년부터 1929년까지는 360건을 지문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지문 검색 방법 역시 이 체계에 기반을 둔 것으로, 컴퓨터로 스캔한 지문과 찾고자 하는 지문 사이에 ‘유사점’의 개수를 파락해 두 지문이 동일하다고 인식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래서 지문의 일부가 남아 있는 경우에도 일치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5. 폭발 사고 현장에서 산산조각난 폭발물에 대한 감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중요한 법의학적 증거가 되는 파편들이 (당연하게도) 넓은 구역에 걸쳐 흩어져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파이프나 철로, 창문틀, 가구나 선반, 대못이나 볼트까지 폭발이 진행된 방향으로 휘기 때문에 이런 흔적은 폭파의 중심점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폭발 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 그들이 입고 있던 옷은 가장 중요한 증거물 중 하나가 된다. 폭발물 대부분이 남기는 고체 잔존물 역시 솔벤트를 묻힌 면봉으로 사건 지역을 닦아나가면 파괴되지 않은 미세한 폭발 물질이 묻어나온다. 용의자를 검거하면 용의자가 장갑을 끼고 폭발물을 다루었다 하더라도 장갑을 투과해 손의 피부에 묻은 잔여 성분까지 찾아낼 수 있다. 용의자의 손에서 폭발물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면 그 증거는 법정에서도 효력을 발휘한다. 다만, 협심증 약으로 사용되는 용액이나 정제로 된 니트로글리세린, 일상적으로 쓰이는 폭발성 있는 유기물질인 페틴 등의 양성반응은 폭발물을 만지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6. 시체에 들끓는 벌레들이 과연 사건해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금파리 암놈들은 날카로운 후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2.5km 떨어진 곳에서도 내장 속 박테리아가 내뿜는 가스 냄새를 맡는다. 이런 벌레들을 관찰해 사건에 이용하는 방식은 중국 송대였던 1247년에 나온 <세원집록>이라는 법과학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벌레들은 사망시각과 사망장소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CSI: 라스베가스> 시리즈의 그리썸 반장이 벌레들을 발견하면 열광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시체에서 발견된 곤충이 서식하는 지역이 발견 장소와 맞지 않거나, 발견되어야 할 곤충이 보이지 않는 경우 수사 지역을 결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바퀴벌레는 피가 흥건한 범죄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기이한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개미는 아동학대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는 흔적을 피부에 남기기도 한다. 운전자가 한 지역에서 사람을 죽인 뒤 다른 지역에 시체를 유기한다면, 번호판에 남아 있는 나방의 흔적으로 장소를 추정하는 일도 가능하다. 운이 좋다면, 모기가 흡입한 피에서 피해자나 가해자의 DNA를 찾아낼 수도 있다(하지만 공룡을 되살릴 수는 없다).

7. 정말 <CSI>에서처럼 과학수사를 담당하는 요원들이 현장을 누비고 범인을 심문할 수 있을까? =같은 <CSI>라 하더라도 라스베이거스 시리즈의 길 그리썸 반장과 마이애미 시리즈의 호레이쇼 케인 반장은 수사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증거를 신의 경전처럼 생각하는 그리썸 반장은 실험실에서 증거를 추적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호레이쇼 반장은 어느 형사 못지않게 범인 추격과 심문에 능하다. 한국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자, 즉 그리썸 반장 과에 속한다. 이들은 연구원 신분으로, 증거를 분석하되 수사권은 가지고 있지 않다. 직접 수사권을 가지고 현장에서 증거를 수거하는 사람들이 <CSI>에서 볼 수 있는 요원들인데, 이들과 유사한 경찰청의 과학수사센터가 국내에도 있지만 드라마에서처럼 최첨단 장비를 보유하고 신속하게 증거를 분석해낼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현장에서 최대한 많은 단서를 확보해 과학적 분석 도구로 활용할 뿐이다.

관련영화

참고도서: <죽은 자들은 토크쇼 게스트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 <살인의 현장> <원통함을 없게 하라>